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서울 수복

by oj


9.18 서울 수복은 많이 들어서 알고 있던 얘기였다. 인천상륙작전 직후 9월 18일에서 28일까지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회복한 중요한 사건이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덕분에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탈환한 중요한 사건이자 전쟁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다. 그 당시 김포 비행장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는 얘기를 언젠가 할아버지께 들은 적이 있었다.

엄마와 함께 보러 갔던 < 인천상륙작전 > 이란 영화도 내가 역사 지식을 갖는데 한몫했다. 엄마는 역사 영화가 나오면 꼭 같이 보여주셨고 부연 설명까지 자세히 해주셔서 나에겐 책 외에도 엄마가 역사 선생님이시다. 영화에서 인천상륙작전이 거의 불가능한 모험에 가까웠지만 감행해낸 맥아더 장군의 결단력과 용기. 급박하게 돌아가는 긴장된 상황. 우리 국군의 활약이 실감나게 그려지면서 가슴 졸이며 봤는데 그 상황이 할아버지가 겪은 실제 상황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국군이 힘차게 진격을 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기뻐하는 마을 사람들 모습도 떠올랐다. 할아버지께서 그 역사적 현장에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신기했다. 일기는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동네에 있는 쌀을 모아 밥을 하고 닭을 잡아 국군 장병들에게 갖다 주고 환영을 하면서 또 해방된 분위기를 맛보았다. 하지만 국군이 환도하기 전 9월 초부터 인민군 동태가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이웃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다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 전에 아군기가 출현하였는데 호주 비행기인 쌕쌕이였다. 또 제비 비행기, 폭격기, 전투기, 쌍둥이 비행기 등이 날아다녔다. 비행기 소리만 나면 집으로 들어가 숨곤 했다. 인민군이 동네 사람들이 비협조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부역을 하곤 했다. 그 때 당시 운정과 금촌 간 사이에 있는 다리가 폭격에 끊겨 다리 놓는데 부역을 간 거였다. 9.28 당시 능곡에 미군이 들어왔다고 하여 나는 구경을 하려고 능곡으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 인민군이 다리 밑에서 어디 가느냐고 묻기에 능곡 할머니 댁에 식량을 구하러 간다고 하니까 어리기에 놔주었다. 우리 집에서 능곡까지 10리였다.”


10리가 얼마쯤 되는 거리인가 찾아보았다. 4km 되는 거리였다. 아빠에게 여쭤보니 호수공원 한 바퀴 도는 거리 정도 된다고 했다.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해서 일기장을 덮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장면 장면들이 떠올랐다. 독 속에 숨어 지낸 일이나 인민군에게 대항해 소리를 친 일, 탈주한 일 등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었다. 그렇게 어렸던 할아버지가 그 때 일을 그렇게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두렵고 공포스러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저녁을 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다시 일기장을 펼쳤다.


“능곡역쯤 가니까 미군들과 탱크가 행주 쪽에서 진군을 하여 능곡에 진을 치고 우리 동네 쪽으로 탱크포를 쏘았다. 그 이튿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마을에도 미군이 들어와 계속 북쪽으로 진격하였다. 피난 가셨던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기쁨도 잠시 그 해 겨울 음력으로 동짓달인데 1.4 후퇴라는 미명 아래 또 다시 고생길이 시작 되었다.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북한군이 다시 서울을 재점령해 인공기가 올라갔다고 했다. 아버님은 또 다시 피난가시면서 장남인 형만을 데려가셨다. 그러면서 어머님한테는 동네에서 50리나 100리 정도 되는 곳으로 빨리 피난을 가라고 당부하셨다.

남은 식구들도 짐을 꾸려 피란길에 나섰다. 둘째 사촌동생이 태어나서 작은 어머님은 젖먹이를 업고 나섰다. 먹을 것이라곤 쌀 4말이었다. 어머님이 두 말, 누님이 두 말을 이고 돈 6백환과 계란 판돈, 그릇과 숟가락 몇 개를 쌌다. 나는 이불 보따리를 짊어지고 할아버님께서는 지게에다 이부자리를 짊어지고 피난길에 올랐다. 작은 아버님께서는 제 2 국민병이란 단체를 따라가셨다.

우리 일행은 덕은리에서 하루 묵고 새벽 훤히 날이 셀 무렵 한강 얼음을 건너게 되었다.

가는 도중 미군기가 기총 사격을 하여 많은 피란민이 희생되었다. 나는 하도 무서워 이불 보따리를 내려놓고 그 속에 머리를 박고 한참을 있었다. 잠시 후 조용해져 일어나 보니 죽은 사람과 부상당한 피난민들이 즐비했다. 나는 너무 무서워 가족들이 어떻게 된 줄도 모른 채 다시 이부자리를 짊어지고 찾아 나서려고 하는데 얼음판이 미끄러워 도저히 짐을 짊어질 수가 없었다. 두리번거리니 누님이 오는 것을 보고 반가워 소리쳐 불렀다. 누님은 피난 중에 내가 안보여 죽었는지 확인하러 오신 거라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우리 식구들은 부상 하나 없이 강을 건넜다. 가다가 할아버님께서 춥고 놀랐으니 빈집에 들어가서 쉬어가자고 제의해 집에 들어갔다. 당산동쪽이었던 것 같다. 그 집 식구들은 하나도 없고 방은 따뜻했고 부엌에서는 고추장에 돼지고기 기름 넣고 끓고 있었다. 한강 폭격 바람에 줄행랑을 친 모양이었다. 덕분에 맛있게 먹고 따뜻한 방에서 쉬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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