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일은 남을 판단하는 일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자기 틀에 끼워 맞추지 말아야 한다. 서로의 생각과 시선이 다른 것이 당연하니 비판해서도 안 된다. 서로 다른 감정을 공감하며 자기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큰 어려움이 없는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나에게는 개성 강한 30년 지기 다섯 친구들이 있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고교 동창생인 다섯 친구는 십 년 넘는 동안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갖고 많은 추억과 우정을 쌓아갔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바쁘고 정신없어 전혀 만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키워놓고 나니 마음의 여유가 생긴 친구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처음엔 점심 먹고 차 마시고 하던 모임에서 아이들이 대학 입학을 한 뒤에는 제주도, 부산, 여수, 평창, 안면도, 삼척, 속초, 강화, 양평 등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로 곳곳을 누비며 분기별로 여행을 다니는 모임이 됐다. 그러면서도 큰 갈등 없이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가는 절친들이다.
얼마 전에 아는 동생이 다섯 명의 친구들과 싱가포르 여행을 다녀와서 좋았냐고 묻자마자 오랜 시간 어떻게 그 많은 친구들이 큰 부딪힘 없이 여행을 다녔냐고 물었다. 다 같이 의견을 맞추기가 진짜 힘들었다는 말을 듣고 우리 친구들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모나지 않은 성격에 서로 배려하고 자기 역할들을 잘 해내면서 이제껏 친밀하게 지내온 친구들이 새삼스레 고마웠다.
가장 언니 같은 한 친구는 진중하면서도 유머스럽다. 결혼 후 아픈 시부모님 수발로 허리 디스크까지 생길 정도로 지극정성 돌본 마음 씀씀이가 너무 따뜻하고 고운 맏이 같은 친구이다. 가족들을 살뜰히 챙기고 남편과 딸들에게 헌신적인 만큼 우리 친구들에게도 마음을 많이 써주어 늘 고맙다. 모임 회계를 맡아 비행기 티켓이며 ktx 예매며 귀찮을 법도 한데 투정 한마디 없이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 며칠 전 일하다가 무릎과 손을 다치신 남편이 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 둘째 딸이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갔다가 잘 돌아와서 안심하는 친구에게 이젠 주변이 아닌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독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 친구는 학창 시절 나와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하지만 우린 많이 다르다. 학창 시절 때 그 친구는 외향적이며 적극적이었고 난 내향적이고 소극적이었다. 그런 친구가 자신감 넘치고 당차보여서 좋았다. 지금은 많이 달라져서 외향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한 나이지만 그 친구는 여전히 세밀하고 감성이 풍부한 편이고 나는 단순하면서 털털하고 무딘 편이다. 손재주가 많아 뜨개질을 잘 해 친구들에게 선물도 주고 사진을 잘 찍어 도맡는다. 의상 디자인을 전공해 패션 감각이 남다르다. 반면 난 손재주도 없고 패션 감각도 젬뱅이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취향도 성격도 다르지만 서로 보완하며 학창시절부터 절친 사이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 시작한 일을 잘 해내고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내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 친구는 막내기질이 있지만 생활력이 무척 강한 친구이다. 나이 많은 오빠들 사이에 늦둥이로 태어나서 그런지 사랑도 많이 받고 부족함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 구김살이 없다. 학창 시절 친구 집에 갔을 때 혼자 방 쓰는 것도 부러운데 싱글 침대에 예쁜 개인 화장대까지 놓인 걸 보고 놀랐었다. 결혼 후에 남편의 일로 일본에서 지내다가 돌아와 지방 도시에서 자리 잡은 친구는 백화점에서 매장을 운영하며 오랜 시간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백화점에서 일해서 옷 입는 센스도 뛰어나고 자신을 멋지게 가꾸고 솔직담백하면서도 주장이 명확해 좋다. 매 달 모임에 맞춰 올라오는 친구 덕분에 곳곳을 누비며 우리 여행이 시작되었고 활력과 에너지를 넘치게 만들어주어 고맙다. 박사 공부하는 아들의 앞날도 잘 풀리고 성실하게 일한 보상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한 친구는 똑 부러지고 야무지다. 공부를 잘 했고 리더십도 강한 친구라서 추진력이 뛰어나다. 뭐든 앞장서서 일을 주도하고 친구들 마음을 잘 헤아려주고 배려하며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고마운 친구이다. 운전 실력이 뛰어나 여행갈 때면 어디든 기꺼이 안전하게 친구들의 네비게이션이 되어준다. 완벽한 준비에 빈틈이 없는 데다 그림 솜씨까지 뛰어나니 다재다능하다. 남편과 잘 내조해서 사업도 성공해 남 부러울 게 없는데 그 고마움을 모르시는 시어머님 때문에 요즘 마음고생을 하는 친구에게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 친구는 이효리처럼 빛이 나고 세련미와 섹시미가 넘친다. 미모가 뛰어나서 일찍 결혼 한 덕에 벌써 큰딸이 30살이 넘었다. 딸과 같이 있으면 나이 차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모녀가 아닌 자매 같다. 우리 친구들을 돋보이게 하고 통통 튀는 매력으로 옆에 있는 사람들을 금방 빠지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런 친구에게 갑자기 질병이 찾아오면서 우리 마음이 쿵 내려앉았고 지금도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직 투병중이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 텐데도 씩씩하게 잘 견뎌내고 있는 친구가 너무 고맙다. 반드시 완치되어 예전처럼 다시 건강해져 즐거운 인생을 살면서 친구들에게 사랑과 기쁨과 무한 감사를 선사할 거라고 믿는다.
나는 글쎄...다른 건 몰라도 성실과 책임감과 인내심이 있다. 주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애쓰는 나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여긴 덕분인지 주변에 좋은 사람들로 가득해 인복이 많다. 가족들, 자매들과는 또 다른 기쁨과 웃음을 선사하는 친구들이 서로 울고 웃으며 지금까지 함께 공유해온 시간들이 소중하다. 서로 개성도 성격도 모두 다르지만 다르기에 특별하고 다르기에 서로 이해하며 지금까지 그 우정이 지속되었다고 자부한다. 나이 들수록 옆에 꼭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아직도 멀었지만 벌써부터 환갑 여행 어디로 갈까 계획하는 못 말리는 친구들이다. 그런 친구들 덕분에 내 삶이 역동적이다.
지금처럼 자기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잘 감당할 거라 믿는다. 만날 때마다 밝고 건강한 에너지를 선사하는 소중한 친구들이 나이들수록 더 멋지게 빛나는 삶을 살아가리라 확신한다. 50대 중반이지만 여전히 소녀 감성을 지닌 친구들을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