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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다 똥 된다

by oj


좋은 것 아끼지 말라는 한 시인이 있다. 예쁜 옷 철 지나기 전에 입고 마음 또한 물기 마르지 않게 아끼지 말고 주라 하고 맛있는 음식 먹고 싶을 때 먹고 좋은 음악 듣고 싶을 때 듣고 사랑하는 사람 보고 싶을 때 그리워하며 아끼지 말고 감정을 표현하란다. 감정 메마르고 눈물 인색하고 인정 없이 아끼면서 삭막하게 살지 말라는 나태주님의 "아끼지 마세요" 라는 시이다.


마음에 와닿는 말을 간결하게 담아내 좋아하는 시인은 평소 머플러에 좋은 옷을 간직만 하고 쓰지 않던 부인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서 그대로 쓰신 시라고 했다. 부인이 어떻게 사셨을지 짐작이 된다.


예전 부모님들은 뭐든 아끼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힘겨운 시대를 살아왔다. 그래야만 가난을 벗어날 수 있었고 대식구 먹고 살수 있기에 아끼는 습관이 당연했을지 모른다. 어머니들은 궁색할 정도로 뮈든 아끼고 자신을 위해선 더 인색했다. 아버지들은 물질보단 감정 표현을 아끼셨는지 무뚝뚝하고 가부장적 태도가 몸에 배이셨다. 어릴 때 주변에서 살갑고 다정한 아버지상을 거의 본 적이 없어 모든 아버지들은 다 그런 줄 알았다. 친구 집에서 자상하고 살갑고 친근하고 다정한 친구 같은 아버지를 보았을 때 그 낯설음과 신선한 충격이란.


요즘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남자들이 감정을 아끼지 않으면 집안 분위기가 달라지는데도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감정도 아끼면 똥이 되는데도 말이다.


시인이 아끼지 말라는 말은 아끼다 똥 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 한다. 아끼다가 쓸모 없어지거나 쓸 수 없게 된다는 추풍단선(가을의 부채)과 동선하로와 하로동선(겨울철 부채와 여름철 난로) 사자성어도 있지만 생각보다 실천이 쉽지 않다.


뭐든 아끼고 절약했던 나였다. 신혼 때 가장 아낀 건 돈이었다. 신혼 초엔 월급이 많지 않아 쓸 돈이 넉넉치 않은데다 시부오님과 함께 사니 기본 생활비를 드리고 아파트를 분양 받아 알뜰히 모아야만 중도금을 넣을 수 있었다. 아파트 장만을 목표로 하니 부족한 건 얼마든지 감수했다. 월급의 일부는 먼저 저축해야 마음이 편했고 목돈을 만들어놓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저축은 아끼는 좋은 습관이다. 일단 저축해 놓고 남는 돈을 쓰니 부족한 건 당연하니 자연스레 아낄 수밖에 없다. 외출할 일이 있어도 아이들 둘 데리고도 택시 한 번 안 타고 세일하는 옷만 골라 첫째를 입히고 둘째는 큰 아들과 나이가 같은 사촌 형 옷까지 물려입혀 그야말로 거저 키웠다. 마트에 가도 질 좋은 상품 보단 양 많은 상품을 고르던 내 처지는 목표가 있었기에 초라하지 않았다.


나중까지도 절약이 몸에 배어 오랫동안 고치기 힘든 습관이 되버렸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이 누군가에게 빌려준 대출금을 갚느라 비싼 이자 내고 결국 원금까지 갚았을 때 아끼다가 똥 된 기분이라 억울하고 착잡해서 처음엔 잠도 안 왔다. 가족 중 사업 시작한다고 사업 자금 보태주는 등 애먼 사람 주머니에 들어갔을 때도 아끼고 악착같이 모은 결과가 그거였으면 아끼지나 말고 실컷 쓸 걸 나한테도 화가 났다.

