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홈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꿈꾸는 가정은 사랑이 넘치고 존중하며 다정한 엄마와 자상한 아빠를 그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가정도 본다. 마지못해 산다고 하고, ‘너는 너 나는 나’ 터치하지 않고, 거리두기 하며 졸혼으로 각자 사는 게 편하다는 가정도 늘고 있다.
처음부터는 아니겠지만 살다보면 감정도 변하고 여러 상황으로 갈등하면서 심지어 생지옥으로 변하는 가정도 있다. 가족은 기쁨의 원천이 아닌 고통의 원천. 공포의 원천이라고 표현한 이도 있다. 가족이 갈등을 극단적으로 한 말이지만 그만큼 가정 안에서 폭력이 자행되고 가정이 붕괴되고 있는 현실을 빗댄 말이다.
코로나 이후 ‘코로나 이혼’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재택근무가 늘면서 갈등도 심해지고 스트레스도 가중되어 가정폭력이 증가했다고 한다. 아버지 부재 현상도 심각하다. 이 시대의 자녀는 아버지를 무관심하거나 싫어하는 대상으로 여긴다니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버지의 부재는 이 시대의 심각한 문제이며 자녀들의 교육 문제로 모계 중심으로 가고 있다고 분석한 것을 보기도 했다.
영국 문화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 1위가 엄마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 아버지는 70위라고 하니 비교 된다. 온화한 엄마와 희생적인 엄마, 교육에 관심 갖는 엄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바쁘고 무관심한 아빠에게 사랑을 많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 비해 아빠들의 권위의식이 사라지고 다정다감하며 친구 같은 아빠들도 많은데 자녀들이 느끼는 감정은 묘하게도 '아빠의 부재' 라고 한다.
모두 그렇지는 않다. 상황에 따라 어떤 사람은 엄마에게 어떤 사람은 아빠에게 상처 받는다. 졸업을 하고 입사한 한 청년의 고민거리를 기사로 보았다. 아르바이트 해가면서 학비를 벌고 용돈을 벌고 생활하다가 겨우 취직해서 자신을 위해 써보기도 전에 부모가 급여를 모두 가져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용돈을 드릴 생각은 했지만 생활비가 부족하다며 월급을 요구한 부모님에 대한 고민을 올린 청년에게 "절대 주지 말라, 독립하라, 부모라고 그럴 권리는 없다" 는 댓글이 지배적이었다.
부모라고 모두 희생적이고 자식들 걱정만 하지 않는다. 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인 부모도 있다. 키워주었으니 키워준 값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부모의 논리는 가족에게 상처만 줄 뿐이다.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상의를 해야지 통보를 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자식이 부모의 도움을 당연시 하는 분위기도 잘못이다. 가족이라면 서로 상황과 처지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의논해야 한다.
가족은 기능적이 아닌 애정과 신뢰의 관계이다. 아빠는 돈버는 기계, 엄마는 집안일하는 도우미, 자녀들은 공부 잘 시키고, 취직 잘 시켜 보상 받아야 한다는 등의 기능이 아닌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 독려해야 한다. 정성을 다해 키운 자녀라면 그런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답습하기 마련이다. 물은 아래로 흐르는 법이다.
현실에서 가족 관계의 어려움을 많이 본다. 살다보면 여러 문제에 부딪히고 갈등한다. 그것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가족이 해체되고 그 속에서 상처받는 아이들이 생긴다.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뭐든 이해할 거라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해서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큰 상처를 받는 이들도 있다. 힘들 때 위로하고 포용하는 가족이 되어야 한다.
스위트홈을 꿈꾼다면 내가 먼저 가족의 한 일원으로 자기 역할을 다하고 가족 공동체 안에서의 책임감을 갖자. 서로 존중하며 힘들 때 가족을 먼저 찾는 유대감이 형성 되어 가장 든든한 내편이 가족이 되어주자. 지금처럼 각박한 세상에서 가정 안에서 쉼을 얻고, 살아갈 힘을 얻는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 스위트홈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