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과 두만강 유역까지 북진했던 유엔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11월 말부터 다시 서울을 빼앗기며 서울 이남까지 후퇴한 1.4 후퇴가 일어났다. 1.4후퇴는 그렇게 북으로 진격한 우리군의 사기와 전쟁이 끝날 거라는 국민들의 염원을 사그라지게 만든 비극적 사건이다. 이 때 북한 주민들도 대거 피란을 내려와 부산에 정착하게 된 흥남철수작전은 영화의 소재가 됐을 만큼 유명하다. 엄마. 아빠랑 같이 보러갔던 영화 <국제시장> 에서 북에 있는 피난민을 배에 태워 철수시킬 때 배에 타다가 동생을 잃고 평생 죄책감에 빠진 어린 오빠의 이야기가 너무 슬펐는데 그 사실이 할아버지 시대에 영화가 아닌 현실이었다. 이산가족이 된 오빠의 여동생은 미국으로 입양 되어 나중에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이산가족상봉 신청으로 만나게 되며 울부짖는 이야기도 마음이 아팠다.
그 당시 난민과 피란민이 10만 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피란길에 오르신 어린 할아버지와 고조할머니, 고조할아버지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할아버지께서 보여주셔서 흑백 사진으로 뵌 적은 있었는데 가족을 이끌고 가시는 두 분의 모습이 막중한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우셨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강을 걸었다는 부분에서도 전쟁 직후 시간을 벌기 위해 한강 다리를 폭파하면서 많은 희생자가 생겼고 길이 끊긴 사람들이 한강을 건너다가 빠져죽은 사람이 많았다고 들었다. 정치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국민들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한강 폭파 명령을 내린 직후 바로 대통령은 피신을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희생자가 많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는데 그 추운 겨울에 어린 할아버지도 한강을 건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한강을 건너다가 빠져죽은 사람들 이야기며, 한강 철도가 끊겨 피란에 어려움이 많았던 사람들 이야기며 글로 읽었을 때와 느낌이 달랐다. 진짜 전쟁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너무 긴장 되고 무서웠다. 할아버지 일기는 이렇게 이어졌다.
“이곳을 출발하여 오후쯤 걸었을 때 시흥역을 지나쳤을 무렵 시흥역 구내에 열차가 있었다. 할아버님께서는 열차를 타자고 했는데 할머님께서는 살려고 나왔는데 죽으려고 하냐며 식구들을 재촉하여 시흥 둑을 걸어서 한참을 지났다. 그 때 상공에서 비행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와 남쪽 하늘을 보니 전투기가 새까맣게 날아오더니 시흥역 구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한강이나 시흥에서의 폭격은 중공군으로 오인한 폭격이었다. 할머님께선 저것 보라며 할아버님을 꾸짖으시고 우리 일행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걸어오는 도중 안양 쪽에서 콩 볶듯 하는 소리가 들려 물은즉 안양에 있는 탄약고가 타면서 나는 소리라고 했다.
오는 도중 길가에 버려진 노인들과 죽어서 나자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아 눈을 질끈 감고 죽은 시체를 비켜서며 걸어야만 했다. 시체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이제 무섭지도 않았다. 오직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처럼 될 것 같았다.
안양 근처 어느 마을에서 하루 저녁 자고 일찍 일어나 할머님께서 큰 길은 피하고 소로 길로 가야 한다면서 안양 수리산을 향해 산길을 따라 걸었다. 얼마나 고생이었는지 모른다. 신발은 부실하고 지고 있는 이불 보따리는 무겁고 죽을 지경이었다. 하루가 지나갔다.
부곡을 지나다 부곡역전에서 여동생이 떡을 사달라는 것을 어머님께서 꿀밤을 한 대 때리니까 울면서 대열에서 이탈했다. 동생을 찾느라 부곡 고개에서 식구들이 사방으로 찾아다녔다. 누님이 수원에 가서 겨우 찾아왔다. 하마터면 이산가족이 될 뻔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경부선 철길은 그야말로 피난 가는 사람들 때문에 인산인해를 이뤄 여차 하면 식구들과 헤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병점에서 하루 쉬고 철길 따라 가고 있는데 점심때가 되니까 오산역을 지나게 되었다.
역전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으려고 할머니께서 들여다보시더니 식구들을 재촉하여 다시 산길로 데려가셨다. 그 때 할아버님께서 크게 불만을 터뜨리셨다. 힘들고 배고픈데 또 산길을 간다며...배고픔을 참고 산모퉁이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쪼그리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행기가 와서 오산역을 폭격하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할머님 덕분에 위기에서 목숨을 몇 번이나 구했는지 모른다.
할머님께서는 이제부터 사람이 많은 데는 항상 피하라고 신신당부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