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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Nov 13. 2023

17. 질투를 버리고 싶다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잘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미간을 찌푸리고 인터넷 뉴스를 들여다본다. 친숙한 이름이 보인다. 가끔 고위 공무원 후보자로 이름이 거론되곤 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한 동창의 직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중학교 시절. 지금 최상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친구와는 같은 반에서 1, 2등을 다투며 속칭 '선의의 경쟁'을 펼치곤 했었다. 고등학교 진학 후. 나는 사춘기를 겪으며 최상위권 그룹에서 미끄러져 내려왔고, 친구는 사춘기도 없는지 꾸준히 공부를 잘했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그 친구와 끝까지 경쟁하며 공부했으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을까?' 그 시절의 나는 학생의 본분을 망각하고 인생을 하는 시, 소설, 철학서 따위에 빠져 살았고, 공부만이 전부는 아니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 중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그 신념을 잃지 않았고, 평생을 고민하고 애쓰며 살고 있긴 하지만 가끔씩 소위 잘되는 친구, 직장동료를 보면 가슴 한편이 질투로 아려온다. 그렇지만, 질투를 이겨내고 싶은 이성이 지금의 나를 다독이며 말한다. '나도 나름 잘 살아왔어. 세상의 부귀영화도 좋지만, 나의 능력 안에서 최대한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해 왔잖아'


"저희 저녁 같이 해요. 뵙고 싶어서 우리 오랜만에 모이기로 했습니다" 3년 전 나를 상사로 삼아 같이 근무했던 직원이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약속했던 식사장소에 도착하니 남녀직원이 여럿 모여 앉아 있다. 만난 지 제법 오래되었는데도 어제 헤어졌던 것처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세월이 흐를수록 서로에게 잊혀 가겠지만, 아직까진 상대적으로 늙은, 뭔가를 얻어낼 수 없는 나를 불러주니 헤어지면 다시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인간으로 살지 않은 것 같아 다이다.


사실 그동안의 삶을 뒤돌아 보면, 사촌이 논사면 배 아프듯 주변의 번성함에 끊임없이 질투를 느끼고 깎아내리는 어리석음에서 한 발짝도 비껴 나 못했다. 나의 수양의 부족함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한다.


인간이란 질투의 화신이며, 질투는 역사 속, 신화 속에서 인기 있는 주제였다. 동생이 태어나면 사랑의 이동을 참지 못해 시기하고, 남자아이는 아빠를, 여자아이는 엄마를 경쟁자로서 질투하고, 카인은 아벨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분노하여 살인한다. 또한 연인에 대한 질투는 사랑의 표현으로 언급되기도 하지만, 범죄로 비화될 수 있다.


질투는 인간으로서 극복하기 힘든 본성이지만 이제는 조금씩 비워내고 싶다. 모두 잠든 저녁. 감옥의 탈출구를 만들기 위해 구멍을 파고, 다음 날 흙과 돌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 남몰래 조금씩 버리던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처럼 질투를 조금씩 버리고 싶다. 그러면 죽음에 가까운 어느 날. 마침내 주인공 답답한 감옥을 탈출하여 기쁨의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듯, 어느 순간 질투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그렇게도 나를 괴롭히던 질투의 번뇌가 스러지고 조용한 평화가 찾아올 것 같다.

출처: 네이버(카인의 살해, 티치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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