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적응 되어가는 생활

by oj


필리핀에서 내가 다닐 학교는 라살 대학교 부속 초등학교였다. 학기 시작이 6월이고 3월이면 끝이 난다. 4,5월은 방학이라는데 지금이 1월이니 당분간은 집에서 매일 튜터 선생님과 영어 과외를 하고 수학 문제집 풀면서 학기 준비를 하기로 했다. 튜터 선생님과 공부는 어렵지 않았다. 그림으로 영어 단어와 간단한 문장을 가르쳐주시면서 하루 몇 시간씩 공부하고 있는데 지루하지 않았다. 올 때 가지고 온 수학 문제집도 밀리지 않게 열심히 풀고 있다.


시간 날 때면 형과 누나들은 지프니를 타고 시내에도 나간다. 지프니는 필리핀 대표적인 교통수단인데 원래는 2차 세계대전 후에 남겨진 미군용 지프를 개조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지프 차량의 뒷부분에 좌석을 늘리고 화려한 색으로 치장해 인기 있고 저렴한 대중 교통수단이 됐다. 지금은 지프니 개조 공장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차들이 생산되고 10페소 정도로 이용해 부담 없다. 한국의 마을버스와 같은 개념이지만 정류장이 따로 없이 아무 곳에서나 타고 내리니 정말 편하고 탈 때마다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타고 가는 기분이 무척 신난다. 우린 아직 어려서 고모나 고모부 없이는 밖에 나가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 했지만 형들과 몰래몰래 가까운 시내에 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잘 적응하는 나를 보며 고모도 맘을 놓으시는 것 같았지만 형준이는 아직 어려서 예외였다. 고모가 옆에 딱 붙어있고 고모도 어디든 데리고 다니셔서 내가 좀 안심이 되었다.


저녁을 먹고 한 낮의 열기가 식으면 운동 삼아 동네 한 바퀴를 다 같이 산책한다. 낮엔 너무 더워 운동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달리기 시합을 하다가 놀이터가 나오면 한바탕 놀고 줄넘기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술래잡기 하며 노는 동안 누나들은 고모와 간단한 스트레칭을 했다. 이 시간이 제일 즐겁다. 다만 습한 더위도 스콜 현상도 태풍도 다 참을 수 있는데 진짜 참을 수 없는 건 모기, 바퀴벌레, 쥐, 도마뱀이다. 혹시 몰라 필리핀 오기 전에 말라리아 접종은 하고 왔지만 모기가 진짜 많았다. 바퀴벌레는 크기에 한 번 놀라고 날아다니는 걸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밤에 동네 한 바퀴 산책할 때 하수구 근처에서 손가락 두 개만한 바퀴벌레가 나와 화들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하수구 주변에는 주먹크기 만한 쥐들이 다니고 있어 누나들은 매일 보면서도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다. 도마뱀은 샤워할 때마다 만난다. 욕실 벽이나 천장에 붙어있는 손바닥크기 만한 도마뱀은 이제 놀랍지도 않고 나머지들에 비하면 귀여운 동물이다.


고모는 아떼들에게 식사 재료 준비와 설거지만 시키고 요리는 한식으로 직접 하신다. 반찬들과 밥을 큰 접시에 뷔페식으로 담아 식탁에 올려놓으면 각자 접시에 먹을 만큼 덜어서 먹는다.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닭볶음탕. 갈비. 소불고기. 제육볶음 등 고기는 거의 빠지 않고 밑반찬으로 마른 멸치나 김. 어묵볶음 등 집에서 먹는 것과 비슷했다. 같은 한식이라도 식탁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을 보면 문화 차이를 무시 못 한다. 망고에 망고스틴, 바나나 등 과일이 떨어지지 않지만 식구들이 많으니 많이 사다놔도 금방 동이 나버린다. 열대 과일은 다 맛있는데 두리안만은 친해지기가 쉽지 않다. 똥냄새 같은 불쾌한 냄새가 나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두리안을 맛있다고 하는 고모 고모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주말이면 SM이라는 필리핀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백화점에 가서 종일 시간을 보낸다. 쇼핑, 레저, 식당가가 즐비해 있지만 서민들은 언감생심 가보지도 못하는 곳이란다. 빈부격차가 진짜 심한 나라이다.

특히 톤도라는 지역의 파롤라 마을은 쓰레기 마을로 유명해 그 곳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최빈민 주민들이다. 정부조차 포기한 최악의 빈민가에 우범지대여서 아이들이 종일 쓰레기를 뒤지며 생필품을 구하고 하루하루 연명한다고 한다. 정부조차 미관상 좋지 않다며 장벽을 세워 마을이 보이지 않게 가려 ‘눈 가리고 아웅’인 정치를 하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예전에 우리나라도 난지도라는 쓰레기장이 산을 이루었지만 그 곳을 매립해 멋진 생태 공원으로 만들고 주변 지역을 정비해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었는데 이 나라는 왜 그 지역을 포기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엄마 아빠와 가을 억새를 보러 하늘 공원에 오르던 생각이 났다. 하늘 공원이 쓰레기산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조성된 공원이다. 가파르고 경사진 수많은 계단을 지나 하늘 공원까지 오르면 경관도 멋있고 바람에 날리는 억새가 참 예뻤는데 여름만 있는 이 나라에선 2년 동안이나 가을 정취를 보기 힘들겠구나 싶었다.

