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인간 극장에서 방영된 내용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하동 산골마을에 사시는 92세. 93세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접하고 가슴이 뭉클했다. 두 분의 삶이 너무 소박하지만 서로 아끼시며 해로하는 모습은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낡고 좁은 집에 아궁이 떼며 살아가는 모습이 어찌 보면 궁색해보일 수 있어도 불평 한마디 없이 감사하며 사시니 마치 현실초월 부부 같았다. 닭장 안에서 매일 알을 선사하는 두 마리 닭에게는 고맙다고 말한다. 신선한 달걀로 만든 계란찜에 가지와 호박 쌈을 찌고 호박을 넣은 된장찌개로 소꿉장난처럼 식사 준비를 하시는 할아버님, 이도 없이 잇몸으로 맛있게 오순도순 식사하시는 할머님은 어떤 진수성찬 산해진미보다도 푸짐하고 맛있는 식탁을 대하고 계셨다.
할아버지의 정성과 할머니의 감사의 마음이 합해진 소소하지만 아름다운 행복이었다. 할머니께서 몇 년 전 위암 수술하신 뒤 약해지신 뒤로 할아버지께서 손수 음식에 설거지에 빨래 등 집안일을 하시고,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그런 남편에게 한없이 감사하며 서로 의지하고 사셨다. 아등바등 바쁘게 살며 욕심 부리며 사는 우리 삶에 경종을 울렸다.
학교에도 안 가보셨다는 할머니를 위해 머리맡에서 시를 읽어주시는 할아버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매일 일기를 쓰신다는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한 소소한 일상을 일기에 담아내셨다. 영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아름답다는 말은 기본이고 두 분처럼 늙어가고 싶다는 말, 결혼할 생각이 없었는데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말, 그 외에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는 말과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는 댓글이 많았다.
두 분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76년을 해로하면서도 아직도 부인을 예쁘다고 말해주며 다정다감하게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부부가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오래 살면 갈등도 있고, 무관심은 아니더라도 무덤덤해진다.
특히 요즘 젊은 부부들은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서로 각자 할 일을 정해놓고 공평하게 나누며 손해 보거나 희생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기애가 너무 강하고 시대의 흐름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별일을 다 겪는데 정해진 틀 안에서만 살지는 못 한다. 누군가 더 희생이 필요할 때도 있고 자녀가 생겨 양육하다 보면 자기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헌신해야 하는 시간도 분명히 온다. 그럼에도 부모이고 가족이기에 서로 희생하며 부족한 것을 보완하며 평안한 가정을 만들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아이들은 커가고 안정이 찾아와 내 시간을 온전히 누릴 때가 온다. 그 시기를 자기만 희생한다고 피해의식을 갖거나 자기 삶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가정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둘이 마음을 합하고 힘을 합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식들이 다 커서 부모 품을 떠나고 두 분처럼 나이가 들고 해로하는 날이 온다.
두 분을 보며 많이 가져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서로 보듬어주며 마주하며 사는 삶이 부요한 삶이라고 느꼈다. 욕심 없이 사는 것. 말이 쉽지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은 많이 갖고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본능이긴 해도 정답이 없는 인생이다. 자기 가치관대로 살아가며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욕심 없이 살아가는 소박한 행복도, 큰 목표를 추구하며 성공해 만족하며 사는 것도 자기 행복이다. 어떤 잣대로도 평가할 수 없고 모두 똑같이 살 수도 없다.
다만 소박하게 사시는 두 분의 삶이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는 것은 없는지 생각하게 했다. 아등바등 시간에 쫓기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일을 안 하면 도태된다고 느끼고 약속이 없으면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고 느끼고 영화나 음악, 운동 등 문화생활을 누리지 않으면 무료하다고 느낀다. 늘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의식이 있고 목적의식 없이 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두 분의 삶을 보면서 편안히 누리는 여유로운 삶도 충분히 가치 있다.
두 분의 대화중에 "날이 좋으니 소풍을 가고 싶다." 는 할아버지의 말에 "90세가 넘어서 어디로 소풍을 가겠냐." 고 헛웃음지시는 할머니를 보며 두 분에게도 아직 하시고 싶은 소망이 엿보였다. 건강이 여의치 않으니 할 수 없는 그 마음이 체념이 아닌 내려놓으심 같았다.
두 분 최근 소식이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100세 넘게 사시다가 할머니 먼저 돌아가시고 몇 년 뒤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니 그렇게 가시고 싶었던 천국 소풍을 두 분이 손 꼭 잡고 가셨으리라 믿는다.
70평생을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이제 30년 산 우리 부부도 참 많이 살았다 싶다. 가끔 남편의 머리가 어느 새 이렇게 희여졌을까 싶기도 하고 깊어진 주름이 짠하기도 하다. 요즘 들어 나이가 드는지 자주 깜박거리고 잠이 많아진 것을 보면서 이제 늙었다고 놀리는데 지금 산 만큼 더 산다면 어떤 기분이려나. 자식이 나이 드는 걸 보고 아직 생기지 않은 손자 손녀가 자라는 것도 보려나.
두 분을 보며 100세 가까이 함께 장수하며 사는 모습도, 아직 그대로인 부부애도, 소박한 삶에도 만족하시는 참 복된 천생연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두 분처럼 소소하고 작은 행복만으로도 충만하며 아름답게 해로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