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이들의 소망

by oj


82세 외숙모가 작년 4월에 갑자기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8남매인 엄마 위로 한 분뿐인 이모와 이모부. 남동생인 외삼촌 부부가 돌아가시고 큰외숙모까지 벌써 다섯 분이나 떠나셨다.


외숙모와 엄마는 충청도 청주 시골 한 마을에서 함께 살며 언니 동생 하며 자란 사이여서 엄마와 더 친근했던 분이셨다. 오빠인 외삼촌과는 친구 사이였다고 했다. 성품이 남자처럼 당차시고 화끈하시고 시원시원하신 외숙모는 말이 없던 큰 외삼촌과도 다소곳한 엄마와도 여러모로 대조적이었다. 꽃으로 비교하면 억척스럽고 생명력 강한 민들레꽃을 닮으셨다.


대식구의 큰 며느리로 통도 크시고 시부모님께도 잘해드린 효부였으며 여섯 동서들을 의기투합하게 만든 여장부시면서도 인정이 많아 형제 우애를 항상 좋게 만들었다. 외숙모는 늘 세 자식을 자랑으로 사셨을 만큼 효자 아들과 효부. 효녀 딸 들과 아들같이 친근한 사위들에 똑똑한 손주들까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부러움을 받던 외숙모였다. 재작년에 갑자기 한 번 쓰러지셨다는 말을 듣고 놀랐는데 그 뒤로 건강이 안좋아지시더니 1년도 채 안 되어서 돌아가신 것이다. 엄마보다 더 건강한 분이셨는데 정말이지 앞날은 알 수 없고 건강은 장담 못 한다.


장례식장에서 외삼촌과 외사촌들에게 슬픔을 위로하며 함께 추억을 나누었다. 외삼촌을 유난히 좋아하고 따르던 엄마였다. 외할아버지와 가장 많이 닮고 조용한 성품까지 똑같다는 외삼촌과 한 동네 언니였던 외숙모를 가장 많이 의지했다. 자주 놀러가서 며칠씩 계시다 오실 만큼 엄마와 가까운 두 분이어서 그런지 외삼촌이 홀로 남게 되시자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런 안타까운 마음은 장례식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오열하셨다.


영정사진 앞에서 "언니. 언니.왜 옾가 두고 벌써 갔어." 하며 외숙모를 애타게 부르며 한참을 소리 내어 우셨다. 외삼촌에게 안겨서도 계속 우시기만 했다. 한 분이신 언니를 떠나보낼 때도 월남전 참전으로 두 다리를 잃고 휴유증에 평생 시달리면서도 밝고 긍정적으로 사신 남동생을 떠나보낼 때도 한참을 우시는 엄마를 보면서 인생무상이 느껴졌다. 이런 슬픔을 앞으로 얼마나 더 겪어야할까.


아버지 첫 기일 때 큰 외삼촌과 외숙모가 인절미 한 말을 해서 집으로 오셨다. 첫 기일을 기억해주시고 찾아오셔서 엄마를 위로해주신 것이 참 감사했다. 주변을 잘 챙기시면서도 정이 많던 분인데 이제 떠나시니 참 허탈하다.


의가 좋으셨던 8남매는 충청도 청주에서 사시다가 모두 서울로 상경하시고 외삼촌 한 분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사시던 고향에 남으셔서 농사를 짓고 계신다. 가난했던 시절. 대식구를 먹여 살리느라고 소 키우고 농사 지으시면서 묵묵히 책임을 다하셨던 점잖으시던 외할아버지와 엄마가 쏙 빼닮은 허리 굽은 외할머니는 잊을 수가 없다.


어릴 때 갔던 청주 외할머니 댁 시골은 대청마루가 있고 불을 때서 가마솥에 밥을 짓고 여물을 주던 외양간이 있었던 전통적인 시골집이었다. 가마솥에 누룽지를 긁어주시던 외할머니께선 우리가 갈 때마다 얼마나 반가워하셨는지 모른다.


내가 회사 다닐 때 겨울에 돌아가셨는데 청주이고 너무 멀어서 장례식에 가지 못해 마음이 우울했다. 겨울이라 차가운 땅속에 묻힐 할머니를 생각하니 일하다가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 외할아버지까지 돌아가셨을 때 점잖으시던 아버지가 더 좋다시던 엄마는 한동안 우울해하시고 외할아버지를 많이도 그리워하셨다.


안동 김씨의 점잖은 양반 혈통임을 늘 자랑하신 엄마 말처럼 실제 여섯 분의 삼촌들은 모두 외할아버지를 닮아 말이 없으시고 인자하시고 점잖으신 분들이다. 8남매이다 보니 자손들만 20명이 넘는다. 자손 복이 많으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셨다. 이제 외가 친척 중에선 오모부. 이모. 셋째 외삼촌. 외숙모에 이어 큰 외숙모까지 벌써 다섯 분이 떠나시니 남은 이들의 삶과 특히 홀로 남으신 큰 외삼촌의 상실감이 크실 것 같다.


친가 쪽은 4남매인데 남자들은 이미 돌아가시고 이제 네 분 어머님들만 남으셨다. 남은 이들의 소망은 한결 같다.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때가 되었을 때 평안히 사시다가 고통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얼마 전 결혼식장에서 오래간만에 큰 외삼촌을 뵈었는데 얼굴이 많이 상하셨다. 기력도 예전 같지 않으셔서 이제 자식들 집 근처로 이사가셨다고 하니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다들 남은 이들이 삶을 잘 살펴서 외롭지 않으시기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터닝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