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에게 어릴 때부터 "누가 닭띠 아니랄까봐" 소리를 자주 들으면서 자랐다. 조용하다가도 한 번 성질내면 파닥거리면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동동거리는 내 모습을 빗대서 한 말이다.
성격은 타고난 성향과 자라온 환경으로 형성 되는 것이지 띠와는 상관없다. 그럼에도 닭띠인 친구들도 닭띠 딸을 가진 지인들도 닭띠 특유의 성격들이 있다는 말에 다들 공감한다. 성격상 가만히 있는 것보다 돌아다니며 일을 만들고 활동적인 닭띠 특유의 성향이 있다.
엄마는 내가 저녁에 태어난 걸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새벽 닭은 사람들을 깨우고 아침부터 종일 모이를 쪼아 먹느라 피곤하고 바쁘게 산다는 말이다. 그런게 맞나 싶었는데 지금까지 일을 놓지 않고 분주하게 사는 친구나 시어머님을 모시면서 일 복 많은 친구들은 대부분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태어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연의 일치이거나 역할의 차이겠지만 조금은 신통하게 들어맞는다.
저녁 시간에 태어난 난 지금까지 일하고 있지만 비교적 자유롭다. 오후부터 하는 일이라 오전에 한가하게 할 일 해놓고 점심 약속도 잡는다. 집안 일 하면서도 여유가 있고 시간도 자유롭게 낼 수 있어 심적으로도 편하다.
반면 새벽에 태어난 친한 친구는 공무원으로 사회생활 35년 차이다. 육아 휴직. 질병 휴직 빼곤 30년을 맞벌이로 살면서도 친정 대식구까지 살뜰히 챙기느라 늘 바쁜 친구이다.
야근에 주말 행사까지 늘 일에 치이고 고3이 되는 늦둥이 아들 입시와 진로를 같이 고민하며 예민해져 있다.
너무 힘들어 보여 쉬엄쉬엄 하라고 했는데 갑자기 면역력이 저하되면서 갑상선과 고관절 염증 등 건강 적신호가 한꺼번에 찾아와서 몸무게가 몇 키로나 빠졌다. 이런 저런 검사 후에 두 주 병가를 내고 약을 먹고 쉬면서 다행히 많이 회복되었지만 건강이 염러 되었다. 먹는 것도 신경 안 쓰고 몸을 그렇게나 혹사시키면 없던 병도 생겨 이젠 몸을 챙길 나이이다.
닭띠 성향을 분석한 것을 보았다. 성실하고 노력가이며 이상이 큰 반면 의욕이 지나치고 호전적이며 인생의 굴곡도 많은 편이라고 한다. 딱 나였다. 닭띠와 잘 맞는 띠는 소띠와 용띠라는데 둘째 아들은 소띠. 남편은 용띠이다. 그것도 맞다. 두 사람과는 부딪힐 일이 전혀 없는 반면 개띠인 큰 아들과는 티격태격하는 편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우스갯소리라고 치부하면서도 비슷한 면이 없지 않다.
연휴를 길게 맞은 아들에게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무빙을 본다고 했다. "그래? 무슨 영화?" 그러자 "무빙" 이라고 했다. "그니까 무슨 영화냐고?" "무빙" 계속 반복된 말씨름에 화가 날 때쯤 "아~그 무빙!" 이제야 그 때 핫한 드라마 제목인 걸 알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작은 아들은
"그냥 시리즈물 드라마라고 말하면 돼지!"
하며 엄마를 약올리는 형의 태도에 쯧쯧거렸다. 큰 아들은 나와 이런식으로 자주 티키타카 한다.
어느 날은 간만에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늦게 너무 심심해서 시장 한 바퀴 돌고 왔다는 내 말을 듣고 피식 웃는 친한 지인이 있었다. 자기는 집에 며칠동안 꼼짝 않고 있어도 심심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난 내향적이기 보다 외향적이고 정적이기 보다 동적이고 수동적이기 보단 능동적이고 따라가기 보다 추진형이다.
띠를 분석한 결과로는 영락없이 닭띠 성향이고 MBTI에선 전형적인 ESFJ 유형이다. 공감 능력 있고 체계적이며 의사소통이 잘 되고 낙천적이면서 책임감이 강한 반면 비판에 민감하고 다소 보수적이며 타인에게 단호하지 못 하고 집단의 일을 우선시 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 특징 역시 나였다.
신기한 건 예전 내 성격은 정반대였다. 수동적이고 내향적이고 자기 표현 못하고 누군가 이끌어주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런 내 성격이 마음에 안들어 적극적으로 노력해 바꾸려 했고 나이가 들고 환경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변하기도 했다.
성격은 바뀌었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사람과의 관계와 일을 중시해 바쁘게 지내는 것과 화가 날 땐 퍼붓기 보단 혼자 분을 삭이며 파르르 거린다는 것이다. 어찌 할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성격이고 가족들의 표현에 의하면 이렇다.
"누가 닭띠 아니랄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