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내를 바라보면 행복하다
추억에서 건진 단상
지방에 살던 내가 취직하여 서울로 올라왔다. 직장의 합숙소에 들어가려면 한참을 대기하여야 하고 인천의 친척 집에 머물기도 미안하여 취직 1년 만에 아내와 결혼했다.
아내도 취직하여 일을 통한 성취감과 사회적 관계의 즐거움을 맛보아야 했으나, 그 시절의 미덕이라 생각되었던 '남편이 돈 벌고 아내는 살림하는' 전업주부를 권하였다.
아내는 유산의 아픔을 겪고도 두 아이를 낳아 길렀고, 집안 일도 너무나 깔끔하게 해내었다. 남편의 숱한 야근과 잦은 저녁 술자리도 타박하지 않고 오히려 "고생이 너무 많다"는 격려와 함께 견뎌내었다.
서민들의 인생 목표인 '내 집 마련'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생활을 제법 오래 했다. 외식, 여행도 자주 하지 못했고 특히, 여성인 아내는 옷차림과 액세서리에 투자하지 못하고 티셔츠와 청바지 패션을 자신의 전유물로 여겼다.
직장에서 관리자로 승진하고서 뒤돌아 보니 아내도, 나도 제법 늙었고 둘만의 추억이 많지 않음이 마음에 걸려 1년에 한 번은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가는 원칙을 세우고 지키려 노력하였다.
나이가 들어가니 오래 쓴 가전제품이 성능이 저하되고 폐물이 되어가듯 아내나 나도 이곳저곳 아픈 데가 생겨난다. 평소 가사를 분담하지 못하고 아내에게만 미루어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었는데,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을 듯하여 음식 조리, 설거지, 청소 등을 돕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설펐으나 이제는 제법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도 있다.
어느 잠이 오지 않는 밤. 나의 옆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내를 무심코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세상에서 중년이라 일컫는 지금까지 자신을 녹여 주변을 밝혀주는 촛불 같은 희생을 하면서 살아온 아내. 지금껏 얻은 거라곤 아내 본인의 나이 듦과 여러 개의 질병뿐이니,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넘쳐나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이치이리라.
집안 거실에 놓인 새로 산 1인용 소파에 앉아 창밖의 푸른 나무를 통과하여 비치는 햇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면 나는 행복하다. 젊은 시절 나이 들면 산 위에 조그마한 오두막을 짓고 각자 소파에 앉아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오순도순 대화도 나누고, 엷게 미소 지으며 상대방을 바라보는 꿈을 꾸곤 하였는데, 산 위의 고즈넉한 오두막은 아니고 아이들의 "까르륵" 웃음소리가 들리는 아파트 단지 내에 숨겨진 조그마한 집일지라도 아내를 바라보면 나는 행복하다.
이제는 부족한 내가 계속 녹아내리는 촛불을 끄고 크리스마스 초처럼 아름답게 색을 입혀, 내 가슴에 깊이 품으므로 늘 따듯하고,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풍파가 아무리 심하더라도 하얀 은발을 휘날리며 서로의 손을 꼭 그러잡고 또박또박 걸어가다가, 인생의 마지막 길에 자리한 주황색 부드러운 전구빛을 감싸 안은 카페에서 한적한 자리에 앉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담소하다가 조용히 눈을 감으면 너무 좋겠다.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뒤적이던 아내가 뜬금없이 나에게 묻는다. "자기는 언제가 제일 행복해?" 나는 아내의 궁금해하면서 배시시 웃는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나는 자기가 행복해할 때가 가장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