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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Aug 27. 2024

수레바퀴의 중압감

ㅡ'수레바퀴 아래서ㅡ


세대별로 수레바퀴의 중압감이 있다면 청소년기엔 입시와 진로. 청년기엔 취업과 경제적 능력. 장년기엔 가정과 육아 & 자녀 교육. 중년기엔 건강과 노후. 노년기엔 고독과 무기력 등이다. 우리 인생을 누르는 무거운 굴레는 계속 되고 삶의 무게는 점점 가중된다.


자신의 인생에 수레바퀴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균형과 조화를 잘 이루는 것은 중요하지만 요즘은 이 수레바퀴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보인다.


최근 폐업한 자영업자들이 급격히 늘면서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소식에 씁쓸했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며 다 힘겹다고 하는 시대이다. 수출은 줄고 경제의 위기감이 찾아왔다. 나라는 저출산 시대가 되고 의료계는 아직도 불안하며 국방과 안보마저도 위압감이 감돌고 있지만 정치는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느라 그야말로 어수선 그 자체이다. 국민들은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도 국민들을 대변하는 이들은 국민의 삶에는 관심이 없어 미래에 불안한 그림자만 드리운다.


헤르만 헷세의 자서전인 소설로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수레바퀴 아래서> 란 소설에서는 신학 교육을 중요시 하던 시대의 획일적 교육과 사람들의 경직된 사고를 비판한다. 그 시대에선 교회의 지도자나 신학 교수가 가장 성공한 직업이고 엘리트라고 인정받아 신학 공부의 열정이 컸다. 한스도 그런 인물 중 하나였다.


마치 지금의 우리나라 교육 같다.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으로 오로지 좋은 대학에 가서 연봉 높은 회사에 입사하는 것을 인생의 성공으로 여긴다. 경쟁을 부추기는 입시 제도는 창의적인 사고와 각자 재능에 맞는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모두가 같은 교육, 좋은 대학만 우선시 되는 교육이 아닌 직업 교육이나 재능에 맞는 기술 교육이 필요하다지만 현실에선 인식이 개선되기엔 아직도 멀다.

 

성적이 좋았던 한스는 명예를 중시하는 아버지의 바람과 교장의 권유로 신학교에 들어가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소심한 그에겐 권위적인 교육이 맞지 않았다. 게다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친구 하일너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하고, 대리 만족을 느낀다. 사교적이고 자유로우며 창의적인 사고를 가진 하일너는 규칙과 틀에 박힌 교육에 점점 스트레스를 받아 신경쇠약에 걸려 퇴학 당하고, 그를 동경하던 한스도 적응하지 못하면서 몸이 아파 자퇴한다.


학교를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온 한스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냉대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누군가 힘들 때 옆에서 한 사람이라도 믿고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돕고 격려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란 아쉬움이 들었다. 실망시켰다는 죄책감과 압박감은 그를 견디기 힘들게 했다.


시계 부품 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는 그를 신학교 대장장이로 부르며 보이지 않는 조롱과 무시로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를 짓눌렀다.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다음 날 강가에서 죽어있는 한스를 발견했을 때 사고사라기 보다는 자살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열정도, 삶의 열의도 잃은 한스의 재능과 마지막 선택, 자신의 수레바퀴에 눌려 펴보지도 못한 그의 젊음이 너무 아깝다.


 '수레바퀴' 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인생의 굴레를 뜻한다. "지치지 않도록 해야만 수레바퀴에 깔리게 된다." 는 말처럼 계속 돌아야만 하는 수레바퀴의 인생. 멈춰서도 안 되고 어쩔 수 없는 속도에 맞춰가야 겨우 유지되는 인생의 수레바퀴. 모두가 힘들다고 말하는 목소리에 귀기울여 사람들의 어깨에 놓인 무거운 짐을 나누기 위해 자성하며 깊이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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