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피난길의 고통

by oj


진짜 고조 할머님은 선견지명이 있으셨나 보다. 기차를 타지 않은 일과 오산역에 들어가지 않은 일로 두 번이나 폭격을 피해 가족들의 목숨을 구한 셈이다. 만약 그 때 그 곳으로 들어가셨다면 할아버지 가족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거나 큰 장애를 입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또 할아버지 여동생과 헤어져 이산가족이 되었다면 지금까지 후회와 회한 속에서 사셨을 텐데 간신히 찾았다니 다행이었다. 긴장하며 계속 일기를 읽어나갔다.


“그 길로 오산 어느 마을에 들어가서 부잣집 사랑채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잠시 정착하기 원했는데 안주인 아주머님께서 흔쾌히 허락을 해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아주머님께서는 숨어 지내는 것이다. 사연인즉 아저씨께서 피난을 가셨는데 평택 다리가 폭격을 당하여 그 트라우마로 불안해서 그러신 것이다. 어머님께서 도량이 넓으시니 무사할 거라며 위로를 하셨다.

어느 날 저녁에 잠을 자는데 밖이 낮같이 환해졌다. 소위 조명탄이란 게 공중에서 터지며 낮같이 밝아졌다. 밤새워 비행기가 폭격을 하는데 우리 식구들은 폭격이 떨어질까 무섭고 두려워 죽는 줄 알았다. 어머님께서 귀를 막으라고 하면서 우리를 안심시켰다. 우리는 그 동안 식량이 떨어져 겨우 죽만 먹고 있었다. 반찬은 간장에다 소금뿐이었다. 볶은 소금에 고춧가루를 섞어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할아버님하고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갔다. 윗동네 마을이 꽤 커서 그리로 갔다. 그 때가 10시쯤 되었는데 마을이 잠잠했다. 왜 그럴까 하며 대문에 들어서니 비릿한 냄새가 났다. 벽과 천정 기둥은 총탄 자국에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었다. 할아버님께서 마루로 올라가셔 방을 들여다보시더니 고개를 돌리셨다. 나도 호기심에 올라가서 방안을 들여다보니 식구들이 모두 몰살당해 있었다. 어제 저녁 비행기 폭격이 이 비참한 참상을 낳은 것이다.

할아버님과 나는 뒤편에 있는 마당에 김칫독이 있어 얼어붙은 것을 삽으로 캐내서 항아리를 들고 나왔다. 김치 구경을 한지 꽤 오래 되었는데 그 집 식구들은 영원히 잠 들었지만 우리 식구들은 오랜만에 김치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불행이 누군가의 행복이 되었다니 죄스러웠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식구들도 어제 저녁 폭격 소리에 놀라 다시 짐을 싸야 했다. 눈이 많이 내려 쌓여있어 길을 가는데 스키복 같은 흰 옷을 입은 중공군이 진군을 하고 있어 우리 일행은 돌아섰다.

그 이튿날 오산 어느 근처에서 묵었는데 식량이 떨어져 굶을 때가 더 많았다. 배가 고파 지친 상태에서 동생은 밥 달라고 울고 작은 어머님께서는 젖먹이 사촌 동생 때문에 영양실조에 걸리셨다. 젖은 안 나왔지만 동생은 빈 젖을 물고 힘이 없었는지 별로 울지도 않고 잘 참았다. 먹을 것도 없고 배고픈 채 잠은 찬 흙방에서 가마니 깔고 자기 부지기수였다.”


빈 젖을 물고 있는 할아버지 시촌 동생이 너무 불쌍했다. 영양실조에 걸리신 작은 할머님 일도 안타까웠다. 전쟁이 낳은 참상이며 참혹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피난길에 널브러진 시체들도 배를 곯으며 영양실조로 신음하는 가족들도 먹을 것을 찾아나선 가족들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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