필리핀은 왜 같은 나라의 한 지역을 포기했는지 모르겠다.


고모가 후원하는 선교 단체가 톤도에 있어 같이 따라 가본 적이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판자 집과 겨우 엮어놓은 수상가옥에서 위태롭게 사는 열악한 가정이 대부분이었다. 열악하다 못해 처참했다. 아빠들은 대부분 수입이 적은 바나나 농장에서 일하고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다자녀를 두고 먹고 살기 힘든 엄마들은 자녀들을 돌보느라 힘겨워 보였다.

지역 주민들의 아이들을 돕는 선교 단체에서 드림센터를 운영하며 방과 후 프로그램을 지도하고 교육과 레저를 도맡아주면서 간식을 챙겨준다. 깨끗한 환경에서 돌봐주니 인기가 많아 너도 나도 들어오려고 해서 대기자만 수십 명이라 한 가정 당 한 명씩만 받는 규정을 두었다고 했다. 센터 안에서 노랫소리가 나오고 맛있는 간식을 먹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문밖에서 서성이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절대 동정을 베풀면 안 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문 앞에 있는 아이들이 안쓰럽다고 과자를 챙겨주거나 빵을 주면 몰려드는 아이들로 인해 규칙이 깨져 혼란해진다고 했다.

고모는 자원 봉사뿐 아니라 몇 명의 아이들과 결연해 후원을 하고 있었다. 유치원생은 3만원, 초등학생은 5만원의 후원금이면 아이들이 계속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께서도 콩고라는 나라의 선교를 돕고 계신다. 엄마의 이종사촌 동생이 콩고 선교사 부부로 계시면서 아이들을 셋이나 낳고 10년 동안 콩고에 살면서 교회도 짓고 최근엔 학교까지 지어서 초. 중. 고교학생들까지 학교 운영 하면서 어려운 콩고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하고 계신다.

콩고는 프랑스영이어서 프랑스에서 언어 연수를 하고 파송되셨는데 프랑스어로 설교를 하면 현지인이 콩고말로 번역을 하면서 콩고 교인들이 설교를 듣는다고 한다. 세 아이들은 프랑스어. 현지어에 영어. 한글까지 네개 언어를 안다니 대단하다. 난 영어 배우기도 이렇게 벅찬데 말이다. 3년 정도에 한 번씩 나오실 때마다 만나서 식사하고 콩고식 예배와 생활에 대해 실감나게 전해들었다. 그 나라는 말라리아와 아이들에겐 수두가 가장 심각해서 말라리아 센터 건립 목표 우선으로 하시며 선교하고 계시다.

나도 이다음에 꼭 어려운 나라를 돕고 싶었다. 나라나 부모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데 가난한 나라에서 더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고통 받고 그 가난은 또 다시 대물림이 되니 주변 국가에서도 인도주의적 차원으로 서로 돕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부모님께서 늘 나에게 강조하신 말씀이다. 우리도 가난한 나라였을 때 주변 나라의 도움으로 지금은 고도로 성장했다고 했는데 예전에 우리보다 잘 살던 필리핀은 왜 이렇게 됐을까. 여러모로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지만 사회가 역행하고 있는 것 같아 좀 안타깝다.

일본에 독립된 것도 위안부 문제도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었는데 대처 방법은 사뭇 다르다. 고모가 언젠가 뉴스를 보실 때 필리핀 정부는 우리나라 김학순 할머니와 같은 최초 증인이신 고 롤라 핸슨 할머니의 위안부 증언에도 불구하고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 때문에 미혼적인 태도라고 화내신 적이 있었다. 생활 기금이 필요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은 기금을 수령해서 현재 국가 지원도 못 받은 채 민간지원과 후원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면서도 사과를 받을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한다.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제 몇 분 안 남은 우리나라나 필리핀 위안부 할머니들도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야 하지만 여전히 일본은 뻔뻔하게 일관한다. 역사 청산을 끝내고 반인류 범죄를 인정하고 잘못을 저지른 나라에 사과를 해야 한다. 독일처럼 말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영향이 안 미친 곳이 없으니 만약 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했다면 어떠했을지 상상이 안 된다.


