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솟아나는 어느 해 봄. 서울의 변두리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약 한 달간 봉사활동을 하였다.
센터에는 아동복지법에 의한 아동의 연령이 18세 미만이어서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이 공존했다. 또한 돌봄 우선대상이 한가족 자녀, 조부모 돌봄 자녀, 다문화가족 자녀이어서 대부분 이러한 기준에 해당하는 아동들이 센터에 출석하고 있었다.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여성들이었고 남성들인 경우에도 젊은 대학생이 많았다. 나이 든 남성은 처음 겪어 보는 듯 아이들이 나를 어색해했고 가까이 오지 않으려 했다. 나도 그다지 수더분한 성격이 아닌지라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어려워 진땀이 났다.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이 익숙해지면서부터 아이들의 낯가림이 줄어들고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놀이와 학습지도라는 명목으로 센터 직원의 초등학교 저학년생 돌봄을 도왔고, 학교에서 센터까지의 이동도 함께 했다. 아이들이 센터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은 여러 종류의 장난감들이 있는 놀이방이었다. 가끔씩 또래 아이들과 다툼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다툼의 근본 원인은 자신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제쳐두고 남의 장난감을 가로챔에 있었다.
모든 아이들의 특성이긴 하지만, 그중 남자아이 삼총사가 모이기만 하면 잘 놀다가도 마지막은 꼭 다툼으로 끝났다. 어린아이를 돌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서로 소리 지르며 다투는 아이들을 중재하느라 진땀을 흘렸고 결국은 센터 직원이 개입하여야만 평안이 찾아왔다.
이러한 아이들도 같이 생활하면서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고, 원하는 놀이도 함께 하고, 공부도 도와주자 마음을 열고 손을 잡아 주었다.
중학생 아이들은 제법 의젓했다. 자신들보다 어린 초등학생들을 도와주고 또래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모델이 꿈이라는 키가 크고 잘생긴 남학생이 있었는데,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며 잘 자라고 있음을 바라보니 척박한 토양을 이기고 자라나는 선인장 같아 보였고 '잘 컸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보통의 가정은 아이들이 진이 빠질 정도로 이런저런 학원에 보내고도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압박한다. 우리 가정도 그러지 않기 위해 나름 노력하였으나 별반 차이는 없었던 것 같다. 넘치는 돌봄으로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삐뚤어지기도 하는데, 센터의 아이들은 돌봄이 부족하여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느 날. 봉사활동을 시작하기 전, 센터장님과 함께한 커피타임이 있었다. 아동 돌봄 활동을 십 년 넘게 해 오면서 어려운 일도 많았고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으나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돌봄을 받는 아이들의 미래 때문이라고 했다. 부모들이 집에 없고 학원은 다닐 여력이 안되어 센터에 출석하다가 그만두는 아이들은 가출을 하거나 범죄의 길로 빠져 드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고 한다. 학교를 마치고 센터로 와서 공부도 하고 저녁도 먹고 돌아가면 어느 정도 안정된 일상을 보낼 수 있어 그들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돌봄의 소명을 가지고 작은 봉급을 받고도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의 센터장님과 직원들. 옆에서 바라보니 존경스럽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고 누군가 소명을 가지고 그들을 돌볼 때 그들의 미래가 달라지고 이로 인해 세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자원봉사를 마치고 떠나는 날.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아이들이 서운해하고, 저학년 아이들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맑은 눈망울로 올려다본다. 그 눈망울을 바라보다가 우리 가정의 아이들에게 넘치게 주는 관심을 조금은 주워 담아 눈망울이 맑은 아이들에게 가끔씩 나누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깐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 소중했고, 여러분 모두 잘 자라나 사랑받고 행복한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