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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Aug 20. 2024

45. 퍼펙트 데이즈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무덥고 습한 공기가 밤새 방안에 가득해서 그런지 한숨 푹 자고 일어나도 무언가 무거운 물체에 눌려 잠 잔 듯 온몸이 뻐근하다.


이 맹렬한 여름에 정복된 집을 벗어나 곧바로 비행기에 올라 노르웨이의 눈 덮인 풍경 속으로 풍덩 빠져들면, 뻐근한 몸이 상쾌해질 듯하다.


오늘도 퉁퉁 부은 얼굴로 하루를 시작한다.


조금만 걸어도 솟아나는 땀을 연신 닦아내며 허겁지겁 걷는다. 직장 사무실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기대하며 급하게 걷다 보면 머릿속하얗게 변한다.


직장에선 눈앞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다 시간이 정처 없이 흐, 개인적 사고가 정지되어 '내'가 없어진다.


집으로 돌아오면 지쳐 쓰러져 소파에 눕고, 지인들과 저녁 먹으며 술 한잔하고 돌아오는 밤이면 지치고 취해 쓰러져 잠이 든다. 눕거나 잠이 들면 사념과 꿈에 지배되어 온전한 사고는 정지된다.


'펙트 데이즈'라는 영화 속 주인공(히라야마)도 혼자의 삶을 규칙적으로 반복적으로, 큰 변화 없이 살아간다.


마음에 입은 상처를 가슴에 품고 도망치듯 스며들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도쿄의 시부야에서 공공화장실 청소를 업으로 삼아 지낸다.


깜깜한 저녁. 작은 방에서 조그마한 불빛에 의지하여 돋보기안경을 끼고 책을 읽다 졸음이 오면, 책 귀퉁이를 접어 내려놓고, 돋보기안경도 벗어 놓고, 이불을 깊이 덮고, 그리고 잠에 든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개고, 씻고, 면도를 하고, 작업복과 공구자루를 챙겨 입고, 문을 연다.


새벽. 어스름한 하늘을 올려보고, 집 근처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들고, 청소용 기구 및 용품이 가득 찬 차량에 올라타고, 올드팝송 테이프를 틀고, 운전하며 차 안 가득히 차오르는 음악을 듣는다.


일터에 도착해선 마치 수행하듯 정성껏 청소를 한다.


점심시간에는 토스트 한 조각, 우유 한 병을 들고, 산사 인근 숲에 앉아 혼자서 식사를 하고, 가슴 포켓에 넣어둔 올림피아 카메라를 내어 나뭇잎 사이로 치는 햇빛(코모레비)을 찍는다. 


퇴근하면 옷을 갈아입고,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여 지하철 내 술집에서 혼자 술을 한잔하고 귀가한다.


다시. 깜깜한 방에서 조그마한 불빛에 의지하여 돋보기안경을 끼고 책을 읽다 잠이 오면 책모퉁이를 접어 돋보기안경과 같이 내려놓고 잠이 든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인데도 새벽 출근에 집 문을 열고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는 주인공의 얼굴에는 평안함이 엿보인다.


차창에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올드 팝송을 듣고, 나뭇잎 사이를 비치는 햇빛(코모레비)을 올려보며 사진을 찍는 주인공의 얼굴은 기쁨이 넘쳐난다.


퇴근 후 지하철역 선술집에서 친절한 주인장과 친숙한 손님들을 바라보며 혼술을 하는 주인공의 얼굴엔 웃음이 흐른다.


잠자리의 작은 불빛 아래서 책을 들여다보다가 잠에 드는 주인공의 얼굴은 포만감이 가득하다.


제목 그대로 하루하루가 늘 같지만 '완벽한 날들'인 것이다.


이 얼마나 나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나날인가?


나의 앞날이 늘 똑같아, 무료하고 의미 없고 답답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쌓이곤 하는 요즈음. 늘 똑같은 하루하루가 이처럼 충만하고 완벽할 수 있다는 긍정 메시지를 던져 준다.


오늘 저녁. 나는 주인공처럼 돋보기안경을 쓰고 책을 보고, 글을 쓴다. 조금 있다가 졸리면 책 귀퉁이를 접어 돋보기안경과 함께 머리맡에 두고 잠들 예정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 아파트를 나서면 주인공처럼 멋지게 머리 들어 하늘을 바라볼 예정이다. 앞으로의 나의 '퍼펙트 데이즈'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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