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자신의 존재감을 떠오르게 한다. 나는 어릴 때 내 이름이 너무 싫어서 불리는 것조차 싫어했다. 주변에 예쁜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딸들까지도 돌림자라며 지어주신 이름이 늘 불만이었다. 이름은 내 자존감까지 낮아지게 만들었다. 자꾸 비교되어 작아지고 움츠러들고 소심해졌다. 어리고 철없던 시절이었고, 이름만의 영향은 아닌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가 있었지만 자존감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자라면서 이름이 독특하단 말을 많이 들었다. ‘아침 구슬’ 이라는 이름의 뜻은 ‘이슬’ 을 떠오르게 만들어 내 예명으로 삼았다.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리면서 ‘아침을 여는 이슬 시’ ‘아침을 여는 이슬 수필’ 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아침 구슬은 맑고 깨끗함이 있다. 밝아오는 아침에 나뭇잎과 꽃잎. 풀잎에 떨어진 이슬의 깨끗함과 싱그러움은 나로 하여금 맑고 깨끗한 사람이 되라는 목표를 갖게 만든다.
맑고 깨끗한 사람이 되기 위해 거짓과 위선의 마음이 아닌 진실된 마음을 가지려고 애쓴다. 보이지 않는다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빤한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험담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애쓰고 그런 사람도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한다. 내 앞에서 남을 뒷담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 앞에서도 충분히 내 허물과 단점을 거침없이 험담할 사람이다.
허물과 단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걸 너그럽게 포용하며 감싸줄 수 있어야 한다. 나도 언젠가 실수하거나 단점을 드러낼 때 그럴 수 있다며 포용해주고 오히려 격려해주는 성품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존재 의미를 찾고 진실한 관계가 가능하다.
Maslow는 "이름은 권리임과 동시에 동기 부여이며 자기실현의 심리를 충족한다." 라고 말했다. Maslow의 욕구 이론에서 말하고 있는 최고의 욕구도 자아실현이다. 이름에 맞는 사람으로 살면서 그 욕구를 성취에 간다면 상위의 욕구까지 충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김춘추 시인님의 유명한 <꽃> 이란 시에선 나의 존재와 너의 존재는 서로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이름은 존재의 의미를 덧붙이고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다. 마치 사막여우가 어린왕자에게 가르쳐준 길들임의 의미처럼 말이다.
이름처럼 살기 위해 애쓰면서 얻은 장점은 인간관계가 비교적 원만하다는 것이다. 맑고 깨끗한 이슬처럼 살기 위해 지금도 욕심과 거짓을 버린다. 가끔씩 나에게 유리한 대로 둘러대고 합리화 시키려는 마음을 부끄럽게 여기며 이름에 걸 맞는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누군가에겐 존재의 의미를, 나에겐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앞으로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게 이슬답게 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