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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 부부

by oj


아침에 날씨가 좋아 김밥을 싸서 호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컵라면 끓일 뜨거운 물과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두시간 이상 6천보쯤 걷고나서 돗자리를 펴고 김밥을 먹었다. 꿀맛이었다. 기분전환이 되는 소소한 일상의 기쁨이다. 밖에 나오면 꽃들이 펼친 향연을 마주하며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행복이 별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작년에 결혼 30주년을 맞으면서 벌써 30년을 살았나 싶은데 되돌아보니 함께 하며 이룬 것이 참 많았다. 자녀를 함께 잘 키워냈고 25년 일한 회사에서 명퇴하며 명퇴금으로 크진 않지만 노후 대책도 해두고 재취업에도 성공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으니 만족한다. 작년엔 30주년 기념으로 이태리 여행을 다녀온 것도 지금까지 큰 갈등 없이 무탈하게 살아온 것도 늘 감사한다.


무엇보다도 두 아들이 장성해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자립한 것은 가장 감사한 일 중의 하나이다. 올 초 봄에 작은 아들이 결혼하고 내년 봄이면 큰 아들도 결혼 예정이라 이제 우리 부부의 단출한 삶만 남았다. 부부가 맞지 않는다면 힘들 수 있는 시기이다.


주변에서 부부가 지내는 모습을 보면 참 다양하다. 부부 문제는 부부만 안다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성격도 생각도 사는 방식도 생활 습관도 정말 다르다. 우리 부부는 집에서 있을 때나 밖에서도 서로 자기 일을 하며 터치하지 않는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전화도 잘 하지 않는다. 전화가 오면 첫 마디가

"왜요?"

이다. 이유가 없으면 전화를 안하기 때문인데 큰 불만은 없다. 아는 지인은 밖에 나가 있으면 수시로 전화가 온다. 아직도 사랑이 넘치나 보다고 말하면 귀찮아 죽겠다고 대답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하는 남편이 귀찮다는 지인은 남편이 자기에게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반대로 남편에게 늘 집착하는 아는 지인도 있다. 일거수일투족이 다 신경 쓰이고 자신만 더 사랑하는 것 같다며 억울해 한다. 그 때 내가 예전에 읽은 법륜 스님의 <인생 수업> 이란 책에 나온 구절을 이야기해 주었다.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더 기대해서 외로운 거라고 말이다. 남편을 쳐다만 봐도 아직 좋고 남편에게 계속 신경 쓰는 자신이 싫어 남편을 덜 사랑하고 자신을 더 사랑하며 자유로운 마음을 갖고 싶다는 말에

"바라는 것이 사람을 외롭게 하는 것이니 기대없이 사랑하면 된다."

라고 조언해 주셨다. 바다나 산이나 꽃을 좋아하는 건 내가 행복하니까 좋아하는 거지 댓가를 바라고 좋아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바라보면 기분 좋으니 그냥 기대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말이다.


어떤 부부는 너무 소원해져서 그냥 마지 못해 산다는 부부도 있고 서로 맞지 않지만 맞춰가며 살기도 하고 여전히 알콩달콩 꿀이 뚝뚝 떨어지는 부부도 있다. 우리 부부는 30년 쯤 살다 보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고 서로 익숙해져 필요한 대화만 나눠도 불편함이 없다.


우리도 어떨 때는 너무 무미건조하고 무덤덤해져서 소원한 게 아닐까 싶어 일부러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나간다. 별일 없으면 함께 자유 수영을 가거나 자주 산책을 간다. 근처 공원을 돌거나 호수공원에 걷다보면 주저리주저리 할 얘기들이 생긴다. 그리고 돌아와선 각자 자기 일을 한다. 가끔 여행을 계획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아 올해 환갑을 맞는 남편 친구 세 부부와 보홀 여행을 잡아두었다.


요즘 드럼을 배우는 남편은 몇 개월 강습 후에 전자 드럼을 샀다. 아들이 결혼 하고 짐이 줄어든 방에 드럼을 사두어 시간만 나면 연습을 한다. 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면서 각자의 취미를 즐긴다. 나보다 모임이나 약속이 적은 남편은 내가 어딜 가도 신경 쓰지 않는다. 며칠 여행 갈 때도 식사 걱정을 하면 "알아서 먹을게!" 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늘 고맙다.


한 마디로 우린 쿨한 부부이다. 서로 집착도 간섭도 안 하는 우리 부부가 사는 지금의 모습이 이대로 쭈욱 평온하게 흘러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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