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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Aug 26. 2024

깨소금 볶는 신혼


3월 초에 아들이 결혼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신혼 집으로 갈 때 남편은 연근조림. 진미채. 멸치볶음. 소갈비를 해놓고 나는 미역국. 카레. 제육볶음을 해두었다. 거기에 밀키트 몇 개와 파. 마늘 등 기본 양념까지. 반찬통에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들과 밑반찬을 잔뜩 담아놓았다.


친정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외할머니댁에 인사를 가서 점심을 먹고 저녁엔 친할머니께 인사를 왔다. 여행에서 돌아온 신혼부부가 피곤할 텐데 인사 드리느라 바쁜 걸 보니 얼른 가서 쉬게 하고 싶었다. 점심 때 외할머니께서 등심에 회에 한상을 차려놓으셔서 너무 배가 부르다는 아이들을 위해 우린 가볍게 어머님과 밖에서 식사를 하고 왔다.


힘들 테니 신혼집에 얼른 가고 싶을 것 같아 물어보니 피곤해서 자고 가겠다고 했다. 부랴부랴 안방 베게 커버와 매트 커버를 바꾸고 안방에서 자라고 했다. 아들 방은 싱글 침대에 남자들이 쓰던 방이다 보니 칙칙한데서 재울 수가 없었다.


사돈네는 미리 딸 방 싱글 침대를 벌써부터 더블로 바꿔 두셨다고 했다. 30분 거리인 친정에 가서 편하게 자라고 했지만 막상 집에서 자고 간다니 내심 기뻤다.


과일을 먹으면서 신혼여행 사진을 TV에 연결해 같이 보니 하와이를 배경으로 너무 행복한 아이들의 모습이 눈부시게 빛났다. 옆에서 조근조근 신혼여행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며느리가 예뻐보여서 '딸을 키우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일찍 쉬라고 하고는 우리가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싱글 침대 아래에 이불을 펴고 누워선 갈 줄 알았는데 자고 간다니 자기도 내심 좋았다고 했다. 부모 마음은 다 똑같나 보다.


다음 날 아침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았냐고 하니 잘 잤다고 했다. 안방을 내주셔서 죄송하다는 며느리와 첫 아침을 먹으면서 음식이 다 맛있다며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사돈이 현직 간호사로 바쁘시고 외동이로 세 식구에 단출한 데다가 딸도 간호학과라 실습에 공부에 데이트에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두 분이 대부분 간단히 식사를 즐기신다. 바깥 사돈 어르신도 잘 하시는 음식이 하나 있다고 했다. 샤브샤브와 월남쌈이라면서 초대까지 해주셔서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잔뜩 싸둔 음식과 밑반찬을 보더니 며느리와 아들이 감동했다. 처음이니 해준 거라면서 이제 조금씩 배워 해보라는 말도 빼놓지 않으며 얼른 등떠밀어 보냈다. 주말마다 오던 아들이 이제 안 온다고 생각하니 조금 허전함이 밀려왔다.


일주일에 한두 번 통화하는데 며칠 전엔 며느리가 비빔국수를 해줘서 먹었다고 자랑을 했다. 신혼에 깨소금 볶는 소리가 나고 알콩달콩 재밌어 보인다. 며느리가 식사 준비하면 아들은 설거지를 한다고 했다. 주말엔 아빠처럼 요리도 해주라고 말했다.


대학 때 자취 3년을 하면서 음식도 해먹고 몇년 전엔 어버이날 직접 요리를 해준다고 양고기를 주문해 구워준 적도 있는 아들이다. 믹서를 꺼내 온갖 양념들을 갈아 양고기에 양념을 얹어 올리브 오일을 부어 후라이팬에 굽는 과정에서 주방이 난리가 났지만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중간에 아빠 손이 가긴 했어도 어떤 선물보다도 감동적이었다.


요즘 요리하는 남자들이 많아졌다.

'만 개의 레시피' 를 보며 요리가 쉬워졌다. 퀄리티가 좋은 밀키트도 많이 나오니 크게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작은 아들은 요리에 관심도 많고 특별한 요리를 자주 해먹을 것 같긴 한데 문제는 큰 아들이다. 요리. 설거지. 방 청소 등 관심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 걱정이다. 내년 봄에 결혼할 예정이라 누누이 강조하고 습관이 되지 않으면 힘들다고 해도 때 되면 다 한다며 태평하다.


깨소금 볶는 소리에 알콩달콩 소꿉놀이 같은 신혼을 누리고 있는 아들 부부가 대견하다. 서로 배려하면서 지금처럼 서로 위하는 마음이 퇴색 되지 않고 예쁘게 살아가길 바란다.


요즘은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이들도 많은데 일치감치 결혼해서 둥지를 찾은 두 아이들이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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