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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Jun 19. 2024

낭만 시인


우리 교회에 장애인 부부가 계시다. 남편 분은 교통사고로 대학교 2학년 때 팔과 다리 한쪽이 마비되셨고 한쪽 눈도 거의 안 보이셔서 시각 장애 1급. 지체 장애 3급인 중증 장애로 살아가고 계시다.


얼마 전에 눈 부위가 시퍼렇게 멍들어서 무슨 일이냐고 걱정했더니 집안에서 넘어졌다고 하셨다. 걱정하며 묻는 나에게 아내 분은

 "제가 말 안들어서 한 대 쳤어요. 호호호."

 주먹을 올리시면서 유쾌한 농담까지 하셨다. 평소에도 자주 넘어진다며 크게 놀라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여유를 보이시니 일단 안심했다.


활달하신 아내 분은 고등학교 때 갑자기 한쪽 마비가 왔다고 했다. 하루 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자고 일어났더니 이유도 모르는 갑작스런 마비 증상으로 한쪽 팔과 다리가 불편하시다. 일상생활 하는데 크게 불편하진 않아도 옷을 입고 벗을 때나 음식을 드실 때 시간이 걸리고 잠깐만 걷거나 활동 해도 땀을 많이 흘리신다. 불편한 몸으로 시부모님 식사까지 챙기지만 늘 씩씩하시다.


두 분은 장애인 직업 훈련을 하시는 곳에서 만나셔서 호감을 갖고 결혼하셨다고 했다. 남편 분은 교육자 집안의 아드님이셨다. 부모님 모두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신 분들로 갑작스런 아드님의 장애에 애통해 하셨다. 대학생 때 장애를 갖게 되고 어느새 50대 중반이 된 아드님이 함께 의지하며 살게 될 며느리를 만나서 무척 기뻐하셨다고 한다.


신혼 때는 김포에서 살면서 시부모님께서 차려주신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시면서 심심할 때마다 시를 쓰셨다고 했다. 그 때는 탁 틔인 곳에 지내면서 자연을 가까이 하고 사람들도 자주 만나서 좋았는데 시부모님이 퇴임하시고 이사오시면서 아드님과 며느님도 옆동 아파트를 얻어주셨다. 아파트 생활이 처음엔 답답하다고 하셨지만 가까운 우리 교회에 등록하시고 교인들과 만나면서 친분을 쌓고 잘 지내고 계신다.


남편 분은 <소중한 손길> <차려진 기억>

두 권의 시집을 내셨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읽고 싶다고 했더니 선물로 주셨다. 그 보답으로 부끄럽지만 내 수필집도 선물로 드렸다.


장애로 살아가기 힘든 삶. 막막함. 불편함. 아내 이야기. 가슴 아파 하시는 부모님께 불효를 드려 죄송한 마음 등을 잔잔한 시로 담으셨고 가끔은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시집을 단숨에 읽고 너무 뭉클해서 아내 분께 긴 문자를 드리며 끝에

 "남편 분이 낭만 시인이시네요."

했더니 쑥쓰럽다고 하셨다. 항상 두 분이 서로를 바라보고 의지하고 부족함을 채워가며 아름답게 살고 계셔서 귀감이 되신다.


찬양도 좋아하시고 은혜스럽게 부르신다. 성경 공부를 함께 하며 조금 더 친밀해져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아졌다. 수영을 배우는 내게 아내 분도 요즘 수영 배운지 두 달 됐다며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어렵긴 해도 한참 재미있게 연습하신다고 했다. 안전을 위해 도구를 이용해서 강습을 돕는 것 같았다. 전신 운동에 좋으니 열심히 배우시고 경험상 도움이 될 노하우를 가르쳐 드렸더니 좋아하셨다.


예전에 비해 장애인 복지 시설이 늘어서 수영 강습을 하는 곳도 있고 직업 훈련을 받아 몇 개월씩 교대로 일을 다니시기도 하니 다행이다 싶다.


내가 존경하는 한 대형교회 목사님께선 장애인 어르신 양로원을 건립하는 소망을 갖고 계신다. 아이들을 위한 장애 시설과 프로그램은 많은데 어르신들을 위한 시설은 부족하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장애인 가정에 직접 만든 반찬을 배달하면서 보람을 느낀다는 교인들은 목사님을 닮아 섬김과 나눔을 몸소 실천하는 교회였다.


장애인이 살아가기 어려운 우리 사회지만 차츰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복지 시설도 늘고 있어 자립하도록 직업 훈련과 구직 활동이 늘어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남편 분 "조윤희" 시인의 뭉클하면서도 낭만적인 시를 소개하고 싶다. 마음속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아픔을 승화시켜 공감을 주고 있다.


1. 눈맞춤

        

미소 속에 비친 그대는

기다림의 여운이었다


미소 속에 담은 그대는

만남의 약속이었다


일부러 밝게 웃어 보인

그 미소는 아쉬움이었다


아무 말 없어도 알 수 있는

사랑의 눈맞춤


2. 잘된 것 맞죠?


사랑하는 내 마음을 꺼내어 보일 수 없어

살며시 그 마음에 문을 닫고 말았지만

자물쇠는 채우질 않았다.


사랑한다는 내 마음을

손으로 꺼내들었지만

그냥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겨

잠그고 말았다.


그때 그녀 내 손에 든 사랑을 보곤

"어, 이거 내게 주는 거야?"

그렇게 내 사랑은 빼앗겨 버렸다


사실 그녀에게 주려 했는데

결국 전하려던 사랑을

그렇게 빼앗긴 셈이다.


아무튼 잘된 것 맞죠?

제대로 된 것 맞죠?


3. 이유


뒤집어도 보았다

똑같았다

흔들어도 보았다

똑같았다

그래서 난 그냥 변치 않는

그 마음을

내 품에 품으련다


4. 그 밤들이


가을밤 저 하늘엔

그리움이 있고


늦은 밤 내 마음엔

기도가 있고


하얀 밤 내 기억엔

기대가 있어


꼴깍 새운 그 밤들이

오늘 나를 잊게 한다


5. 어제, 오늘, 내일


어제는

오늘의 감사였고

수고였고

그리움을 낳았으며


오늘은

어제의 감사와

내일의 기대에

행복한 수고가 되었으며


내일은

오늘의 기대이고

희망이고

하얀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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