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고택

by oj


무르익은 가을이 끝나갈 때쯤 계획했던 여행을 앞두고 비소식이 있어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그것도 강한 돌풍을 동반한 비바람에 비의 양도 꽤 많을 거라는 소식에 말이다. 비오면 비오는대로 맑으면 맑은대로 즐길 수 있음이 여행의 묘미이긴 하다.

가을 고택은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서울은 비가 쏟아졌는데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여행지는 밤에만 비가 쏟아지고 아침부터 잔뜩 먹구름과 물안개만 머금고 비는 내리지 않았다. 누군가 날씨 요정인게 분명하다.


계룡산 한옥 펜션에서 맞은 비오는 아침은 그야말로 고요와 평온이다. 창문으로 보이는 기와와 맞은 편 우뚝 서 있는 산과 숲이 안개와 어우러져 그야말로 그림같은 풍경을 선사했다. 처마끝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바람에 나부낀채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 아직 남아있는 울긋불긋 단풍잎. 탐스러운 감이 떨어지지 않은채 여전히 달려있는 감나무. 가을 정취를 놓칠세라 운치 있고 정감 가득한 한옥에서 맞는 평온한 아침 신선했다. 한옥에서 나오다 보니 비에 떨어져 소북히 쌓인 솔잎과 낙엽 깔린 길이 한옥과 어우러져 은은한 가을의 향기를 풍겼다. 막바지 가을이 제대로였다.


다음 목적지인 완주에 자리잡은 아원 고택은 비온 뒤 아직 물을 머금고 있는 나뭇잎과 둘러쌓인 산. 고택 앞으로 소담하게 담겨져있는 정원의 물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바람에 물결을 잔잔히 일으키며 흔들리는 모습이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대나무 숲길로 이어진 숲길과 돌담으로 만든 계단까지 아름다운 정경은 고택의 고즈넉함을 그대로 안겨주었고 곧 쓸쓸히 사라질 가을의 정취를 아직 품고 있다. 정교하게 지어진 아름다운 한옥과 기와와 실래 전시관의 작품들을 둘러보고 아원 고텍에서 함께 운영하는 카페로 가니 카페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카페 입구부터 넓고 푸른 잔디가 잘 조성되었고 앞으로 흐르는 잔잔한 강이 마주한 산과 조화를 이루는 멋진 풍경을 가진 카페였다. 그 앞을 지키고 있는 두 마리의 차우차우를 보고 너무 귀여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덩치가 큰데도 얼마나 온순하던지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었다. 통창으로 보이는 하늘은 빠르게 흘러가는구름과 나무들이 마치 한 장의 엽서 같았는데 그런 곳에서 마신 커피향과 맛이 좋지 않을 수가 없다.


완주에서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전주에서 또 한번 한옥 거리를 맘껏 걸어다녔다. 완주와 다르게 바람이 강하게 불어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한옥 마을을 둘러보다가 처음으로 친구들과 한복 투어를 감행했다. 더 나이들기 전에 말이다. 한복 투어 로망은 없었지만 곱게 걸려있는 한복을 보니 여섯 명의 친구들이 모처럼 의기투합 했다. 하늘색. 분홍색. 노란색의 파스텔톤과 꽃무늬가 들어있는 빨간색과 아주 짙은 빨강 치마를 각각 개성에 맞게 고르자 머리까지 단장시켜 주셔서 단아하고 고운 모습으로 변신하니 달라보였다. 한복도 우아하게 너무 잘 어울리고 반머리. 올림머리. 머리띠 장식에 곱게 단장한 친구들이 아직 젊고 예뻐 다들 만족했다. 내년에 아들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제대로 혼주 예행 연습이라며 훈수를 두었다.


어느 새 바람이 잦아들어 애써 단장한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아 한옥집과 잘 꾸며놓은 정원에서 맘껏 사진을 찍고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까지 색다른 경험이었다. 30년지기 친구들의 우정이 고스란히 사진에 담겨졌다. 고교 동창생인 친구들이 열심히 20년을 각자 가정에 충실하며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다가 아이들 졸업 전후부터 만나기 시작하면서 10년 이상을 함께 해온 친구들이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고 희노애락을 함께 한 친구들이 웃고 마주하며 찍은 사진들을 보니 참 열심히 살아 오면서도 아직 얼굴도 마음도 곱고 예쁘고 밝아서 마음이 흐뭇했다.

중년의 나이쯤 되면 자기가 살아온 인생이 얼굴에 담긴다는 말이 있는데 다들 밝고 선한 모습이 역시 내 친구들이었다. 두 시간이 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덧 웃고 떠들던 시간이 지나고 전주 비빔밥으로 저녁을 먹고 피곤을 풀겸 쌍화차와 대추차로 여정을 마쳤다. 다들 소녀 감성 그대로인 친구들과의 여행은 언제나 그렇듯 매순간이 소중하다.


첫 날 펜션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들어가는 턱이 높은 것을 모르고 돌리다가 차 바퀴가 빠져 계속 헛돌아 오도가도 못해 결국 보험사를 불러 차 손상없이 해결한 웃픈 에피소드까지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은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은 대전 백화점에서 매장을 다시 오픈하게 된 친구의 새출발을 응원하며 그동안 오픈 준비로 바빠서 못 만난 친구를 만나러 온 목적 있는 여행이었다. 친구의 멋진 센스에 딱 맞는 고급진 매장도 잘 갖춰있고 각자 스타일에 맞게 고른 옷도 너무 마음에 들고 한옥펜션에 한옥 고택에 한옥 마을에 생각지도 못한 한복까지 이래저래 힐링이었고 흡족한 여행이 되었다.

친구들의 30년지기 우정은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또 한번 무르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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