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주버님과 형님이 필리핀으로 가신 건 20년쯤 전이다. 지방에서 PVC 사업을 하던 사업장이 불이 나면서 사업을 접고 가족들과 함께 필리핀으로 가셨다. 그 곳에서도 사업을 할 계획이었지만 아는 분을 믿고 가셨다가 사기를 당하고 초창기엔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 그러다가 형님이 지인의 자녀들을 맡아주며 홈스테이를 시작하고 아주버님 사업도 안정을 찾아가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으셨다.
아이들이 셋인 형님의 막내 아들은 유치원쯤 나이 때 필리핀에 가서 아이들과 소통이 안 되고 답답하고 놀리는 아이들과 싸우며 적응하느라 엄청 힘들었다고 했다. 두 딸은 차분하게 영어도 잘 배워가며 공부도 잘 했는데 매일 학교에서 싸우고 오는 아들 때문에 속앓이를 하셨다. 그런 아들이 시간이 지나자 따갈로에 유창한 영어까지 해서 대학 졸업 후엔 큰 호텔에서 귀빈들을 모시는 일을 담당했다.
아는 지인은 두 딸들을 방학 때마다 대학 영어 캠프를 보냈다. 그런 지인을 보며 나만 너무 안일한가 싶었다. 그 때 처음으로 형님이 사시는 필리핀에 아이들을 보내볼까 남편과 진지하게 상의했다. 계속 있을 게 아니면 초등학교 때 단기간 다녀와야 중.고등학교 과정에 지장이 없을 것 같아 신속하게 결정 하고 갑자기 서두르게 됐다.
필리핀은 물가가 싸서 다른 곳에 비하면 교육비 부담도 덜하고 남도 아니고 형님 가족에 홈스테이 아이들까지 대식구가 살 테니 적응하기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아 기회다 싶어 맘을 먹었다.
친한 친구는 아이들 둘을 데리고 1년간 아예 필리핀 생활을 같이 하고 왔다는 사실을 나중에 듣게 되었다. 우리 애들과 시기가 비슷했다. 집을 얻고 물가가 싸서 아떼를 두고 집안 일을 맡기고 아이들은 집중 영어 마스터 어학원에 보내고 친구는 스파에 맛사지에 먹거리에 쇼핑에 필리핀 생활이 너무 만족해서 돌아올 때는 아쉽기까지 했다고 했다. 그래서 동남아에 처음 갈 땐 가기 싫어 울면서 가고 올 땐 오기 싫어 울면서 온다는 우스갯 말도 있나 보다.
큰 아들은 6학년 때. 작은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겨울 방학을 하자마자 방학 두 달만 가는 거라며 아이들을 설득시키고 처음엔 1년을 계획했다가 2년은 배워야 제대로 배울 것 같다며 아이들을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나도 그즈음부터 갑자기 수업이 많아져서 바빠졌고 영어 열풍이 불면서 아이들을 위해 선택한 결정이었고 가족이라 안심하고 보낼 수 있었는데 결과적으론 대만족이었다. 아이들 영어 실력도 향상되었고 돌봐준 형님 부부께도 너무 감사했다.
1년에 두 번 정도 아이들을 만나러 필리핀에 갔다. 가면 같이 바닷가로 여행도 가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할나위없이 기뻤다. 잘 적응하고 있었지만 다시 두고 올 때는 마음이 아팠다. 영어가 뭐라고 아직 어린데 품에서 떨어뜨려놓고 뭐하는 건가 싶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러 돌아오게 되었을 때 정말 기뻤다. 아이들이 다닌 학교는 대학 부설 초등학교였다. 2년을 학교에 다니고 왔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 거긴 3월에 학기가 마쳐서 큰 아들은 중2로. 작은 아들은 5학년으로 한 달 늦은 4월에 각각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필리핀 학교에 다니면서 불편했던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했다.
필리핀에 다녀온 작은 아들은그 전보다도 훨씬 모든 면에서 월등히 잘 했다. 5학년 선생님도 잘 만나 무리 없이 공부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가선 영어는 기본이고 수학 성적도 우수했다.
반면 큰아들은 중2때 와서 영어는 수월했지만 수학을 따라가기에 버거웠는지 성적이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난 크게 성적에 개의치 않고 아이들에게 앞으로 잘 하면 된다며 야단 안 치고 다그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두 아들에게 대하는 내 말투에서 차별이 느껴진다고 남편이 주의를 주었다.
큰 아들에겐 목소리 톤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톤이 높고 날카로운 반면 작은 아들에겐 낮고 부드러운 톤으로 말한다고 했다. 난 아니라고 했지만 내 본심에서 큰 아들에 대한 불만들이 목소리로 표출되었던 것 같다. 자식들을 똑같이 사랑해도 기쁨을 주는 정도가 다르면 차별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 아차 싶었다. 그 뒤로 조심하고 큰 아들에게 더 많은 칭찬거리를 찾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설렁설렁 놀며 공부하다가 고2 때 만난 수학 학원 선생님이 좋은 멘토가 되어주셔서 뒤늦게 학구열을 올려 간신히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대학에 올라가선 만족한 대학 생활을 누리며 원없이 놀아 1학년 때 엉망이던 성적도 군대 제대하자마자 정신 차리고 계절 학기를 듣고는 성적을 다 복구했다. 3.4학년 때는 학생회 활동에 공부도 열심히 해서 대학 생활을 마치고 회사에 입사해 지금은 벌써 4년차 직장인이 되어간다.
둘째 아들은 꾸준히 고등학교. 대학교 좋은 성적을 받으며 성실히 보낸 덕분에 입사해 만족하게 일하고 있다. 공기업 입사를 원했지만 쉽지 않았다. 남편은 재수도 휴학도 안한 아들이 아직 젊으니 더 준비해서 원하는 곳에 가기 바랐지만 조바심을 낸 아들은 합격한 회사의 입사를 선택해 2년 차가 넘어가고 있다. 난 아들 의견을 존중했다.
주말마다 오는 아들들에게 일이 적성에 맞는지 스트레스는 많지 않는지 항상 묻는다. 두 아들 모두 적성에 맞고 일도 수월하고 야근도 많지 않다며 자유로운 사내 분위기에 만족한다고 했다. 평생 직장이 될지도 모르는 곳에서 이왕이면 자기 적성에 맞고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다행이다.
내가 선택했던 필리핀 유학은 아이들을 성장시켰고 좋은 결과로 돌아왔다. 영어울렁증이 있는 나로선 아이들의 향상된 영어 실력이 부러울 뿐이다. 내가 할 수 없었고 하지 못 한 일을 아이들에겐 누리게 하길 지금도 잘 했다 싶다. 기회는 만들어가는 것이다. 좋은 기회를 무심히 놓쳐버리면 그것이 좋은 기회가 되는 줄도 몰랐을 텐데 형님이 홈스테이를 하셨기에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결과적으론 아이들에게 유익한 시간이 된 것 같아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