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지인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이웃으로 만나 20년 간 이어온 유일한 세 사람의 모임이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점심 먹고 차 마시면서 근황을 주고 받는 친근한 사이였다.
모두 일을 하고 운동 마니아들로 걷는 걸 참 좋아한다는 점에서 잘 맞는다. 한 지인은 꾸준히 헬스를 난 수영을 한 지인은 탁구에 자전거를 쉬지 않고 운동하는 사람들이라 만나면 의례히 걷는 걸 좋아한다. 아파트에서 두 시간 정도 걷고 점심 먹고 차 마시며 두런두런 대화가 잘 통하는 지인들이다.
헬스하는 지인은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공부방을 탁구 치는 지인은 세무사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몇년 전에 퇴사하고 바쁠 시기만 가서 알바로 돕는다.
모두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을 만큼 부지런하고 인정 많고 배려심도 많아 배울 점이 많아 인간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참 좋은 사람들이다.
지난 번 일찍부터 만나 한 바퀴 걷기로 했는데 갑자기 한 지인이 1시간 늦추자는 연락이 왔다. 갑자기 볼 일이 있나 보다며 한 시간 늦게 만나서 조금 가까운 곳으로 정해 점심 장소로 걸으며 이동했다.
얼굴이 몹시 안좋아 보였다. 무슨 일 있냐고 하자 한숨부터 쉬었다. 걱정거리가 생긴 모양이었다. 재촉하지 않고 얘기할 때까지 기다렸다. 고향이 부산이라 대부분 친인척이 부산. 김해 지역에 많이 살고 있는데 김해에 다녀오느라 어제 늦게 도착해서 시간을 좀 늦춘 거라며 말문을 열었다.
시누이 남편 분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고 왔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갑자기 왜 그런 일이 생겼냐고 하자 뉴스에도 나왔다며 혹시 못 들었냐고 물었다. 뉴스에서 지방 한 도심에서 두 보행자가 60대가 몰던 1톤 트럭에 치이면서 사망했다는 사고 소식이 생각났다. 맞다고 했다. 충격적이었다. 뉴스에서 듣고는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 소식이었지만 '어쩌냐.' 하며 안타까웠는데 시누이 남편 분이라니 얼마나 충격과 상심이 크고 허망했을까 싶었다.
시누이는 절친인 남편 친구 부부와 식사 자리가 있어 바로 근처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인데 두 분이 약속 시간보다 많이 늦길래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바로 근처 밖에서 사고가 난 것도 모르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다가 나중에서야 사고 소식을 듣고는 망연자실했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남편들을 잃고 충격에 빠져 앞으로 어떻게 그 고통을 이겨낼지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었다. 음주 운전도 아니고 전방주시태만 과실 같다고 했다. 매일 다니던 동네에서 당한 참변이 너무 비참하고 안타까웠다.
시누이는 괜찮으시냐고 했더니 근처에 여동생 부부가 살아서 그나마 안심이 된다고 했다.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도 얘기를 들었다. 여동생인 처제 부부에게도 자상하고 아이들에게도 너무 다정한 사람 좋기로 유명한 사람인데 왜 좋은 사람을 그렇게 비명횡사로 데려갔는지 원망스럽다고 했다. 옆에서 물신양면으로 마음 써주면서 의지하던 두 자매 부부였는데 남편을 잃은 시누이도 형부를 잃은 처제도 아빠와 이모부를 잃은 자녀들도 슬픔과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허무한 삶이란 생각에 말을 잃었다.
위로를 전하고 큰 일 치르고 피곤하니 얼른 가서 쉬라고 일찍 헤어졌다. 다음에 만나도 되는데 연락하지 그랬냐는 말에 착잡해서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마음도 이해가 되어서 시누이 분 많이 위로해 드리라고 인사를 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뉴스에서 접한 소식이 당사자들의 일이 될 수 있다니 얼마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을까. 마음이 착잡했다.
아무리 삶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일 앞에선 전혀 미래를 알 수도 없고 대처할 방법도 없으니 얼마나 기가 막힐까. 그들의 무너진 삶은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까. 갑작스럽게 준비되지 못한 이별을 경험한 남은 이들은 서로 더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뒤로 보행자 안전 강화 대책을 마련했다는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 되버렸다니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주변에 이런 갑작스런 이별을 경험하는 사람이 없길 바라면서 어쩔 수 없어도 이어나가야 하는 남은 이들의 삶이 빨리 안정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위로를 대신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