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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Jun 24. 2024

어느 봄날


6월이 되니 아파트 화단에 들장미가 활짝 피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도 장미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누가 돌보는 이도 없는데 때가 되면 피고 지는 자연은 신비이고 기쁨이다. 6월 날씨가 한여름 더위를 방불케 하고 벌써부터 열대야의 기승에도 자연은 불평 한마디 없이 꿋꿋하게 버틴다.


5월에는 어머니네 아파트 앞에 라일락꽃이 활짝 피었었다. 4월이면 벚꽃이 5월이면 라일락꽃이 만발해 아파트가 화사해진다. 라일락꽃은 너무 예쁘고 향기까지 좋아서 자꾸만 시선이 간다. 라일락은 3주 동안만 필 정도로 시기가 짧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시선을 사로잡는다. 보라색. 흰색. 분홍색 등 20여가지 색이 다양하고 각 색마다 꽃말도 다른데 그 중 단연 분홍색과 흰색 라일락이 가장 예쁘다.


영국의 전설 중 흰색 라일락에 대한 전설이 있다고 한다. 영국인 남자가 시골 동네에 왔다가 순박한 시골 처녀에게 한 눈에 반해 약혼을 한 뒤 도시에 사는 다른 여자에게 변심을 해서 충격을 받은 시골 처녀가 극단적 선택을 한다. 그러자 죽음을 슬퍼한 친구들이 무덤에 보라색 꽃을 놓았는데 흰색 라일락으로 바뀌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 흰색 라일락은 첫사랑과 순결을 뜻한다고 한다.


라일락꽃은 가수 이문세씨의  "가로수 그늘 아래서" 란 노래를 떠오르게 한다. 7080세대라면 호불호 없이 누구나 좋아하던 노래로 지금 들어도 좋다.

"라일락 꽃향기 맡으며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사가 감성적이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잘 어우러져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MT에 가서 통기타에 맞춰 참 많이도 부르던 노래였다.


도종환 시인의 라일락꽃이란 시도 내가 좋아하는 시 중의 하나이다.


<라일락꽃>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좋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향기와 빚깔은 젖지도 지워지지도 않는다는 아름다운 시처럼 라일락꽃의 향기와 빛깔은 사람들의 시선과 감성을 자극한다.


달콤한 향 덕분에 향수나 섬유유연제. 아로마테피로도 쓰이고 장미. 자스민. 은방울꽃과 함께 4대 향을 자랑하는 꽃이기도 하다. 피부 질환과 세균 감염 치료에 좋아 오일로 이용 되고 이완 작용이 있어 우울증 증상에도 도움이 된다니 참 유용하다. 햇빛을 따라 위로 피는 특징이 있는 라일락은 5월을 상징하는 꽃이다. 어머님집 앞에 예쁘게 핀 라일락을 보니 잠시 추억에 잠겼던 기억이 난다.


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친구들. 젊음의 상징이던 대학생활. 잊히지 않는 교생실습과 그 때 만난 풋풋한 여중생들. MT의 추억. 미팅에서 만나 잠깐 교제했던 선배. 졸업과 첫 발을 내딘 사회생활. 낯선 사내생활과 서툴렀던 업무. 2년 후의 퇴사. 4년간의 연애와 결혼. 처음 겪는 출산과 육아. 새롭게 시작한 강사 일. 아들들의 학업과 진로. 대학. 군입대. 두 아버님과의 이별. 사랑하는 친구와 형님과의 이별. 남편의 명퇴와 재취업. 아들의 결혼 등 지금까지 나를 있게 만든 일과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유수같이 빠르게 지나간 시간 속에 내가 서 있고 이 시간도 곧 흘러가서 언젠가 추억 속에 자리잡고 있겠지.

노래말도 시에서도 꽃말에서도 첫사랑. 젊은 날의 추억. 우정. 순수가 연상 되고 향기와 모습. 빛깔까지 왠지 모르게 옛 추억과 그리운 사람이 떠오르게 했던 어느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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