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사랑법
ㅡ수필 '노란 집' 을 읽고ㅡ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은 박완서님이다. 그 분의 글은 섬세하고 따뜻하며 동화로는 <자전거 도둑> 소설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 산문으론 <노란집> 수필이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다.
왕성히 작품 활동을 하시며 많은 글을 집필하셨던 작가님께서 10년 전쯤 80세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문학의 거장이 가셨구나 허망함이 밀려왔다. 굴곡진 삶을 사신 작가님이 편안하게 영면하시도록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노란집> 은 여러편의 수필을 통해 작가님이 살아온 삶의 모습과 그 분의 사상과 인격. 정신이 오롯이 느껴졌다. 읽는 내내 참 따뜻하고 편안하며 잔잔한 글속에서 큰 울림을 주었다. 나도 그 분처럼 소박한 삶을 담백한 수필로 담고 싶다는 꿈을 꾼다. 작가님의 수필은 언제 읽어도 참 편안하다. 마침 날씨도 흐리고 커피 한잔 마시면서 책을 읽기 딱 좋은 날이여서 <노란 집> 이란 수필을 최근 다시 읽었다.
'토라짐' 이란 이야기 속 노부부를 보며 부부들이 사는 모습이 다 비슷하구나 싶었다. 아들이 보낸 비싼 알베기 굴비를 굽고 상을 차린 뒤 딸의 전화를 받고 나서 먹으려고 가보니 굴비는 온데간데 없고 머리와 꼬리에 등뼈 가시만 남은 굴비를 보고 어이가 없어 '내가 저런 제입밖에 모르는 인간과 오십 평생 살았구나.' 비참에 내던졌다는 글 속에서 노마님의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굴비를 못 먹어서가 아니라 자기만 생각하고 부인이 토라진 이유조차 모르는 남편에 대한 야속함 때문이다. 따지면 뭐하겠냐며 서운해도 평소처럼 그냥 또 넘어갔다는 이야기다.
이 글에선 오버랩 되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 이기적인 어떤 남편도 자기밖에 모른다. 마누라 이름만 부르면 다 되는줄 안다. 물 마시고 싶을 때 커피 마시고 싶을 때 배고플 때면 의례히 아내 이름을 부른다. 동갑인 부부는 평소에 친구처럼 지내지만 맞벌이에 자녀가 셋인 대식구 살림을 하면서 퇴근 후 혼자 바빠 동동거려도 집안일 하나 거들지 않는다.
그렇게 몇 십 년을 살아온 부부라 내려놓고 살아서 그런지 불평도 잔소리도 안하는 아내는 가끔 화가 치밀 때면 "이 인간아~" 하며 투덜거리는 것이 전부이다. 참 인내심 많고 성격도 좋다. 남편 본인도 알아 아내 복 하나는 기가 막히게 타고 났다고 말하면 인정한다. 대신 절대 잔소리를 안한다. 무엇을 해도 오케이다. 친구들을 좋아하고 지인들과도 모임이 많은 아내가 약속이 많은 것도 외출이 잦은 것도 다 이해한다. 저녁밥만 해결해주고 나가면 다른 불평불만이 전혀 없는 그들만의 사는 법이다. 소통도 안되는 고집스럽고 자기밖에 모르는 남편이지만 불협화음보단 서로 타협하며 사는 방법을 터득한 아내만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한 친구는 갈치를 구우면 제일 큰 토막은 남편. 그 다음은 두 딸들. 자기는 꼬리 차지라고 한다. 스스로 자처한 엄마 마음. 아내 마음에 같은 마음인지라 가끔은 제일 큰 가운데 토막을 누릴 권리도 있다고 당당히 누리라고 서로 토닥인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요즘 젊은 부부들 결혼 생활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들만의 사랑법' 에선 반대로 힘든 농사일 서로 거들면서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 한 사발 마시는 게 유일한 낙인 노부부는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했다. 마나님은 영감님이 막걸리 대작할 이가 없이 혼자 쓸쓸해지면 어쩌나 걱정하고 영감님은 마나님의 쭈그렁바가지처럼 편안한 얼굴을 보고 세상을 뜨고 싶은데 요즘 마나님 건강이 염려된다는 그들만의 지극한 사랑법을 보여주었다.
이 글의 노부부처럼 서로 위해 주며 아름답게 늙어간다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서로 희어진 머리를 보며 내가 늙어가는 것처럼 마음 짠하고 자신을 위해 해준 작은 행동 하나에도 코끝이 찡해지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사랑법을 누리고 산다면 소박하지만 큰 행복을 누릴 것이다.
그들만의 사랑법이 모두 다르겠지만 박완서 작가님이 쓰신 '노란 집' 의 색깔이 주는 의미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마음을 갖는다면 조금이나마 작은 사랑을 느끼면서 애틋하게 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