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민준이 이야기
7화. 여기는 필리핀
공항에서 울고 있는 엄마 앞에서 애써 씩씩한 척 했지만 솔직히 몹시 떨리고 두렵다.
“엄마, 걱정 마. 자주 전화 하면 되잖아. 방학 때 꼭 오시구요.”
꼭 안아주시는 엄마품은 따뜻하고 아빠품은 넓었다. 등을 두드려 줄 땐 잘 할 거라고 믿게 해주셔서 그런지 용기가 불쑥 생겼다. 형준이는 지금 방학 두 달만 다녀오는 줄 알고
“엄마 아빠 빠빠. 두 달 있다 만나.”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픽 웃음이 났다. 마냥 어린 줄만 알았는데 투정도 안 부리고 씩씩한 형준이를 보며 단순한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 걱정, 동생 걱정, 부모님 걱정, 지욱이 걱정, 낯선 환경이 가져다줄 두려움과 학업 걱정 등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심란하고 복잡했다.
‘그래, 단순하게 생각하자. 부딪히면 되는 거고 다 잘 될 거야!’
부모님께서는 우리가 들어갈 때까지 떠나지 않으셨고 나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됐다.
고모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다는 대학생 누나를 따라 입국장으로 들어가 검색대를 통과하고 입국 심사를 마치고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형준이는 거대한 비행기가 즐비해 있는 것을 보며 신이 났지만 나는 맘 편히 즐길 수도 없고 내 눈은 벌써 형준이만 쫓아다니고 있었다. 부모님의 마음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형준이가 자꾸 신경 쓰여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으니...
4시간 뒤면 수도 마닐라에 도착이다.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두렵다. 기대감보다 걱정이 앞선다. 기내식 한 번 먹고 음료도 마시고 나니 도착을 했다. 누나를 놓칠세라 부지런히 쫓아갔다. 마닐라 공항은 인천공항에 비하면 작고 낡은데다 입국 수속도 엄청 느려 답답했다. 짐을 찾아 공항을 나와 밖에서 기다리는 고모와 고모부를 만나니 이제야 안심이 되었다. 한시름 놓고 나니 훅 들어오는 뜨거운 열기가 그제야 동남아시아에 왔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일단 날씨에 적응하는 게 급선무였다.
고모와 고모부께서
“오느라 고생했어. 민준이, 형준이가 언제 이렇게 많이 컸을까? 여기서 잘 지내보자.”
하시며 꼭 안아주셨다. 엄마 아빠 품과는 다르게 조금 어색했지만 다정한 분들이셨다. 예전에 필리핀 여행 왔을 때 우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셔서 그 때 처음 뵈어서 그런지 또렷이 기억났다. 다만 고모는 엄마와 다르게 부드럽기 보단 굉장히 강해 보이셨고 오히려 고모부 보다도 목소리도 크고 자신감 넘쳐보였다. 벌써 20년 전에 필리핀으로 오셨으니 적응하면서 많은 학생들을 케어하면서 성격도 바뀌시고 현지인이 다 되신 것 같았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지저분한 길에 놀라고 교통 체증에 또 한 번 놀랐다. 시내를 조금씩 벗어나자 빽빽이 밀집된 주택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비좁은 판자 집들, 그 사이 집집마다 늘어져있는 형형색색의 즐비한 빨래들은 사람들의 생활모습이 어떤지, 얼마나 낙후된 나라인지 짐작하게 했다. 교통 체증은 또 어떻고...자동차 사이로 트라이시클에 지프니가 빽빽 소리를 내며 마구집이로 지나가고 있었다. 신호가 없는 곳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 그런데도 잘 피해 운전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우리나라 잘 정비된 도로와 비교하니 놀라웠다.
몇 년 전 가족들과 필리핀 여행 때 하루 비가 왔는데 그렇게 많은 양이 아니었는데도 마닐라 시내 도로가 물에 잠겨 버스가 지나가기도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재해뿐 아니라 치안도 안전도 안심할 수 없는 나라이다. 고모가 초창기에 필리핀에 왔을 때 택시를 탔다가 큰일을 당할 뻔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택시 타고 조금 가다가 이상한 곳으로 빠지더니 가방을 뺏긴 채 택시에서 떠밀려 굴러서 다친 적이 있었다니 얼마나 놀라셨을까 싶다. 가방만 뺏긴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고 그 일만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고 했었는데 와서 보니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총기 관리가 허술해 최근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끊이질 않아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절대 혼자 택시 타서도 안 되고 환전소 근처나 은행 주변에서는 가방을 조심해야 된다고 신신당부하시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진짜 무서운 나라이다.
필리핀은 적도 부근 서태평양에 산재하는 7000여 개의 섬들로 구성된 나라이다. 에스파냐, 미국의 지배를 거쳐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처럼 일본 식민지였다. 식민지의 아픔이 있는 점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제국주의 일본이 손을 뻗치지 않은 나라가 없다니 또 한번 놀랍다.
