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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Aug 26. 2024

국화꽃 당신


젊디 젊은 딸을 먼저 천국에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수 있을까.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 그 고통을 누가 이해할수 있을까.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는 그 마음의 고통과 아픔은 아무도 헤아릴 수 없다.


 5년 전 친하게 지내는 한 권사님의 따님이 결장암 진단을 받고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기도 부탁을 하셨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대장암은 예후가 좋은 암이니 치료 잘 될 거라고 위로해 드렸다.

33살의 젊은 딸은 이어진 수술과 항암에 잘 견뎌내며 강하게 이겨냈다. 간간히 과일과 맛있게 쑨 호박죽 등을 전하는 일밖에 해드릴게 없었다.


항암이 끝나고 예후가 좋다는 말에 안도하시는 권사님과 기쁨을 나눴는데 2년 뒤 또다시 재발 되어 다시 항암이 시작 되었다. 치료에 적극적이고 삶의 의지도 강한 대견한 딸이었지만 투병 1년만에 결국 천국으로 보내야만 했다.


명문대에 대학원까지 마치고 상담일을 하시는 젊은 재원에 남매를 두신 권사님의 소중한 막내딸이었다. 주로 중독자들 상담과 치료를 하며 다른 사람의 아픈 마음을 만지면서 정작 본인은 스트레스로 병을 얻은 건지 안타깝기만 했다.


처음 암 진단 후 수술도 잘 되고 항암도 비교적 잘 견뎌내며 예후가 좋아 안심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과 다르게 다시 재발 되었을 때 그 상심이 너무도 컸다. 강한 따님이 다시 잘 견뎌내고 회복될 거라고 믿었는데 원망스러웠다. 35살 한참 젊음을 꽃피우며 하고 싶은 일이 많을 나이에 스러져간 따님 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어느 날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나쁜 소식은 재발일까봐 마음 졸여 듣고 싶지 않았다.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마음이 너무 아파 한숨과 탄식만 나왔다. 기쁜 소식은 따님이 결혼하게 됐다는 뜻밖의 소식이었다. 너무 놀랐지만 이미 재발 소식을 들었기에 곧 걱정으로 바뀌었다. 암이 발병된 이후 동료였던 남자의 헌신에 감동해 사랑으로 이어졌고 다시 복직해 재발되기 전까지 일하면서 결혼을 약속했다는 순애보를 듣고 너무 감동해서 마음껏 축하했다. 투병 사실을 다 아시고도 결혼을 허락하신 시부모님의 인격에 감사하고 감격했다.


그런 축복된 소식 앞에 들려온 재발 소식이 부모님과 가족들.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했을까. 가까이에서 지켜보지 못한 내 마음도 이렇게 아픈데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결혼 청첩장에 개량 한복을 단아하게 입은 두 사람이 행복으로 가득해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마치 오누이처럼 서로 닮아있고 따뜻한 눈빛이 선해보였다. 권사님 모습을 꼭 닮은 따님을 보는데 가슴이 뭉클하고 아려왔다.


스몰 웨딩을 해서 참석하진 못했지만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드린 축의금을 받아주셔서 너무 기뻤다. 큰 아드님 때도 똑같이 스몰 웨딩을 하셔서 마음을 전했지만 한사코 받지 않으셔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너무 아쉬웠는데 이번엔 다르셨다. 진심으로 전하는 마음을 기쁘게 받으셨을 만큼 가슴 벅찬 감동의 결혼식이었다.


신혼 여행도 몸이 안 좋아 일찍 왔다는  소식과 또다시 이어진 항암을 신혼집에서 부부가 함께 견디고 있다는 소식. 그러다가 결국 친정집으로 오게 되고 다시 병원에 입원 했다는 소식을 계속 접하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신 권사님과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교인들은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랐다.


사랑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맺은 젊은 부부가 행복하게 좀 더 오래 함께 살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우리의 바람은 안타깝게도 무너져버렸다. 힘들게 맺은 인연인 만큼 부부가 몇년이라도 알콩달콩 신혼 생활이라도 누리게 해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는데 무심하게도 데려가셨다.

그 슬픔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왜 그런 일이 일어나서 우리 마음을 아프고 고통스럽게 하는지 사람의 앞날은 알 수도 알 길도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권사님을 안고 펑펑 눈물을 쏟아도 그 슬픔이 가시지를 않았다. 얼마나 힘드셨는지 얼굴이 수척해지시고 핏기가 하나도 없으신 권사님 얼굴을 뵙는 순간 왈칵 쏟아진 눈물이 걷잡을 수 흘렀다. 자식이 조금만 아파도 부모 마음은 쿵 내려앉는데 예쁘게 잘 키워내고 결혼까지 시킨 따님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져 명치끝이 아파왔다.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안아드리는 것 밖에는.


때가 됐다면 고통없는 천국에서 평안을 누리기를 기도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위로밖에 전할 수가 없고 고단한 삶. 고통스럽던 육체가 평안히 안식하기만을 바랐다.


권사님의 소중하고 아름답고 신실한 따님의 기일이 벌써 2주기가 넘어간다. 이제 슬픔을 이겨내시고 사람들과 다시 소통하시면서 예전의 밝은 웃음 되찾고 세상 밖으로 나오시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 이후 권사님을 뵐 수 없었다. 예배를 드리시긴 해도 사람들 눈을 피해 조용히 일찍 나가신다고 들었다.


가끔 문자로 소식을 전하면 짧은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차 한잔 하고 싶다는 말에도 "다음에" 라고 하셨다. 아직도 밖에서 웃으며 사람들과 마주하고 식사를 못 하시겠다고 하셨다. 그 마음이 헤아려져서 슬픔을 이겨내시고 다시 기운을 내실 수 있도록 오랫동안 기다렸다. 다시 일어나셔야 천국에 간 따님도 마음을 놓을 거라고 애써 위로를 드렸지만 스스로 이겨내시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새해에 성가대에 함께 하시겠다는 기쁜 소식이 들렸다. 이제 다시 뵐 수 있고 교제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신 권사님 얼굴에서 웃음을 되찾으실 수 있도록 마음 써드리고 함께 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레인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고 외로우셨을 텐데 용기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화꽃 당신' 이란 영화가 떠올랐다. 여배우의 연기가 돋보였던 슬픈 영화 만큼이나 안타깝게도 짧은 삶을 살다간 젊은 배우였다. 영화 속에서나 현실에서도 헌신적이었던 여배우와 남편 생각이 나면서 권사님 따님과 사위가 오버랩이 되었다. 젊은 그들의 아프지만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사랑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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