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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Jun 17. 2024

이상형과 배우자


토크쇼 등에서 연예인들을 불러놓고 이상형이 뭐냐는 질문에 난감해 하는 것을 본다. 이상형 월드컵을 진행하면서 둘 중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을 고르느라 고민하는 걸 보면서 시청자들은 환호한다. 현실에선 절대 만날 수 없으니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고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 이상형 대로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걸 경험하기 때문이다.

결혼 적령기가 된 큰조카도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기가 왜 이렇게 어렵냐고 하소연 하면 눈을 조금 낮추라고 조언한다.


올봄에 아들이 결혼을 하고 며느리를 맞으니 기분이 남달랐다. 안사돈과 몇 번 만나 대화를 나누었을 때 딸과 안사돈의 결혼 첫 번째 조건이 믿음 있는 사람이란 말을 듣고 놀랐다. 나도 아들 배우자 기도할 때 믿음 있는 가정에서 자라 신앙을 가진 아가씨를 만나기를 기도했다. 기도한 바람 대로 이루어져서 참 기뻤는데 며느리의 1순위도 같았다니 감사했다.


두 번째 조건이 키가 큰 남자라고 했다. 아들 키가 182cm 이니 그 조건도 맞았다. 군대 제대하고 대타로 나간 미팅에서 만난 여자 친구였다. 마음에 들어 대시하고 5년을 사귀었다. 난 신앙이 있다는 것과 간호학과 학생이란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만나보니 예쁘고 순수하기까지 해서 가족이 되기 전부터 좋았다.


큰 아들의 이상형은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였으면 좋겠다더니 대학 동기 동갑 여자 친구와 사귀게 되었다. 동기이니 당연히 친했을 테고 얘기가 잘 통한다며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전자공학과에서 탑으로 졸업했을 만큼 똑똑한 친구였다. 만나보니 아담한 키에 마른 체형이었다. 180cm인 아들과 같이 있으니 키 차이가 많이 나지만 잘 어울렸다. 연애하면서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고 할만큼 서로 잘 맞추고 배려하며 2년 넘게 사귀고 있어 내년 봄에 결혼 날짜를 잡고 상견례까지 마쳤다. 예비 며느리 집안은 천주교여서 종교도 크게 다르지 않아 두루두루 감사했다.


마음에 드는 이상형의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고 결혼도 잘 하지 않으려는 세대이다. 일찌감치 결혼을 결심하게 만든 배우자를 만난 두 아들에게 고맙다.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이라지만 나름대로 기준은 있다. 나의 결혼 배우자 이상형은 'music' 형이였다. 고등학교 때 정한 기준이다. M은 'manner' 로 예의 바르고 친절한 남자. U는 'humor' 로 재치와 유머 감각이 있는 남자. S는 'smart' 로 단정하고 깔끔한 남자. I는 'intelligent' 로 똑똑하고 지적인 남자. 마지막 C는 'christain' 믿음이 있는 신앙인이었다.


어느 날 혼자 재미로  'music' 이란 영어 단어를 쓰다가 앞 글자에 내 이상형을 붙였더니 딱이었다. 졸업하고 구체적으로 기도했다. 지금의 남편은 대학 3학년 때 교회에서 만난 오빠였다. 매너도 좋고 재미도 있고 깔끔하며 지적인 사람이라 내 이상형에 가까웠다.


남편과 5살 차이가 난다. 재수를 하고 군대에 늦게 가서 제대한 남편을 청년회에서 만났다. 군대를 일찍 갔다면 이미 사회생활 해서 공감대가 달랐을 것이다. 마침 제대하고 4학년 복학 전이고 난 대학 3학년이었다. 교회에서 자주 만나다 보니 차츰 호감이 생겼다. 남편을 두고 내 배우자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그 응답이 학보였다. 학기 초에 남편이 학교로 학보와 함께 편지를 보내면서 기도 응답임을 확신했다. 처음엔 안부와 일상적인 편지였지만 학보를 계속 주고받으면서 5월 축제 때 놀러오란 말을 듣고 본격적인 연애가 시작됐다. 졸업 후 사회생활 2년까지 4년을 만나고 결혼해서 지금까지 30년을 살고 있으니 참 감사하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건 이상형과 배우자가 일치했다. 곱상하거나 잘 생긴 남자는 처음부터 부담스러워 싫었지만 키는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썹이 짙고 남자답게 생긴 남편은 176cm로 그 당시엔 제법 큰 키였다.


이상형대로였다. 살면서 더 자상하고 박식하고 손재주가 많은 남편을 배우자로 선택한 나의 안목을 칭찬한다. 누구를 만나느냐는 여자나 남자의 인생을 크게 좌우한다. 수많은 일들을 겪는 삶에서 부부가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고 위안하며 살지 못한다면 힘들 수밖에 없다.


아들 둘을 낳고 가정 생활을 하면서 함께 이룬 것들을 돌아보면 감회가 새롭다. 이제 아들 결혼까지 시키니 부모로서 큰 숙제를 잘 마친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요즘들어 남편한테 고맙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 남편 역시도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며 다독여준다.

일찍부터 생각했던 이상형과 구체적인 배우자 기도는 지금 생각해도 가장 잘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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