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j Jul 17. 2024

김가이버 남편


남편은 맥가이버 같다. 남편의 성을 붙여 내가 만든 별명이 김가이버이다. 손재주가 많은 남편은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것들을 바로 편하게 고쳐준다. 꼼꼼한 남편이 있어 편한 반면 덜렁거리고 실수가 잦은 난 상대적으로 위축될 때가 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남편. 감성적이고 유연하고 자유분방한 나. 그 차이는 극명하다.


 "슬퍼서 빵을 먹었어." 란 질문에 대한 대답이 화제였다. 그 질문에 대해 난

 "왜 슬픈데. 무슨 일 있어?"

라고 답했다. 남편에게 똑같이 물으니

 "슬픈데 왜 빵을 먹어?"

란 답이 돌아왔다. 난 빵보다도 슬픈 이유가 궁금했고 남편은 슬픈 이유보다 왜 빵인가가 궁금했다. 남편은 전형적인 T, 난 F 이다. T와 F이기에 잘 맞는 점도 있다.


꼼꼼하고 손재주 많은 맥가이버 남편 덕을 많이 본다. 최근엔 가방 정리함을 만들어주었다. 폭은 30cm 깊이는 60cm 거실 선반장에 뒤죽박죽 넣어놓은 가방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크기가 다른 가방 정리가 쉽지 않아 자주 쓰는 가방 순으로 넣었지만 깊숙이 들어간 다른 가방을 꺼낼 때마다 늘 불편했다. 툴툴거리는 내게 안 그래도 만들어 주려고 레일을 주문했다고 했다. 며칠 뒤에 온 레일을 선반장 안에 설치하고 칸막이가 있는 선반을 올려서 가방을 하나씩 넣었다. 안쪽에 있는 가방을 꺼낼 때면 레일이 있어 넣었다 뺐다 하니 편했다. 정리도 깔끔하게 되어서 아주 만족했다.


두 번째는 셀프 베란다 리모델링이다. 매 주마다 오던 둘째 아들이 결혼하니 짐이 많이 줄었다. 큰 아들은 두 주에 한 번 정도 와서 빨래까지 줄어 베란다 빨래 건조대를 치우고 옆쪽 천장에 새로 달았다. 넓어진 베란다엔 타일을 사다가 직접 붙이고 왁스 칠을 끝내고 모서리에 실리콘 처리까지 끝냈더니 환한 공간이 되었다. 거기에 캠핑 의자 두 개와 테이블을 놓아서 커피 마시고 음악 듣고 쉬니 너무 좋았다. 네 자매가 모여 치맥을 할 수 있을 만큼 넓고 아담한 공간이 되어 말만 하면 뭐든 되니 좋겠다며 부러움을 샀다.


세 번째는 아들 방 정리하면서 제법 큰 3단 서랍장이 필요가 없어졌다. 버리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방에 둘 곳이 없었지만 안방 화장실 앞 드레스룸 공간에 놓인 행거와 사이즈가 비슷해 보여 행거 밑에 놓고 쓰고 싶다고 하자 크기를 재보더니 맞을 거 같다며 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서랍이 없던 행거에 3단 서랍장이 들어간 행거로 변신하면서 한칸은 양말. 두 칸은 가벼운 옷들이 들어갈 정도로 충분한 수납 공간이 되어 활용도가 높아졌다.


꼼꼼하고 손재주 많은 남편 덕분이다. 붙박이장 안에도 칸이 더 필요하다면 칸을 더 만들어주고 뾰족해서 위험하다 싶은 모서리엔 어느새 보호막이 덮인다. 애들이 어릴 때도 함께 레고를 맞추고 블럭놀이를 하고 타이타닉 배를 끝까지 함께 조립해서 장식해 두기도 했다. 난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어떻게 저렇게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꼼꼼한지 늘 놀랍다.


내겐 너무 고맙고 과분한 사람이다. 늘 한결 같은 사람. 말없이 과묵하게 일하는 사람. 부드럽고 자상한 사람. 무슨 복인가 싶을 때가 많다. 30년 결혼 생활을 해보니 이제 큰 노력 없이도 부딪힘 없이 살아간다. 마음 편하게 해주어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거라며 서로를 높여준다.


우리 자매들에겐 이모님으로 아이들에겐 알뜰신잡으로 주변 남편들에겐 공공의 적으로 나에겐 맥가이버 같은 든든하고 자상한 남편이기에 내 삶이 더 풍성하고 편안하며 감사하다. 서로 너무 다르지만 맞춰 가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이제 둘만 남게 된 제 2의 하반기 삶을 서로 의지하며 알콩달콩은 아니더라도 두런두런 살아보련다.

이전 17화 나만의 멋진 드라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