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겪으시고 이제 막 마음을 여신 친한 권사님과 처음으로 밖에서 만남을 가졌다.
꽃같은 나이의 따님을 먼저 떠나보내시고 2년만에 나온 외출을 나와 함께 하셨다. 봄에 벚꽃이 필 때도
"벚꽃이 너무 예뻐서 데이트하고 싶어요."
"다음에...아직 밖에서 웃으며 식사를 못 하겠어...미안해요."
하셨다. 기다린다고 언제든 마음 열리면 전화 달라고 했다.
마음이 아파왔다. 2년이 지났다지만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일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의 아픔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결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하고 항암까지 잘 건뎌내어 그렇게 기뻐하셨는데 2년 만에 재발되어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천국에 떠나보내신 뒤에 세상과 담을 쌓은 것처럼 어둠속에 홀로 계셨다.
사람들도 안 만나고 혼자 슬픔을 감내하면서 2년을 견뎌내신 권사님.
작년 말에 성가대 함께 하고 싶다고 했더니 처음으로 생각해 보겠다는 말씀에 한 발자욱 내디딘 것 같아 너무 기뻤다.
올해 초부터 함께 성가 연습하며 만날 때마다 환한 얼굴로 인사했지만 식사를 통 하시지 않았다. 아침 먹고 왔다며 점심도 안 드시고 성가연습하시는데 얼마나 시장하실까 싶었다. 난 성가 연습하고 나면 허기가 져서 허겁지겁 점심을 먹는데도 연세가 있으신 권사님은 전혀 배고프시지 않다고 했다. 모든 의욕을 상실하신 채 웃음도 잃고 기운도 잃으신 권사님이 세상 밖으로 나오신 것만으로도 기뻐서 그냥 만날 때마다 안아드렸다.
이번 주일에 만났을 때는 미용실 어디 다니냐고 물으셨다. 머리를 안한 지도 2년 되었다고 이제 좀 다듬어야겠다고 하셨다. 잘 됐다 싶어서 같이 갔다가 점심 드시자고 다시 데이트를 제안했다. 이번에도 "다음에" 라고 하시길래 재촉하지 않고 미용실 전화번호만 알려드렸다. 아직 더 기다려야 되려나 했는데 전화를 하셨다. 미용실 같이 갔다가 점심 먹자고 말이다. 뛸듯이 기뻤다.
다음 날 설레는 마음으로 만나서 11시에 머리를 다듬으시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어디 예약하셨다고 하길래 그 방향으로 가나보다 했다. 갑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뭘 두고 오셨다고 했다. 알았다고 함께 갔다. 그 때 점심을 집에서 먹을 거란 말에 깜짝 놀랐다. 아니라고 밖에서 맛있는 거 사드리고 싶다고 해도 막무가내셨다. 본인은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집밥이 최고라며 자신이 원해서 하신 일이라는 말씀에 마지못해 들어갔다. 밖에서 만난 사람도 식사를 초대한 사람도 내가 처음이라고 하셨다.
권사님 댁에 처음 가봤다. 따님 투병하실 때 과일이나 죽 등을 챙기고 함께 마음을 다해 기도하며 슬픔을 나눈 것밖에 한 일이 없는데 한상을 거하게 차려주셨다.
'내가 뭐라고...'
이런 식사 대접을 받나 싶어 뭉클했다. 차린 것도 없다시더니 연잎밥에 된장찌개. 쌈과 제육. 연어샐러드. 쑥두부무침. 멸치볶음. 오지어초무침까지. 나를 위해 정성껏 마련한 식탁 앞에 차마 숟가락을 들 수가 없었다.
"제가 뭐라고. 이렇게 푸짐한 한상을 차리셨어요. 제가 맛있는 점심 대접해드리고 싶었는데 어떻게 먹으라고요."
투정을 부리자 다음에 사달라고 그 땐 기쁘게 먹겠다고 하셨다. 나도 마음을 바꿔 기분좋게 식사했다.
처음으로 아픔과 속내를 내비치셨고 방송국에 다니는 아들. 며느리가 마음을 많이 써주고 있다는 말도 처음 들을 수 있었다. 따님이 계실 때 살면서 받아야 할 효도를 다 받았다고 하셨다. 상담사로 일하면서 아픈 이들의 마음을 만져준 따님이셨으니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잘 헤아려주었을까 짐작이 됐다.
커피라도 좋은 곳으로 마시러 나가자고 하니 커피도 내려주셔서 긴 시간 진솔하게 대화 나누고 서로 포옹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면서 과일 가게에 들러 수박 한 통을 배달시키고 문자를 드렸다. 문을 안 열어 주실까봐 문자드린다고 했더니 펄펄 뛰셨다. 날이 더우니 시원하게 드시라고 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마음만 통하면 된다며 오래 전부터 가까운 사이가 된 분이다. 평소에도 인간적으로도 좋아하며 존경하는 롤모델이셨다. 푸짐하게 대접 받아서가 아닌 권사님께서 내게 마음 문을 열어주신 것이 너무 고마웠다. 내가 뭐라고 마음을 여시고 아픔을 나누신 권사님. 이제 슬픔을 이기시고 웃음을 되찾으시고 마음 편하게 지내시길 소망한다. 먼저 천국 간 따님이 기운을 내신 엄마를 웃으며 지켜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