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 이란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했는데 마지막회가 끝났다. 태종은 드라마로 수없이 만들어진 소재이지만 이번엔 태종보단 부인인 원경왕후의 시점에 더 촛점을 맞추어 원경왕후가 태종보다 빛난던 것이 사실이다.
세종의 어머니이자 지성미를 모두 갖춘 지혜로운 원경왕후는 유교의 영향을 받은 조선의 현모양처의 여인상보다 문무를 겸비한 고려의 여인상에 더 가까웠다. 딸들에게도 재산을 상속하던 고려의 강한 자주정신을 이어받은 자기주도적인 여인이었다.
고려의 권문세족인 민씨 가문은 일찍 야망이 커보이고 똑똑한 이방원과 딸의 혼인을 통해 한층 권력에 다가갈 수 있었다. 마침 아버지인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잡은 뒤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우자, 이방원은 두 번의 왕자의 난으로 결국 세 번째 왕이 된다. 야망이 큰 방원은
왕세자 자리에서 밀려나자 분노하고, 민씨 가문의 힘을 얻어 이복동생 방번과 방석을 죽인다. 태조가 장자에게 왕세자 자리를 물려주었다면 동생들을 죽이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가 왕이 되어 새로운 조선을 이어가고 싶어하는 꿈을 부인은 잘 알고 있었다. 민씨 가문은 왕으로 만들기 위해 은밀히 무기를 모았고, 군사력을 키웠다. 그 안에는 부인의 대범함이 돋보였다.
이후 사병 혁파를 주도한 정도전을 죽이고, 형인 정종을 꼭두각시 왕으로 세운다. 정종에 이은 왕위 다툼으로 방간이 난을 일으키자 그를 제압해 유배보내고, 정종은 동생 이방원에게 양위하고 조용히 상왕으로 물러난다. 어찌보면 현명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이성계는 그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아 분노했다. 자객을 보내 방원의 목숨을 빼앗으려 할 때마다 이방원과 원경왕후는 이에 맞서 함께 위기를 모면했다. 끈끈한 부부 사이로 힘이 되어주며 서로 의지한 결과 이성계와도 화해한다.
왕이 된 이방원은 사병을 혁파하고, 개경의 세력을 잘라내기 위해 이성계가 옮긴 한양으로 다시 천도하며 강력한 왕권을 세우지만, 많은 후궁을 들이면서 원경왕후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게다가 왕후 가문의 외척 세력이 커지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했다. 결국 왕권을 위협하던 두 동생들을 제주로 귀향 보냈다가 장인의 간곡한 부탁에도 자결 명령을 내리고 나중엔 남은 두 동생까지 사사해 가문을 몰락시킨다. 훗날 세자 시대에 있을지도 모르는 화를 미연에 방지해 강력한 왕권을 만들기 위함이었지만 무자비하고 비정했다.
원경왕후를 얼마나 상실하게 만들었을까. 원통과 비통함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렇게 변할 줄 알았다면 그를 왕으로 만들지 않았을 거라고 후회했을까. 사람의 앞날은 알 수가 없다. 흥하기도 쇠하기도 하는 나라의 운명과도 같다.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간 남편이라 그 배신감은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원경왕후는 원망과 상심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굶주리는 백성들의 삶을 돌아보아 존경을 받고, 세자들을 잘 양육한 어진 어머니였다. 뒤늦게 얻은 막내 성녕이 천연두를 앓을 때 태종과 원경왕후의 상심이 너무 컸을 때도 전염병이 돌고 있는 백성들을 돌보라던 원경왕후였다. 어린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픈 마음은 먹먹하게 만들었다.
장원 급제한 아버지의 총명함과 지혜로운 어머니의 성품을 가장 많이 닮은 아들이 셋째 충녕대군이다. 정치보단 활쏘기에 관심을 갖고 힘을 키우려는 세자인 양녕대군은 한 나라의 어진 군주로서 적합하지 않고, 할아버지인 이성계를 더 많이 닮았다. 반면 책을 놓지 않고, 글 공부에 정진하며 백성들을 품을 수 있는 충녕대군의 자질을 원경왕후는 간과하지 않았다. 태종은 어떻게든 장자로 왕위를 잇고 싶어 고뇌했지만 신하들의 간청으로 폐세자가 된다. 오직 성군이 되기를 바란 태종의 바람은 결국 충녕대군에 의해 실현된다.
27세 나이로 조선의 4대 왕이 된 세종은 태종이 이룬 강한 왕권으로 태평성대 안에서 나라를 평안히 다스릴 수 있었다. 글자가 없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헤아려서 한글 창제라는 대업을 이룬 세종 대왕 뒤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세종은 피의 군주였지만 자신을 왕으로 세운 아버지 태종과 시대를 뛰어넘는 여성상으로 지성미를 겸비한 어머니 원경왕후 사이에서 애민 정치를 펼친다. 다만 원경왕후는 왕세자에서 물러난 양녕대군에게 아버지처럼 되지 말 것을 당부했고, 충녕에겐 양녕의 안위를 부탁했을 만큼 양녕대군에 대한 사랑도 컸다고 한다.
태종은 원경왕후가 학질로 투병할 때 마지막까지 정성껏 돌봤다. 원경왕후를 많이도 힘들게 하며, 사랑보단 대의와 대업을 더 중요하게 여겼지만 끝까지 원경왕후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한 사랑을 잊지 않은 왕이다.
"참고 견디는 일이 인생의 늪이 되는 법이다." "참지만 말고 버티지만 말라." 원경왕후의 명언이 새겨진다.
"하늘이 임금을 세우는 일은 백성을 사랑해서 세워진 천명" 이란 말도 태종에게 죄책감과 마음을 짐을 내려놓게 했다. 백성을 으뜸에 두고 백성을 두려워하겠다는 충녕의 말은 결국 실현되었고, 그 뒤엔 당차고 어진 어머니, 원경왕후가 있었다.
세종 2년에 어머니가 떠나고 2년 뒤엔 태종이 승하한 후 세종은 부모님의 무덤을 나란히 두어 지금도 왕과 왕후의 무덤으론 유일하게 쌍릉으로 헌릉에 함께 있다고 한다. 조선 시대 보기 드문 왕과 왕후의 애증과 서사를 스펙터클하게 보여준 드라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