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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Jul 10. 2024

얼떨결에

수원에 둥지를 튼 아들 내외가 집에 와서 벌써 서너 번을 자고 갔다. 신혼 여행 다녀와서 자고 가고 며느리 첫 생일을 맞아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온 날과 그 후에도 다녀가면서 자고 갔다.


불편하지 않겠냐고 해도 좋다며 올 때마다 자고 가는데 재울 침대가 없었다. 신혼 여행 다녀왔을 땐 안방을 내주었다. 피곤하기도 할 텐데 아들방은 싱글 침대밖에 없고 화장실 쓰기 불편하지 않게 안방 침대에서 자라고 했다. 그럴 수 없다고 사양했지만 강제로 밀어넣고 우리가 아들 방에서 잤다. 난 침대. 남편은 이불을 깔고 자면서 자고 간다니 대견하다며 둘이 흐뭇해 했다.


친구들을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그 얘기가 나왔다. 그러자 친구가 안방을 왜 내줬냐며 버릇 없어진다는 거였다. 웃으면서

 "그럴 일은 없어. 그렇다고 싱글 침대에서   재울 순 없잖아."

했더니 그래도 안 된다며

 "너무 잘해주면 당연한 줄 알아. 그럼 안방 침대를 아들방으로 옮겨주고 네가 사면 되잖아."

하는 거였다. 매트리스를 새로 산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해 보지 않았다. 갑자기 좋은 생각 같았다.


작은 방 하나는 내가 공부방으로 쓰고 있어

아들 둘이 같이 쓰라고 예전에 더블 침대를 사주었다. 서로 불편하다며 따로 자면서 방을 크게 차지하는 더블을 치우고 다시 싱글을 놓았었다. 그 이후론 더블 침대를 놓을 생각을 안 했다. 이젠 짐도 줄어들고 방이 넓어지니 가능할 것 같았다.


일찍 자는 남편과 내 수면 시간이 다르고 애들 방도 비어있어 난 안방, 남편은 아들방에서 따로 잔다. 따로 자다 보니 편했다. 문제는 주말에 큰 아들이 와서 침대를 같이 쓰면  불편하다는 거였다. 습관이란 게 무섭다. 킹사이즈 침대에서 혼자 자다가 둘이 쓰니 예전엔 느끼지 못한 불편함이 생겼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안 그래도 트윈으로 바꾸고 싶었는데 고민을 해봐야겠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말하고 바로 실행에 돌입했다. 처음 반응은 무덤덤했다. 난 이제 여름이 돌아오니 에어컨 때문이라도 안방에서 자야 하니 좋은 생각 아니냐며 덧붙였다. 내년 봄이면 큰 아들도 결혼하는데 그 때마다 안방을 내어줄 순 없지 않겠냐며 재차 설득했다. 그제서야 수긍하자 다음 날 바로 가구 공단으로 갔다. 쇠뿔도 당김에 빼라고 두어군데 가서 트윈 침대를 픽해두고 마지막으로 이케아에 가보기로 했다.


이케아 매트리스가 좋다면서 프레임은 따로 사고 매트리스만 이케아에서 사면 좋겠다는 남편 말을 순순히 따랐다. 속으론 그냥 사고 갔으면 했는데 남편 말도 한 번 들어주자며 갔지만 매트리스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가구공단 침대보다 비쌌다.

 "거봐. 내가 비쌀 거랬잖아. 다시 가서 계약하자."

나오면서 세일 상품 쪽으로 가보니 안에서 본 탄탄한 슈퍼싱글 매트리스가 50% 세일을 하는 게 보였다. 게다가 코발트색 천 쇼파까지 세일을 하는데 마음에 쏙 들었다. 앉아보니 푹신했다. 집에 있는 가죽 쇼파 스프링이 튀어나오고 짙은 브라운색이라 칙칙해서 벌써부터 쇼파 타령을 했지만 내년 봄 아들 결혼 후로 미룬 터였다.


푹신한데 싸게 나온 쇼파를 보니 사고 싶어졌다. 세일 상품이라 쇼파까지 다 사도 가구공단 침대값 가격과 얼추 비슷했다. 남편도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매트리스 두 개와 쇼파를 계산하러 갔다. 갑자기 이벤트가 있다며 점원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면 5% 세일을 더해준다는 거였다. 이게 왠떡인가 싶었지만 가위바위보에 자신 없어 남편을 내세웠다. 그게 뭐라고 조마조마하게 바라봤다. 남편이 이겼을 때 환호성을 질렀다. 제품이 두 개라 나도 할 기회가 생겨 눈을 감고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나까지 단번에 이겼다. 행운이 따른 날이었다. 행사 인증샷을 남겨야 한다며 사진도 찍었다. 덤으로 에피소드까지 생겼다.


가구를 옮길 운반 비용을 벌어 기분이 너무 좋았다. 집에 오자마자 애들 방 싱글 침대를 버리고 청소를 끝낸 뒤에 안방 침대를 옮겼다. 언제든 와서 자도 손색이 없었다. 안방은 주문한 프레임이 올 때까지 매트리스만 깔고 이불과 패드. 여름이불 등을 두 개씩 주문했다. 남편은 그냥 있는 거 쓰라고 했지만 이불도 인테리어라며 깔맞춤 해야 된다고 말하자 그저 웃었다.


며칠 뒤에 온 싱글 프레임에 매트리스를 깔고 이불까지 셋트로 깔아놓으니 호텔 침대처럼 보였다. 따로 자니 옆으로 좀 가라는 말을 안 해도 되고 진짜 편했다. 아들들에게 신을 찍어 보내면서 언제든 오라고 하자 며느리가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코발트색 쇼파는 거실을 환하게 만들었다. 쓰던 쇼파는 당근에 무료 나눔으로 보냈다. 얼마 전엔 베란다 남편의 셀프 인테리어로 캠핑 의자와 테이블을 놓아 베란다를 쉼터로 만들었는데 이제 거실까지 환해지자 기분 전환이 되었다.


갑자기 한여름 날씨에 열대야까지 찾아와 에어컨을 켜고 자면서 남편과 침대 바꾸기를 참 잘 했다며 흡족해 했다. 침대를 바꾸라고 제안해준 친구에게

 "네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야"

라며 사진을 보내주자 잘 했다며 분위기가 바뀌니 좋다고 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을 친구 덕분에 얼떨결에 하게 됐다. 아들 내외도 벌써 와서 자고 갔는데 편하다며 좋아했다. 가구 하나로 기분 전환이 됐다. 뭐든 마음 먹은 건 바로 실행하니 역시 좋다.


각방을 쓰다보면 편함에 길들어져 서로 한 공간에 있는 것도 불편해질 수 있다. 아무리 싸워도 각방은 쓰지 말라는 말은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깊이 숙면을 취해야 하고 이제 갱년기에 들어서 이런저런 몸의 변화를 겪게 된 우리 나이대에선 트윈 침대 생활을 해보니 편하다. 한방에 있으면서도 방해받지 않으니 공간이 된다면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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