필리핀 언어는 따갈로어지만 말만 있고 글은 없어 영어를 사용하고 페소라는 화폐를 사용한다. 10페소에 한화 250원 정도로 물가가 아주 싸고 빈부 격차가 심한 나라이다. 게다가 느리고 게으른 민족성을 갖고 있어 가난한 국민들이 많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태풍의 발생지인 필리핀은 화산과 지진 피해도 적지 않은 나라여서 걱정이 좀 앞선다. 엄마도 그 점을 가장 걱정하셨다.
1시간 정도 지나 고모 집 빌리지 가까이 왔다. 고급 주택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크고 화려한 대저택도 많았다. 진입로 입구에 경호원들이 총을 들고 경비를 서고 있는 모습도 충격이었다. 고모에게
“총을 들고 있는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
그러자 고모가
“여긴 치안이 안 좋고 빈부 격차가 너무 심해서 고급 주택가에는 모두 경비가 배치되어 있어. 안 그러면 안심하고 살 수가 없거든.”
고급 주택 대부분은 중국인들 소유이며 거의 모든 집들이 임대인데다 집값이 무척 비싸 집을 사기가 어렵고 부호들의 대부분도 중국인들이라고 했다. 중국인들은 자기 민족을 엄청 챙기고 돌보면서 똘똘 뭉치는 반면 한국인들은 상대방을 등쳐먹기 바쁘다고 말씀하시는 고모부 말에 앙금이 있었다. 아마도 예전 경험에서 나온 말씀 같았다. 한인사회에서도 한국 사람끼리는 서로 믿지 말라고 당부한다고 한다. 의외였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정이 많은 민족에 어려울 때 똘똘 뭉치는 민족으로 알고 있는데 그 점을 이용해 환심을 사고 친해지면 사기를 친다니 타국 땅에서 얼마나 배신감이 클까. 살아남는 방법치곤 수치스럽고 비열하다. 최소한 외국에서는 나라 망신을 시켜서는 안 될 것 같다. 물론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고모와 고모부처럼 지역 사회에 기여하고 한인들과도 잘 지내는 사람들도 많긴 하다.
집에 도착하니 제법 넓은 2층 주택에 방도 6개 정도가 있었다. 아떼들이라고 부르는 가사도우미 두 분, 튜터 선생님 한 분, 기사님 한 분, 중, 고생들 누나들과 대학생 형들까지 대식구였다. 인사를 시켜 주시고 방을 안내해 주셔서 짐을 두고 나왔다. 오래간만에 만난 사촌 누나와 형들과 북적거리다 보니 긴장감이 싹 풀리고 그제야 피곤이 몰려오며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고모가 잘 도착했다고 엄마께 전화하면서 전화를 바꿔주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제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아떼들과 튜터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셨다. 입주해서 살며 집안일과 영어 공부를 돕는 분들이다. 기사님은 출퇴근 하신다고 한다. 인건비가 싼 나라라서 대학을 나오고도 한인 가정에서 도우미를 하고 현직 교사들도 개인 튜터를 한다니 우리나라와 소득 격차가 정말 심한 것 같다. 싱가포르나, 호주, 캐나다 등으로 보낼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아쉬운 대로 동남아 유일한 영어권인 필리핀 유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싼 인건비와 저렴한 물가였다.
엄마 친구 분은 아이들 둘만 데리고 같이 필리핀에 와서 1년을 살다가 갔는데 기사분도 두고 아떼를 두어 집안일 다 해주고 아이들은 어학 연수하는 시간에 엄마 친구는 쇼핑. 골프. 스파 등 너무 편하게 지내셔서 1년 끝나갈 때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었다고 했다고 한다. 필리핀 지사에 발령난 분들도 올 땐 가기 싫어 울지만 돌아갈 땐 오기 싫어 운다고 하는 말도 들었다. 그만큼 필리핀이 인건비가 싸서 편리함을 많이 누리는 장점도 많다. 필리핀이란 나라에 온지 하루도 안 되어 많은 사실을 알았지만 배울 점 보다는 실망스러운 점이 많았다.
형준이와 사촌 형과 함께 2층 침대 두 개가 놓여있는 방을 쓰게 되었다. 사촌형은 나와 한 살 차이밖에 안 나서 친구처럼 잘 통할 것 같았다. 중학생형과 누나들은 홈스테이 온 초등생은 우리가 처음이라며 엄청 귀엽다고 했다. 집에선 항상 형이고 그 만큼 책임감이 따랐는데 여기선 막내니 막내라는 특권을 맘껏 누려도 될 것 같았다. 형준이도 형과 누나들이 장난감처럼 귀엽다고 해서 기분이 좋아보였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대충 짐을 정리하고 동남아에서 제일 인기 있는 과일인 망고를 먹었다. 망고를 보니 망고를 너무 좋아해 망고 먹으러 동남아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엄마 아빠 생각이 났다. 방마다 놓여있는 에어컨 덕분에 시원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지만 밤마다 기도해주시며 머리를 쓰다듬고 뽀뽀해주시던 엄마의 온기가 그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첫 날인데 잘 지낼 수 있을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부모님 생각과 낯선 나라와 낯선 친구들. 낯선 환경과 기후에서 과연 잘 지낼 수 있을지 형준이는 투정 안 부리고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으로 설치다가 잠이 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