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은 내 몫

by oj


청소년 자격증을 따서 교육 받을 때 일이다. 수련원이 목천이어서 공주에 계신 시댁에 방학을 이용해 초등학생 두 아이들을 맡기고 한 달 과정의 실습을 하러 갔다. 필기는 벌써 합격했지만 실습이 만만치 않아 시간을 보다가 여름방학 때 신청을 해서 한 달 간 공주에서 다니게 되었다. 다행히 아버님께서 차로 데려다주시고 데리러오는 수고를 감당해 주셔서 너무 편하게 다녀서 감사했다. 기숙사를 신청해서 다니던 사람들과 몇 번 같이 지낸 적도 있었는데 한 달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고 지금은 추억이 되었다.


집단 상담을 기본으로 하면서 여느 때처럼 별칭짓기로 시작을 했는데 이번엔 자기가 아닌 옆 사람의 별칭을 지어주라고 해서 난감했다. 대화시간이 주어지긴 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대화하고 처음 만난 사람의 특징을 안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어찌어찌 그 시간이 지나서 별칭을 서로 지어주었는데 꽤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일주일 정도 지난 뒤 남편이 시댁에 와서 주말을 보내고 갔다. 그리고 마지막 주에 남편 친구 셋이 부부 동반으로 시골집에 1박2일로 놀러왔다. 시부모님과 다들 한 동네에서 지내면서 알던 사이인데다 남편 친구들이지만 여자들끼리 더 친해져 휴가를 맞아 겸사겸사 교육이 끝나가는 시점에 맞춰 방문한 것이다. 너무 반가웠다. 시부모님도 좋아하시고 마당에서 커다란 솥뚜껑에 삼겹살도 구워먹으며 근처에 있는 마곡사도 다녀오고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저녁 땐 거실에 둘러앉아 옥수수를 먹을 때 내가 농담삼아 부부 상담을 제안했다.


다들 재밌겠다며 반응이 좋아서 진지한 대화가 시작됐다. 각자 부부의 별칭을 지어주며 그 이유를 얘기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고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아내는 남편을 커다란 느티나무로 표현하며 늘 쉴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는데 남편은 아내를 거친 파도로 표현했다. 잔잔한 파도가 아닌 감정의 기복이 커서 거친 파도처럼 무섭게 일렁거린다는 말에 다들 빵 터졌다. 다른 친구들도 의미를 부여한 별칭과 이유를 말하면서 흥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 부부 순서가 돌아왔을 때 난 남편을 쉼터로 표현했다. 힘들고 지칠 때 위로해주고 쉼을 주는 존재라고 말한 뒤 남편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러자 남편이 느닷없이 미스코리아라고 말하는 거였다. 난 어이가 없었고 친구들은 박장대소 했다. 상담의 본질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별칭이란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짓는 건데 진중하지 않은 대답에 장난 하나 싶었다. 내가 미스코리아만큼 이쁘면 또 그럴 수 있겠구나 싶지만 그것도 아닌데 친구들 앞에서 너무 부끄러웠다. 남편은 자기 눈엔 예전이나 지금이나 미스코리아처럼 예뻐서 그렇게 말한 거라며 사뭇 진솔하게 답변했다. 난 그게 뭐냐며 다시 지으라고 종용했지만 부부 상담은 그렇게 유야무야 에피소드만 남기며 끝났다. 그 뒤로 난 미스코리아란 놀림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참 어이가 없었지만 고맙기도 했다. 이쁘지도 않은 나를 이쁘게 바라봐주는 그 마음도 친구들 앞에서도 당당히 말해준 마음도 고마웠다. 부끄러움은 내 몫이긴 했지만 말이다. 지금도 그 때 일을 회자하며 미스코리아 부인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며 미스코리아면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해줘야 되는 것 아니냐며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린다. 미스코리아는 커녕 무수리 대접만 받아 억울하다며 우리 대화에 빠지지 않는 감초거리가 되어 지금도 웃음을 준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다. 결혼 10년 차쯤 되어갈 때 일이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대해주는 고마운 남편이 있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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