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에 2박3일 목포 여행을 다녀왔다. 일을 다니는 막내 여동생이 시간될 때마다 늘 여행 계획을 잡는다. 일주일 휴가라는 말을 듣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유달산으로 유명하면서도 아직 안 가본 목포로 잡았다.
엄마를 모시고 살면서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는 여동생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은 휴가를 받을 때마다 우리 자매를 뭉치게 한다. 지난 번엔 제주. 작년엔 목포와 부산. 겨울이면 호캉스 등 어디든 일정을 잡아 기분전환을 시켜준다. 계절상 여행하기 딱 좋아 맛집도 가고 편안히 쉬다 오기로 했다.
우리 자매는 누구보다 끈끈하며 우애가 깊다.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다른 넷이 여행을 하면 얼마나 재밌고 웃을 일이 많은지 모른다. 특히 혼자만 O형인 둘째 언니의 유머러스한 말과 행동. 막내 여동생의 폭풍 수다. 시크한 큰 언니. 행동대장 나. 넷이 모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어려서는 그렇게 싸워서 엄마가 지겹다고 하실 정도였는데 지금은 친구보다 더 가깝고 좋은 사이가 되서 다들 부러워한다.
KTX를 타고 3시간에 걸려 도착한 목포역은 아담했다. 오후에 출발해서 도착하니 이른 저녁을 먹기에 좋을 시간이었다. 택시를 타고 평화 광장쪽에 있는 참치회를 먹으러 갔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참치회와 각종 해산물로 우리의 첫 식사를 즐겼다. 회를 너무 사랑하는 우리 자매들이다. 식성도 비슷해서 뭐든 잘 먹고 좋아하지만 유독 회는 특별히 더 좋아한다. 바다 뷰를 보면서 입에서 살살 녹는 참치회의 별미를 즐기는 시간은 빠질 수 없는 여행의 묘미이다.
저녁을 먹은 후에 스카이 워크가 생기면서 핫해진 대반동으로 가서 야경을 즐겼다. 목포 대교의 불빛이 밝고 환하게 반짝거렸다. 바다를 보면서 가볍게 생맥주 한 잔을 마시며 이 밤에 이런 멋진 곳에 있다는 자유는 우릴 더 없이 행복하게 했다. 늘 바쁘고 지친 막내 동생은 자유와 여유를 충분히 누렸다. 적당히 부는 바람. 아름다운 야경. 한가로운 마음은 우리 대화를 더 깊고 친밀하게 만들었다.
숙소에 늦게 도착해서 씻고는 더블 침대 두 개가 놓인 넓고 깨끗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수다를 떨다가 몇 시에 잤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간단히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 택시를 타고 갓바위로 갔다. 두 바위가 마치 갓을 쓴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안 보행교가 길게 데크로 이어져 바로 옆으로 철썩거리는 바다를 보며 아침 산책을 하니 더할나위없이 멋졌다.
서해와 영산강이 만나는 강하구에 있고 오랜 풍화로 만들어진 바위로 200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저녁에 가면 석양에 물든 바다와 절벽에 반사된 노을빛이 무척 아름답고 물이 빠지면 더 큰 바위 모습을 선사한다고 한다. 데크 바로 옆으로 출렁대는 바다가 있고 갓바위 뒤로 작은 산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 가니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바위에 앉아 멀리까지 보이는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 전망을 보며 아침 산책에 흡족했다.
택시를 타고 근대역사 1.2 박물관에 갔지만 월요일이 휴관이라서 관람을 못 했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동양척식 주식회사와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어 빨간 벽돌로 지어진 외관만 보고 발걸음을 돌렸지만 박물관이 궁금해서 몹시 아쉬웠다. 거리를 걷는데 의외로 예쁜 건물과 아담한 카페가 너무 많아 지루한 줄 모르고 한참을 걸었다.
시화 골목으로 가니 곳곳에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어렸을 때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던 가난했던 그 시절의 골목길이 떠올랐다. 겨울이면 미끄러질세라 비탈진 골목골목에 연탄재가 뿌려졌을 테고 처마끝엔 고드름이 달려있고 그 고드름 따서 먹는 아이들부터 골목골목 아이들의 왁자지껄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저녁 무렵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 소리에 삼삼오오 놀던 아이들이 흩어져 집으로 쪼르르 돌아갈 것만 같은 그런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며 텅빈 골목길을 보니 정겨워서 잠시 추억에 빠졌다.
<1987>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해진 연희네 슈퍼 앞에서 사진도 찍었는데 지극히 평범한 슈퍼였다. 지금은 대부분 편의점으로 바뀌어 예전엔 흔히 볼 수 있던 슈퍼도 이젠 기억 속에서나 남을 것 같다.
한참 걸은 뒤에 기진맥진해진 상태로 먹은 늦은 점심이라 더 맛있던 낙지 비빔밥과 먹갈치 조림은 입맛을 돋구었다. 반찬이 맛있어서 다들 푸짐하게 점심을 먹었다. 전라도 음식은 맛있기로 유명한데 정말 그랬다. 가는 곳마다 메인 음식 못지않게 밑반찬까지 정말 맛갈스럽다.
케이블카를 타러 가기 전에 근처에 있는 '봄날' 이란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며 쉬었다. 점심 먹은 뒤라 나른해진 몸을 쇼파에 맡겼다. 자매들의 여행이 장점은 피곤하면 아무 말 안 하고 눈을 감고 있어도 편안하다는 것이다.
햇살을 받아 따뜻한 창가 옆으로 푹신한 의자까지 휴식하기 딱 좋아서 카페 이름 그대로 봄날을 선사 받았다. 우리 삶도 봄날이 계속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