미안하고 고맙고 항상 애쓴다며 알아준 남편이 있었기에 그것으로 족하자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스렸다. 도울 수 있는 처지가 된 것에 감사하고 지난 일은 잊자며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니 한결 편안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방탄의 "고민보다 go" 라는 노래에도 아끼다 똥 된다는 가사가 있어 들었을 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고 통쾌했다.

"내 통장은 밑빠진 독이야. 난 매일 같이 물 붓는 중. 차라리 걍 깨버려. 걱정만 하기엔 우린 젊어. 오늘은 고민보다 go 해 버려. 쫄면서 아끼다간 똥이 돼 버려. 문대버려"

뭐든 아끼려고 애쓰는 우리 고민을 시원스럽게 날려버리고 탕진잼 탕진잼 하라며 신나게 노래했다. 탕진잼을 언제쯤 누려볼 수 있을까!


내가 아낀 건 옷도 있다. 어쩌다 한 번 백화점에서 비싸고 좋은 옷을 사놓고는 중요한 행사 외에 아끼면서 자주 입지 않다가 유행이 지나고 나중엔 비싸게 산 옷이라 버리지도 못하고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진짜 고치고 싶은 병이다. 남편은 내가 아끼는 옷과 가방 등도 시장갈 때도 쓰라며 아끼지 말라고 한다. 그게 왜 안 되는지 몸에 배인 습관 탓인지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란 탓인지 잘 모르겠다.


오남매 자식을 키우면서 엄마는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거의 없었다. 좋은 옷 하나 마음껏 안 사입으셨고 밖에서 음료수. 간식. 떡 등 하나라도 생기면 안 드시고 가져와선 꼭 우리들에게 주셨다. 먹이를 물어다주는 어미새처럼 잘도 받아 먹는 아기새였다. 심지어 엄마가 외출하면 뭘 들고오시나 나중엔 내심 기다리기까지 했으니.


남편의 기억에도 그런 어머님의 모습이 남아있다. 터미널에서 국수를 먹는데 배가 고프지 않다며 한 그릇만 시켜서 맛있게 먹고 나자 엄마가 남은 국물을 다 드셨다고 했다. 어렸을 땐 몰랐던 그 행동의 의미를 커서야 알았다며 그런 이유로 가수 god의 "엄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가사가 가슴 아프고 어릴 때 기억이 떠오른다며 싫어한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남편이 아빠가 되어보니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 부모님 시대야 못 먹고 가난한 세대여서 아껴서 자식 주고 인정을 베풀며 남도 주던 시대였다지만 우리 세대는 그렇지도 않은데도 둘 다 보고 자란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자청해서 아끼고 사는 우리를 요즘 세대로선 전혀 이해 되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사고 방식과 생활 태도일 것이다.


우리 세대는 부모 세대를 책임지는 마지막 세대이고 자식에겐 버림 받는 첫 세대여서 제일 불쌍한 '샌드위치 세대'라고 분석한 이도 있다. 허리띠를 졸라 매고 아낀 부모 세대를 보고 배워 부모님을 챙기고 자청해서 아껴 자식에게 뭐라도 주고 싶어하다가 우리가 나이 들면 자식 세대에겐 기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아껴서 똥 되게 하지 말고 지금부터 노후 대책도 하고 스스로 살아갈 힘을 비축해야 한다.


이젠 아끼고 싶지 않다. 조금 여유가 생기니 좋은 것도 사고 갖고 싶은 것도 갖는다. 여전히 사치를 부릴 만큼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할 정도의 여유는 되니 훨씬 부담이 줄고 마음 편하다. 전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면 지금은 힘들거나 기쁜 소식이 들리는 가족들과 친한 지인들에게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소소하게나마 진심으로 마음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나를 위한 선물도 한다. 비싼 것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기분 전환과 보상이 된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자식에게도 인색하고 싶지 않다. 넉넉한 마음을 갖고 이젠 유용하고 쓸모 있게 쓰고 싶다. 아껴서 똥 되지 않도록 인정도 감정 표현도 물질도 아끼지 말고 탕진잼도 누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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