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과 비극의 공존 1

by o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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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가 되어보니 인생이 새롭게 보인다. 어느 정도 살다보니 경험이 다양해지고 관계를 맺는 주변 사람들도 늘면서 복잡 다양한 일들도 많고 생각과 고민도 깊어진다.


인생은 희극과 비극이 공존한다. 시인도 철학자도 삶을 논한 많은 사람들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마음먹은 대로 뜻대로 되지 않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흐를 때도 있다. 인생의 깊은 고뇌로 방황과 갈등에 빠진 햄릿처럼 삶을 그만둘 수도 지속하기도 힘든 상황이 우리에게 분명히 찾아온다.


주변에서도 참 힘든 삶을 견뎌낸 사람들이 많다. 신검을 갔다가 급성 백혈병이 발견된 아들로 인해 친구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항암을 시작하고 백혈구 수치가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급박하게 누나의 골수 이식을 받아 수술에 성공했다. 골수 기증을 기다릴 시간이 없어 50%의 확률만 가지고 수술을 감행해 애간장을 다 태웠지만 감사하게도 수술과 회복이 빨랐다. 2년 넘게 이어진 투병생활에 지칠 법도 한데 엄마이기에 누구보다 강하게 버틴 친구였다. 방호복을 입고 무균실에 들어가 힘들어하는 아들을 안아주고 고통스러워할 때 힘이 되어주고 온갖 병수발을 다 해냈다.


아들을 꼭 살려야 한다는 강한 의지는 회복해서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할 때 비극에서 희극으로 바뀌었다. 투병할 때 조용히 기도해주었고 만나면 힘내라고 위로해주고 안아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는데 퇴원할 때 너무 기뻤다. 장하다며 친구들이 함께 축하하며 안아줬다. 가슴 벅찬 감격의 순간이었다. 삶은 고되지만 힘든 일은 언젠가는 또 지나간다. 잘 회복해서 정기 검진 때마다 간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와 지금 건강을 되찾은 뒤 커피를 배우고 일을 시작하는 친구 아들이 대견하기만 하다. 엄마랑 대면대면 했던 아들은 이제 엄마 껌딲지가 되어 친구 이상으로 친밀해지고 끈끈해진데다 애교도 많아졌으니 희극이지 않은가.


직장암 3기 진단을 받고 선항암, 암수술, 후항암을 하고 장루를 차고 다시 장루를 넣는 수술까지 1년 넘게 힘든 투병을 견디면서도 형부는 늘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강하게 버텨냈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인내심이 많은 형부였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다 지나갈 거라고 말하던 형부가 회복 되어 복직해서 첫 월급을 받아왔을 때 언니는

“이 피 같은 돈을 어떻게 쓰냐!”

면서 눈물을 흘렸다. 아플 때 지극 정성으로 간호해준 언니를 형부도 무척이나 고마워하면서 부부애가 애틋해졌다. 친구나 언니. 형부 모두 슬픔의 눈물이 기쁨의 눈물로 바뀌고 비극이 희극이 된 순간이었다. 이제 5년이 되어가고 아팠던 형부. 언니와 작년 봄에 이태리 여행을 함께 다녀왔으니 이 또한 희극이다.


몸이 아픈 비극만 있지 않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찾아와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 3년 동안 지속된 코로나로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 병마로 신음하는 사람들,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보금자리와 가족까지 잃고 좌절하는 사람들. 수많은 비극적인 사건들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의 소재에서도 희극을 좋아하지만 시청자들이나 독자들이 희극보다 비극을 오래 기억한다는 이유로 새드 엔딩으로 끝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난 희망을 잃지 않고 견디면 다시 행복이 찾아오는 해피엔딩을 더 선호하며 우리 인생도 희극이기를 바란다.


비극을 겪은 사람을 자기 일처럼 아파하며 고생 끝에 낙이 온 사람들을 축하하며 격려하는 진심어린 마음에 힘을 얻고 평범한 삶이 지속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임을 느낀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묵묵히 인내하는 이들이 있어 삶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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