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할머니께서 작년에 소천하셨다. 96세가 되셔서 언제 돌아가셔도 놀라지 않을 연세이지만 연세에 상관없이 이별은 늘 슬프다. 다리가 아프신 지병은 있었어도 큰 병은 없으셨는데 노안으로 별세하셨다.
작은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가까이에서 만나던 친근하신 분이셨다. 친할아버지 댁 바로 아랫집에 사셔서 할아버지 댁에 갈 때마다 늘 만났고 기억속에서 푸근하게 자리잡던 분이셨다. 친 할아버지는 자녀가 넷. 작은 할아버지는 자녀가 여섯이었다. 다 모이면 대가족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릴 때는 방학 때나 주말이나 명절 때마다 할아버지댁에 가서 지낸 시간이 많다 보니 작은 할아버지 가족과도 친밀하게 지내왔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때 일찍 돌아가셔서 한 분 남으신 집안의 가장 크신 어르신이자 정이 많으셨던 인자하신 할머니셨다.
예전에 아버지가 남긴 일기에서 전쟁통에 남동생이 전쟁에 끌려갈까봐 독에 숨기셨다가 들켜서 잡혀갔을 때 펑펑 우시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쟁이 끝나고 어렵던 시절엔 농사일에 대식구 살림에 제사에 육남매 결혼에 강인하게 삶을 살아오셨다. 자식들도 모두 효자여서 서로 챙기시며 작은 할머니를 잘 모셔왔다. 집안의 큰 행사 때면 뵙다가 몸이 안 좋으신 뒤로는 오랫동안 뵙지 못했다.
결혼하고 나서는 더 자주 인사를 드리지는 못 했어도 맘속으로 항상 그립던 할머니였는데 몇해 전에 다같이 만날 기회가 있었다.
큰 아저씨와 사시던 할머니께서 작은 아저씨 댁에서 잠시 지내신 적이 있었다. 작은 아저씨는 혼자만 남으신 큰 고모. 큰엄마. 엄마. 작은 고모 네 분을 초대해서 할머니와 며칠을 함께 지내시게 하셨다. 아저씨는 우리와도 가장 친근하고 홀로 남으신 네 분의 어머님들을 명절 때마다 항상 세밀하게 챙기시던 자상한 분이셨다.
며칠 계신다는 말을 듣고 토요일에 우리 자매들과 사촌들끼리 번개로 연락해 깜짝 방문을 하기로 했다. 우리 자매는 회랑 과일. 사촌 언니는 떡. 사촌 동생은 막걸리와 간식 거리를 사서 아저씨 댁인 봉일천에서 모였다.
딸들이 온다는 말에 네 어머니는 벌써부터 마중 나와 계셨고 아줌마. 아저씨도 반갑게 맞아주셨다. 갑자기 시끌벅적해지며 집안이 꽉 찼다. 다섯 손녀 딸들이 할머니를 보자마자 꼬옥 안아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시면서 눈물까지 훔치셨다. 연로해지신 작은 할머니 모습이 안타까워 한참을 품에 안고는 등을 쓸어드렸다. 따스한 온기로 마음이 벅차올랐다. 가까이 계신 데도 너무 오래간만에 만난 작은 할머니에게서 세월의 흔적이 엿보였지만 내겐 여전히 그대로신 할머니셨다.
닭 백숙을 해놓으셔서 우리가 사온 음식과 간식들로 푸짐한 식탁이 차려졌다. 건배사를 하고 가볍게 술 한 잔씩 하며 옛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할머니는 식사를 많이 못하셨지만 화기애해한 분위기를 지긋이 바라보시면서 조용히 웃고 계셨다.
그게 할머니와의 마지막 추억이 되었다. 그 때도 잘 걷지 못하셔서 앉아서 다리를 끄시며 화장실 가시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연로하신 몸으로 힘겹게 삶을 이어가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렸왔는데 지금도 작은 할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장례식장에 찾아오신 친인척분과 문상객들로 북적이며 할머니께 마지막 길을 애도하며 가족들을 위로했다. 할머니의 유일한 딸인 고모는 결혼해 미국에서 사신다. 할머니를 자주 못 만나 늘 안타까워 하셨는데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3일 전에 입국하셔서 할머니는 딸을 보시고는 바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임종을 앞두고 얼마나 간절히 딸을 기다리셨을까. 의식도 없었는데 딸의 목소리를 듣고는 눈을 뜨신 후 손을 잡고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고 했다. 고모는 연신 눈물을 닦아가면서도 오래간만에 만난 우리 자매들. 사촌들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전쟁통에 힘든 일을 겪으시고 가난했던 시절 억척스럽게 농사일 하면서 여섯 자녀 키워내시며 인고의 삶을 사신 분. 장수의 복을 누리시며 자손의 복을 받으신 분. 자식들께 존경과 효도를 받으신 분. 믿음으로 구원도 받으셨으니 복된 소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신의 헤어짐은 슬프지만 이제는 고된 몸을 쉬는 안식도 축복이다. 고된 인고의 삶을 마치시고 영면하시니 천국에서 영원히 기쁘고 건강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