주말에 MCU에 가면 각자 정해진 시간까지 놀다가 다시 만나기로 하고 점심도 각자 마음에 드는 메뉴를 골라 먹는다. 스테이크가 한화로 만 원도 안 넘는데다 특히 고기값이 싸서 고기를 좋아하는 우리로서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니치(green witch) 음식점에서 라자냐도 먹고 차오킹(chowking)에선 팥빙수와 같은 할로할로(halo halo)를 먹는다. 오면서는 길거리 오징어 튀김이나 내장꼬치 사먹으면 그 날은 최고의 날이다. 가끔은 졸리비(jollibee)라는 패스트푸드에 간다. 맥도날드를 제친 인기 명소인데 주로 치킨이나 치밥, 햄버거를 먹는다. 주말이면 주로 남자들은 오락실, 여자들은 문구점에 간다. 오락실은 카지노처럼 코인으로 환전해서 저격 총 게임과 오토바이 게임을 주로 하면서 가끔 코인을 따는 게임이 있었는데 코인은 다시 환전하면 된다. 영화 보러 갔을 때는 영화비가 450페소로 한화 약 만 원이라 비싸서 깜짝 놀랐다. 내 한 달치 용돈이다. 한국에서는 제일 쉽고 부담 없는 레저 활동이 영화 관람이지만 필리핀에서는 상위 사람들이나 보는 고급문화 활동이다. 현지인들은 주로 길거리 농구를 하고 투계라는 닭싸움으로 도박을 즐기기도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데리고 가주시는 곳 중에서 가장 좋은 곳은 골프장과 수영장이다. 필리핀은 땅이 넓어서 곳곳에 골프장이 많아 저렴한 비용으로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고모 고모부도 자주 즐기시고 특히 한국 사람들이 골프 여행을 자주 온단다. 골프채를 잡고 자세를 배우는데 만도 한참 걸렸다. 내겐 너무 어려운 운동이다. 수영은 최고의 레저이다. 물에만 들어가면 물 만난 고기처럼 팔딱거린다. 더운 탓도 있겠지만 물에 감기는 그 부드러움이 좋고 힘들면 배영으로 하늘을 보고 누워있으면 그 편안함이 좋다. 지난 번 화상 통화할 때 엄마 아빠도 요즘 수영에 한참 재미를 붙이셨다는데 다음에 오시면 물놀이를 함께 할 생각에 벌써부터 들뜬다.


특별한 연휴나 방학에는 섬들이 많은 곳이라 가까운 바닷가에 간다. 바탕가스란 곳에 갔을 때 호핑투어를 했다. 스노클링을 하면서 다양한 색깔을 지닌 열대 물고기를 만나고 통통배를 타고 낚시를 해서 물고기도 잡았던 기억은 한국 가서도 두고두고 못 잊을 것 같다.

형준이도 제법 적응을 잘 하고 있다. 투정은 안 부리지만 고모 고모부 옆에 착 달라붙어 관심 받고 싶어 하는 게 보인다. 막내이고 이제껏 사랑을 듬뿍 받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직 엄마 손이 필요한 어린 애니까...다행히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어 안심이 되었지만 아빠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내 머릿속에 박혀있다. 아빠가 없을 땐 내가 아빠 대신이고 아빠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시던 말씀이 그 땐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형준이가 안 보이면 난 어느 새 형준이를 찾고 있고 내 눈에 보여야 안심이 되는 이 마음을 말하나 보다.


저녁을 먹고 나면 가끔 고모가 한 방에 소집을 하신다. 용돈 주는 날 모이기도 하고 다 같이 단어시험을 보고 선물 증정식을 갖기도 한다. 한 달 용돈은 초등생은 500페소, 중고등학생은 1000페소, 대학생은 2000페소씩 지급되고 단어 시험 100점이나 1등 일 때는 상품으로 주시는 10페소씩 모으는 재미도 쏠쏠했다. 생일이 돌아오면 십시일반 용돈을 걷어 생일 선물을 준비하고 파티를 한다. 케이크를 자르고 선물을 주며 고모는 타국 땅에서 보내는 생일이 외롭지 않도록 마음을 많이 써주시면서 최대한 시끌벅적한 생일을 보내게 만든다. 가족들이 많다보니 생일파티가 매달 있고 나와 형준이도 필리핀에서 처음 맞는 생일파티는 특별했다. 고모가 엄마처럼 미역국과 잡채, 불고기는 해주시며 누나와 형들이 선물도 잔뜩 받았다. 물론 한국에선 주로 토요일에 친구들을 점핑존에 초대해서 하루 동안 실컷 노는 특권을 갖는 생일파티를 했지만 이번 생일도 나쁘지는 않았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적응 능력은 참 빠른 것 같다. 아직 학교생활을 안 해서 그런지 지금까지 큰 걱정 없이 무난한 생활이 이어지고 있어 처음 걱정 되었던 내 마음이 어느 새 사라졌지만 6월이 되고 첫 학기가 다가오니 조금씩 마음이 무거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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