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드득, 후드득, 후드드득"
고요한 새벽의 적막을 늦여름의 빗소리가 흔들어댄다. 비가 오는 날에는 늘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초등학생이던 시절.
아버지의 계모임에서 구성원들의 가족들이 단체로 놀러 갔던 기억이 그 중 하나이다. 행사 중 갑자기 내리는 비에 급히 피한 곳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어느 산사였다. 산사의 처마가 만든 조그마한 공간에 어른이며 아이 할 것 없이 죽 늘어서서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마 끝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은 연신 땅바닥을 향하여 곤두박질치고, 산사를 둘러싼 나무와 꽃들은 자신들의 온몸에 부딪히는 비와 어울려 "후드득, 후드득, 후드드득" 반복되는 소리를 만들어 낸다. 잠시 비가 멈추면 저 멀리 자욱이 피어오르는 안개가 산사 특유의 적막함을 돋보이게 하고, 나는 몽환적인 풍경과 소리에 휩쓸려 생각에 빠져든다. '언제 이 비가 그칠까?, 언제 이 산사를 떠나 아늑한 우리 집 방안에 누울 수 있을까?'
군 입대 후 훈련소 시절.
새벽부터 어둠 속을 꿰뚫고 세차게 비가 내렸다. 혹시 야외훈련이 취소되고 실내에서 꿀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고, 훈련생들은 우비를 입고 이른 아침 빗속의 어스름한 길을 처벅처벅 걸었다. 주변의 산들과 길 위의 돌들이 계속해서 내리는 비를 받아내느라 힘이 빠져 축 늘어진 회색빛의 모습으로 고개 숙이고 있었다. 우비가 다 가리지 못하는 몸을 날카로운 비가 조금씩 파고들었고 우비 밑의 몸에서는 열기가 내뿜어져 덥고, 습하고, 힘들었다. 묵묵히 걷는 행렬 속에서 쉼 없는 생각의 물결이 일렁였다. '이 비가 언제 그칠까, 이 훈련소를 언제 떠나 편안한 우리 집 방안에 누울 수 있을까?'
빗소리에 문득 눈 떠진 새벽.
아늑한 방안에 누워 잠들었다가 맞이하는 빗소리는 기억 속의 빗소리와 사뭇 다르다. 옆에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내가 함께 하고, 한 집에 장성한 두 아들이 있다. 그간 수없이 내렸을 비도 세월을 따라 흘러 흘렀고 지금의 비는 도시의 한 아파트에 편안히 몸 누이고 있는 중년의 남자 옆에서 "후드득, 후드득" 소리를 내며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다시 잠들려고 눈을 감아도 빗소리가, 켜켜이 쌓여있던 기억들이 정신을 다시 일깨운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인생의 의미를 알고 싶어 서점에 들러 철학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친구들과 때 이른 술잔을 기울이며 어설픈 인생론을 주고받기도 하였다. 어른들의 삶이 진실하지도, 열정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너무 가식적이고 무력해 보였다. 나는 주어진 삶을 짧더라도 좀 더 진실하고 의미 있게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한 명의 범인이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저 삶을 살아내고, 삶의 여러 상황과 관계에 얽매여 때로는 가식적이었고 자주 무력하였다. 언뜻언뜻 뒤돌아보면 회한이 차올라 동료들과 어울려 "인생을 진실하게 대하고, 의미 있게 살고 싶었는데 나는 왜 이럴까?"를 수도 없이 뇌까렸다. 반복되는 삶을 지내다 보니 어느덧 배가 나오고, 머리숱이 적어지고, 눈이 흐려지는 중년이 되어 있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다 올라탄다. 멈추는 버스정류소마다 남녀노소 승객들이 올라타기도 하고 급하게 내리기도 한다. 대부분의 승객이 멍하니 정면을 응시하거나 버스 창틀에 머리를 기대거나 핸드폰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버스의 뒷자리에 앉아 다양한 형태의 승객들을 바라보며 나도 그들처럼 멍하게 생각에 잠긴다. '저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저들도 삶에 대한 고민에 괴로워하겠지?' 세상에는 인생을 논할 여유도 없이 단지 살아남기 위해 순간순간을 전쟁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 앞에서 분에 넘치는 몸부림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이 하나, 둘씩 모여질 때 그래도 사람 살만한 세상이 되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끊임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다짐한다.
이제 비가 그치고 창밖이 어스름하게 밝아진다. 거실의 소파, TV, 화분이 커튼을 투과한 엷은 빛 속에 자신들의 형체를 카페라테의 거품처럼 부드럽게 드러낸다. 이제 또다시 하루를 시작할 때다. 이제는 안락한 가정에 편안히 쉬고 싶은 어릴 적 소원을 조금이나마 이루었지만, 안락함을 넘어 진실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을 살아가야 할 때이다. 오늘도 출근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다 올라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