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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Oct 13. 2023

10. 수족관 물고기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출근길.


아직 개점하지 않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 작은 도로가 가을 초입에 불어오는 바람에 제법 을씨년스럽다.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지만, 길가의 음식점들은 밤의 활력을 잃고 무릎에 고개를 박고 힘들게 잠이 든 사람처럼 초췌한 모습이다.


그중 유독 눈에 박히는 장면은 주변 음식점 사이에 특징 없이 끼어있는 횟집 앞 보도블록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수족관의 모습이다.


횟집 앞에는 수족관이 3개가 있는데, 수족관의 좁은 공간에는 각기 다른 종류의 물고기들이 답답하게 모여 있다. 며칠간 팔려나가지 못한 듯 보이는 수족관 안의 대부분의 물고기는 생명을 다하여 배를 보이며 둥둥 떠있고, 몇몇 살아있는 물고기들은 힘에 겨운 듯 입을 뻐끔거리며 꼭 필요한 움직임만 보인다. 시체들의 틈바구니에서 정신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전쟁터의 사병이 이러한 모습일까? 갑자기 애처로운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평소 고기보다는 생선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수족관의 물속에 처참히 생매장되어 있는 물고기들을 목격하는 순간, 물고기가 하나의  생명체로 보였기 때문인 듯하다.

생선과 물고기란 단어는 사용함에 있어 차이점이 존재한다. 음식과 관련된 문맥에서는 '생선'을, 동물의 종과 관련된 문맥에서는 '물고기'를 주로 사용한다.


퇴근 후.


TV 채널을 무료히 돌리다 동물 관련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채널에 잠시 멈춘다. 동물원의 좁은 우리 배회하다 땅바닥에 얼굴을  비비고 있는 늙은 수사자가 클로즈업되면서, 성우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7년을 동물원에서 지낸 사자 오랜 시간 혼자 생활하고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 습관처럼 다른 채널로 돌리려다 '7년을 좁은 우리에 갇혀 있었으면 얼마나 외롭고, 답답하고, 힘이 들었을까?'라는 생각에 꽂혀 멍하니 TV 화면 바라보았다. 


야생의 평원에서 자신의 습성대로 마음껏 활보해야 할 '밀림의 왕' 사자가 몇십 평 되지 않는 철창 안에 붙들려 살아가는 심정은 아무런 죄 없이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붙잡혀 있는 원통한 수인의 심정일 것 같다. 자신의 출생지를 본능적으로 종일  그리워하며 철창 안을 서성이다, 밤이면 '쇼생크 탈출'을 꿈꾸며 잠이 들었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구절처럼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기에게 끌리' 날이 혹여 온다면, 지구 위의 생명체인 물고기, 동물,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인간의 욕심으로, 바다와 강물이 오염되어 물고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조류가 죽음에 이른다. 빙하가 녹아내려 북극곰이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동물의 무분별한 수렵으로 멸종에 이른다. 우리 주변의 생명체들이 하나 둘 사라지다 보면 인간만 오롯이 남는 것은 아닌지 괜한 걱정이 앞선다.


석양이 깔린 대평원.


메마른 낮은 수풀 속에서 기거하는 동물들이 떨어지는 햇빛을 받으며 평화로이 휴식을 즐기는 모습이 아름답다. 뜨거운 햇빛 아래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며 잡고 잡히는 일이 일상으로 일어나지만, 딱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사투를 벌이고 다시 평화로운 질서 속에 천착하며 같이 물을 마시고 같이 석양 속에 잠긴다. 석양에 불그스름하게 비치는 평화의 아름다움에 빠져 카메라를 들이밀고 인생샷만 남길 것이 아니고, 부디 인간도 이러한 지구 속 생명체의  질서에 동참하여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아름답게 살아가길 바라본다.  

출처: 네이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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