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모와 시내에 나가 무언가를 사기로 했었다. 중학생이던 나는 외출준비가 빨리 끝나 먼저 나가서 기다리겠다며 집을 나섰다. 좁은 길거리는 깜깜하였고 오가는 사람도 없었다. 이모가 빨리 나오기를 고대하며 천천히 걷다가, 모퉁이길에 있는 이발소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자 멈추어 섰다. 살을 에이는 추위에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꽂고 발을 동동거리며, 이모를 놓칠까 봐 집 방향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채 5분이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발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주인이 튀어나오며 소리 질렀다. "이 도둑놈아! 무엇을 훔치려고 우리 가게 앞을 서성이고 있는 거야?" 당황한 나는 우리 이모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더듬거리며 대답했고, 주인은 거짓말하지 말라며 놀란 나를 다그쳤다.
이 소동은, 기다리던 작은 이모를 만나 주인의 오해가 풀리면서 마무리지어졌지만, 그 당시의 억울함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 큰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일 것이다.
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머리카락이 제법 길어 보였고 '아니, 중학생이 머리카락이 이렇게 길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단정하게 이발을 하라고, 아빠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스포츠머리를 하고 다녔다고 잔소리를 시전하였다. 평소 같으면 "네"라는 단답형 대답이 돌아왔을 텐데, 제법 긴, 가슴 아픈 대답을 나에게 쿵 내던졌다. "요즘은 모범생 같이 단정하게 머리를 깎고 다니면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해요"
이 말을 들은 후론, 어른들이 모르는 아이들의 큰 고민이 있음을 깨달았고, 큰아이의 머리모양,옷차림에 대해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살다 보면, 오해를 받기도 하고 오해를 하기도 한다.오해는 오해를 낳아 분노와 증오가 산덩이처럼 커지고, 오해를 받는 사람은 답답함에 가슴이 찢어진다. 나도 제법 긴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오해를 하고, 분노를 표출하였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의 부족함으로 알게 모르게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이러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쌓이면, 오해를 줄이고자 나만의 행동단계를 만들어 실행하려고 노력 중이다(물론 공신력 있는 전문가적 방법은 아니므로 결과는 책임지지 못한다). 1. 큰 숨을 쉬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2.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이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생각해 본다. 3.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이성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한다.
예전에 '칭기즈칸의 매'에 관한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칭기즈칸이 매사냥을 즐기다, 깊은 계곡에 다다랐는데 목이 말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계곡을 타고 좁게 흐르는 물줄기가 있었고, 가지고 다니던 잔에 어렵사리 물을 받아 마시려는 찰나, 함께 하던 매가 잔을 낚아채 떨어뜨려 물을 마시지 못했다. 그러기를 수회. 화가 난 칭기즈칸은 매를 단칼에 베었다. 그래도 물은 마셔야 하겠기에 언덕을 타고 올라 흐르는 물의 근원지에 도달하니, 커다란 독사가 죽어 있어 물이 독으로 오염되어 있음을 알았다. 칭기즈칸은 크게 후회하고 분노한 상태에서는절대 결정을 내리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라는 일화이다. 이 일화는 내가 정한 행동단계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이야깃거리일 수 있겠다.
날이 차가워지고 밤이 쉬이 오는 요즘. 뜬금없이 떠오른 기억들이지만, 이를 기회로 나의 삶의 여정에서 쉽사리 오해하고 분노에 차오르는 나의 부족함에 피해를 당한 우리 아들들을 포함한 많은 분들에게 "오해해서 미안합니다"를 크게 외친다. 물론 한 번 입은 상처는 잘 지워지지 않겠지만, 이러한 미안함을 행동의 개선으로 치환하기 위해 남은 여생 계속 노력해 나가야 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