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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청춘

by oj

친구 생일이라며 저녁을 먹고 온다는 아들이 밤늦게 느닷없이 전화가 왔다. 자기가 고등학교 때 경찰서에 갔던 일이 몇 학년 때인지 물었다. 고1 겨울 방학 때라고 대답해주었다. 친구들과 술 마시면서 그 추억을 얘기하다가 고1때인지 고2 때인지 헷갈리다며 확인한 것이다. 피식 그 때 일이 생각나서 웃었다.

고 1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새벽 쯤 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아들이 거기 있으니 오라는 전화였다. 너무 놀라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남편과 부랴부랴 갔더니 친구들 5명과 쭉 앉아서 우릴 보자마자 겁에 질려있던 아들이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냐며 일단 안아주고는 무슨 일인지 확인했다.


아이들 5명이 편의점 밖에 놓아두고 파는 닭꼬치를 훔쳐서 달아났다가 신고를 받고 순찰한 경찰들에게 잡힌 것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추운 허허들판에 앉아 술을 마시면서 닭꼬치를 먹고 히히덕거렸을 철없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편의점 주인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닭꼬치에 꽂혀있는 쇠꼬치가 걱정 되어 신고를 한 것이고 변상도 고소도 없이 학교에도 연락도 가지 않게 훈방조치로 끝났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어 너무 감사했고 학교에 알리지 않는다니 안도했다. 아이들을 꾸짖는 부모. 목소리 커진 부모. 아예 오지 않은 부모도 있었다. 친구 부모 대신 남편이 조서를 써주고 집에까지 데려다주고 왔다. 그리고 집여 와서는 조용히 꾸짖었다. 살면서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 있다며 너그러운 주인이 아니었다면 정학이나 퇴학 조치를 당할 상황이었다고 침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이다. 눈물을 흘리면서 잘못 했다고 하는 아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싶어 난 얼른 씻고 자라고 다독였다.


큰 아들은 성격이 꽤나 털털하고 덜렁거렸다. 차분하지 않고 공부도 설렁설렁 글씨도 개발새발. 가방을 보면 쓰레기통 같고 옷도 아무렇게 벗어놓고 도무지 누구를 닮았나 싶을 정도였다. 성격은 유들유들해 사교성이 좋아 친구들은 꽤나 많았고 학교에서도 인기가 많은지 공부도 잘 하지 않았으면서 고1 때 1년 . 고2 1학기 때 반장을 도맡아서 난 바쁜 와중에도 학교에 찾아다니며 선생님이 필요로 하시는 학급일을 도우려고 애썼다.


반면 둘째는 손 하나 안 가는 차분하고 꼼꼼한 아들이었다. 3살 터울인 둘째는 어려서부터 형이 배우던 피아노도 검도도 영어 과외도 본인이 원하면 시켰을 테지만 싫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안 시키고 그야말로 거저 키웠다.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부터 알아서 척척 하는 신통방통한 아이였다. 남자 애인데 글씨도 반듯하고 준비물도 알아서 챙기고 가방을 보면 필통과 책들과 노트가 가지런히 정리정돈 잘 된 채로 늘 깔끔했으며 선생님께 칭찬 듣는 모범적인 아이였다.


어쩜 한 뱃속에서 나와도 우리 네 자매가 달라도 너무 다른 것처럼 이렇게나 다른지. 분명한 건 털털한 첫째는 나를 둘째는 꼼꼼한 아빠를 닮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등학생이 된 큰 아들은 고1 때 반장이었지만 어울리는 친구들이 공부하는 학생들이 아니어서 그야말로 성적도 점점 떨어지고 놀기만 해 슬슬 걱정이 되었다. 그 일 이후로 좀 철이 들었는지 공부에 조금씩 집중 하고 고3 때 만난 수학 학원 선생님이 좋은 멘토가 되어주어 공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공부에 뒤늦게 열의를 보여 다행이었다. 놀만큼 놀아보니 후회없이 공부도 했으려나.

추합에서 최종 합격했을 때 얼마나 좋아하던지... 살면서 운이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서울에 있는 대학 입학 할 때 자기 운을 다 쓴 것 같다며 농담까지 한다. 운도 실력이라며 기를 살려줬지만 내가 생각해도 참 운이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생 때 크게 엇나가진 않았어도 같이 어울리던 말썽쟁이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다오고 담배도 피우고 꽤 속을 끓였다.


30살이 된 지금도 절친으로 만나고 있는 친구들은 이제 다들 앞가림을 잘 하며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지방대를 갔어도 대학원을 나와 만족한 직장을 잡은 친구. 전문대 졸업 후 삼수만에 경찰 공무원에 합격한 친구. 태권도를 잘 해서 대학을 간 친구는 체육관 관장이 되어 열심히 살고 있다. 내년이면 결혼을 앞둔 친구도 있고 듬직하게 잘 컸다.


그 친구들 사이에선 우리 아들이 멘토 역할을 하며 도움을 주었다. 여행을 앞두고 사고칠까봐 걱정되는 부모님들께 아들이 부탁하면 흔쾌히 허락해주시며 신뢰를 주는 친구가 됐다. 시험 때나 면접 때도 아들을 먼저 찾는 친구들에게 자소서나 인적성을 도와주는 걸 보면 잘 살았구나 싶다.


불안전한 청춘 땐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 실수들이 밑거름이 되어 성장하고 거기에 부모들의 격려와 신뢰가 뒷받침 된다면 작게라도 열매가 맺힌다. 난 아들들에게 잔소리는 늘어놔도 늘 믿어주고 지지해주었다. 아들들도 부모에게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보이지 않고 말하진 않았어도 무던히도 애를 썼으리라.

그런 두 아들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이제 사회생활 4년차. 2년차가 되어가는 두 아들이 올해와 내년에 결혼까지 앞두고 있어 또다른 삶의 무게가 가중 되어 책임감이 늘겠지만 지금처럼 잘 감당해낼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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