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울렸다. 가슴이 왠지 모르게 철렁했다. "OOO 씨 핸드폰이죠? XXX 씨 핸드폰인데 친구로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어 연락드려요. 제 남편이 하늘나라에 가서 장례식을 치릅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친하게 지내던 삼총사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은 고향에서 생활하고, 또 한 명은 서울로 상경했다. 셋 다 가정을 이루어 가장이 되었고 그 이후로는 연락이 뜸해졌다. 나이 40줄에 접어들자 고된 사회생활에 외로움을 느꼈는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울에 상경한 친구와 만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어느 날. 친구의 연락으로 왕십리에 있는 어느 조그마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친구는 피곤한 얼굴로 직장일이 힘들다며 술잔을 기울였고 나는 인생이란 것이 원래 힘듦의 연속 아니겠느냐고 맞받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평소 긍정적이고 씩씩한 친구인지라 대부분 내가 하소연하고 그가 위로해 주었으나, 그날은 반대의 상황에 놓였다. 힘없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친구에게 건강검진을 권했다. "너 너무 피곤해 보이는데 건강검진 한번 받아봐. 우리 나이대가 되면 슬슬 건강에 신경 써야 할 때인 것 같아." 친구는 그러마고 대답했고, 밤이 깊어가 우리는 헤어졌다.
그 이후 소식이 없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나 수술해.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위암이래." 암 수술 후 병문안을 갔다. 평소의 성격대로 친구는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밝고 씩씩하게 나를 맞았다. "수술은 잘 되었고 앞으로 건강관리만 잘하면 될 것 같아. 너도 건강에 더 신경 써." 오히려 내 건강을 신경 써주는 친구에게 수술받느라 고생하였고, 빨리 건강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하며 손을 맞잡았다. 울컥함에 가슴이 먹먹하였으나 웃음을 지었다.
자주 친구에게 연락하려고 마음먹었으나,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을 흘려보내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 요양원에 있어. 몸이 좀 안 좋아졌지만 여기서 푹 쉬면 금방 좋아질 거야. 나 심심한데 얼굴 한 번 보러 와." "그래. 조만간 보자" 그렇게 친구의 전화를 받고 얼마지 않아 그의 부인의 부고를 전하는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얼굴 한 번 보고 싶다'는 전화는 그간 서로 많이 했고, 전화 한 통에 고교생 시절부터 40대 아저씨 때까지 편하게 만나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았다. 그날의 '얼굴 한 번 보자'도 그렇게 생각했고, 다시 얼굴을 마주하며 편안히 수다를 떨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이 마지막 통화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날은 비가 무척 많이 내렸다. 고향에 있는 삼총사 중 한 명이었던 친구와 같이 삼총사 중 한 명을 먼저 영원히 떠나보내는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장 구석에 앉아 계시던 친구의 어머니가 우리를 알아보시고 통곡을 하셨다. "너희들은 이렇게 있는데, 우리 애만 먼저 가서 어떡하니. 불쌍해서 어떡하니." 어머니의 손을 맞잡고 우리도 울었다.
요즈음. 비가 오거나 날씨가 쌀쌀해지면 가끔 먼저 간 친구가 생각난다. 하늘나라에서 건강하게 잘 있는지. 나도 이 세상 떠나가게 되면 얼굴 마주하며 술 한잔 기울일 수 있을는지. 마지막 통화에 편히 잘 가라고 인사를 못해서 미안했다고, 뒤통수 긁으며 사과할 수 있을는지. 그러면 친구는 크게 웃음 지으며 대답할 것이다. "조만간 얼굴 한 번 볼 텐데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