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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Aug 27. 2024

몸부림치며 살아야 하는 삶

ㅡ영화 '랜드' ㅡ


영화 '랜드' 는 2021년 작품으로 포레스트 검프와 하우스 오브 카드에 나온 주인공 로빈 라이트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이다. 남편이 유명한 숀펜이었다는 것과 11년 만에 이혼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연기를 너무 잘 해서 정말 멋진 여인이란 생각에 검색해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이디란 한 여인이 죽고싶을 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고 스스로 고통속에 자신을 가두어 홀로 고립해 사는 처절한 삶을 다룬 영화였다.


광활한 숲을 배경으로 아무도 살지 않는 허름한 오두막을 얻은 이디는 전기도 수도도 없는 곳에서 혼자 고된 삶을 선택한다. 휴대전화도 자동차도 없이 준비해온 통조림으로 하루 하루 버티며 겨우겨우 살고 있다. 죽지 못해 사는 사람처럼 간신히 버티며 생존하며 사는 여인이었다.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이디가 이런 산속 생활을 선택한 이유는 공연장 총격 난입 때 묻지 마 총격으로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 드류를 잃은 일로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해 주변 사람들과 도시를 떠나 혼자 고통을 감내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봄 가을을 겨우 버티면서 밤이면 산짐승의 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쳐야 했다. 심어놓은 농작물마저 산짐승들이 파헤치며 식량도 없이 장작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채 겨울을 맞으며 버틴다. 아침에 화장실에 갔을 때 곰이 집에 난입해 그나마 있는 식량을 다 먹어치우고 집을 엉망으로 만든다. 더 이상 버티지 못 하고 절망하며 자신을 향해 총을 쏘려고 하다가 동생 엠마가 자신을 다치게 하지만 말라는 말을 기억하며 소리치고 울부짖으며 정신을 잃었다.


그런 이디를 지나가던 남자 미겔이 발견하고 정성껏 간호하면서 건강을 회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숲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덫을 놓고 사냥을 하고 뗄감을 자르며 가까이에서 도와주면서 조금씩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며 조건없는 사랑을 쏟는다.


사람들 사이의 사랑은 애로스적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가 로맨스이기에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닐까 생각하며 영화를 봤지만 예상을 깨뜨렸다. 그들은 순수한 친구로서 인간적인 정을 나누면서 서로 의지하고 살아갈 힘을 주는 사이였다.


그에게 왜 자신을 도와주냐고 물었을 때 그 곳을 마침 자신이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두 사람은 커피를 함께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사냥한 고기를 먹으며 조금씩 정신적으로 회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디는 여전히 세상 밖으로는 나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대신 묻어두었던 과거의 아픈 상처와 마주하며 아들과 남편의 사진을 꺼내 인사하고 벽에 걸어둘 만큼 슬픔과 고통을 조금씩 끄집어낼 수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어린 아들에게 인사하는 이디의 슬픔과 고통. 연민. 그럼에도 견디려고 몸부림 치는 용기가 돋보이는 명장면이었다.


어느 날 미겔은 자신이 키운던 개 포터를 이디에게 잠시 맡아 달라고 부탁하며 떠난다. 한동안 소식이 없는 미겔이 걱정되어 미겔을 찾아나서기 위해 포터를 데리고 산을 내려갔다.


자신을 치료해준 간호사가 일하는 병원에 찾아가서 그의 집을 알아내 방문하고 그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제가 돌보고 있는 그의 마지막을 보며 감사 인사를 전한다. 당신 덕분에 살고 싶어졌다고 말이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에게 치유받게 된 것이다.


미겔는 아내와 딸을 잃고 괴로워하며 동병상련의 아픔을 갖고 있었다. 그 이유가 자신의 음주 운전 때문이어서 그 죄책감에 오랫동안 시달리며 산속 생활을 택해 은둔 생활을 하던 중에 이디를 만나 그녀를 말없이 도운 것이다. 이디에게 자신을 찾아와줘서 고맙다며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가족을 잃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서로 공감하며 슬픔을 나누고 위안을 삼은 두 사람은 소중한 삶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소중한 진리를 알게 된다.


그가 80년대 음악을 담아놓은 휴대전화를 이디에게 마지막으로 선물로 주면서 작별 인사를 하고 그 전화로 동생 엠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기뻐하는 동생의 목소리를 들으며 영화가 끝났다.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일반적 헐리우드 영화라면 가족을 잃은 분노를 복수로 끝내면서 그들의 복수심과 분노를 정당화하며 현실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분노를 대신 표출해주는 비현실적 영화로 만들어질 만한 소재였다. 이디처럼 할 수 있는 사람도 현실에선 쉽지 않은 일이기에 마찬가지겠지만 복수보다 슬픔을 더 극대화시켰다. 작가가 풀어나간 작품 전개에 몰입감을 준 영화여서 한참 동안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디처럼 하루 아침에 가족을 잃고 상실감에 빠진 사람들이 떠올라서 슬픔이 몰려왔다. 부인과 산책을 나왔다가 묻지 마 살인으로 하루 아침에 아내와 엄마를 잃고 삶이 송두리채 바뀌었다는 한 가정의 기사를 접하기도 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 청년의 삶을 앗아간 이로 인해 꽃을 펴보지도 못 하고 진 젊은이들도 보았다. 그 밖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겨우겨우 삶을 버티면서 슬픔을 견디고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동안 진정이 안 되고 멍해지는 것 같았다.


이디처럼 스스로 자진해서 고통스럽게 몸을 혹사시키지진 못하더라도 지옥이 된 마음에서 어떤 식으로든 해방되기 위해 몸부림쳤을 것이다. 서서히 고통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며 지켜보고 기다려줄 수밖에 없다. 옆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들의 슬픔이 끝날 때까지 위로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며 눈물을 닦아주고 보듬어주고 기다려주는 것 밖에는.


삶을 놓고 싶어지는 순간 살고 싶었다는 사람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자살 하려는 사람이 자살 전에 너무 배가 고파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나서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했다가 그 음식을 먹고 나서 살고 싶어졌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이다. 삶은 질기고 어떤 이유로든 쉽게 포기해서도 안 된다.

어딘가에서 이디와 미겔 같은 삶을 살고 있을 이들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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