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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Aug 27. 2024

아름다운 소시민들의 삶

ㅡ 창작 뮤지컬 '빨래'ㅡ


 '빨래'라는 창작 뮤지컬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담겨있다. 오래된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볼 기회가 없었다. 고양시에서 공연할 때 관람하게 되면서 기대만큼 실망시키지 않았다.


부당 해고. 이주 노동자. 불법 체류자 등 평범한 사람들의 고단하면서 소소한 일상을 잘 그려냈다. 70년대 배경으로 강원도에서 올라온 서울살이 5년차인 여주 나영씨와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 남주 몽골 청년 솔롱고씨를 중심으로 소시민들의 삶을 잘 보여주며 많은 사건들이 펼쳐진다. 둘은 빨래를 널며 처음 인사하면서 만났으며 바람에 넘어간 빨래를 건네주며 서로 호감을 느낀다.


제일 처음 등장하는 '서울살이 몇 핸가요?' 라는 노래에선  

"빨래처럼 흔들리다 떨어질 우리 인생이지만 당신의 젖은 마음 빨래줄에 널어요. 바람이 우릴 말려줄 거예요. 당신의 아픔 마음 꾹 짜서 털털 털어 널면 우리가 말려줄 거예요."

라고 노래하며 그들의 힘겨운 삶을 응원한다. 힘들 때면 바람에 날려버리라고 말한다.


가난했던 70년대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주변에도 이주 노동자만 제외하고 빨래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이웃들의 모습이었다. 힘든 시간과 역경을 견디려면 많은 노력과 인내가 동반된다.

그 어려운 시절을 이겨냈기에 지금의 안정된 삶이 주어졌다.


서점 직원으로 일하는 나영씨가 이사 와서 만난 집주인 할머니는 겉으로 보기엔 돈만 밝히시고 욕쟁이 할머니로 보였다. 처음엔 개념없는 분 같았지만 츤데레처럼 이웃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계셨다.


사지마비 된 딸을 40년 돌보면서 고단함과 시련. 아픔을 참아내며 손수 기저귀를 빨며 애환을 달랬다. 그 고통을 아시기 때문일까. 들락날락거리면서 술주정 하는 애인 구씨와 티격태격하는 옆집 돌싱 희정씨도 위로해주고 몽골에서 온 솔롱고씨가 집주인에게 쫒겨날 때도 그를 두둔하며 설득해준다. 서점 사장에게 대들었다고 창고 정리로 발령냈을 때 슬피 우는 나영씨도 위로한다.


그들은 힘들 때마다 빨래를 하며 슬픔을 날려보내라고 말한다.

 "구겨진 내 삶을 멀리 바람에 날리면 또 다시 살아갈 힘이 날 거야"

 노래 가사처럼 어떤 방법으로든 구겨진 내 삶에 희망을 찾으라고 힘을 붇돋는다.


나영씨와 몽골 청년 솔롱고는 결국 서로의 순수함에 이끌려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고된 삶을 함께 견디며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여전히 씩씩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희노애락을 빨래를 통해 견디며 이제는 혼자가 아닌 함께이기에 더 힘내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은 한예종 대학생들 졸업 작품이었다고 한다. 주제가 좋고 창의적이라 뮤지컬로 만들어지면서 10년 동안 3천회 공연을 하고 노래도 7곡에서 18곡으로 늘어났다고 했다. 우리 이웃들의 삶의 애환을 담담히 전하고 노래 가사말이 와닿았으며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기에 더 공감이 됐다.


내 주변에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 중산층도 되지 못 한다고 말하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해내는 밝고 선한 사람들이다.


30년간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분은 자신이 설계해준 보험이 고객들에게 도움을 줄 때면 큰 보람으로 여긴다. 남편이 돌아가신 뒤 많이 우울해 하시던 한 지인은 새롭게 의류 사업을 시작하며 활력을 찾으셨다. 일찍 명퇴한 남편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으로 힘들면서도 영어. 수학 공부방을 해가며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지인은 불평한들 뭐하겠냐며 늘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다. 보육 교사나 간호 조무 자격증을 따서 뒤늦게 일을 시작한 사람들도 있고 방문 판매 화장품 영업을 하면서 활력 넘치는 밝은 지인까지 보기만 해도 그 에너지에 활력을 얻는다.


 '빨래'의 등장 인물들처럼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참 열심히 사는 이웃들이다. 그들이 삶을 대하는 모습이 너무 귀하고 소중하다. 어려운 일 앞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찾아가 위로를 아끼지 않는다. 내가 힘들면 다른 사람이 힘든 것을 나 몰라라 하고 내 걱정에 치이면 다른 사람 걱정할 여유도 없을 텐데 주변 사람들을 챙기면서 정으로 뭉친 이웃이 되어 서로에게 힘을 준다.


경제적으로 좀 여유가 생기면서 가장 좋았던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작은 마음이었다. 예전엔 하고 싶어도 여유가 없으니 억지로 할 순 없었다. 지금은 명품 백 하나 사는 돈은 아까워도 콩고의 외사촌 선교사 부부와 필리핀 쓰레기 톤도 마을에 보내는 선교비는 아깝지 않다. 제주 여행 가는 여동생. 일본으로 가족 여행 가는 친한 동생에게 애들 맛있는거 사주라며 보내는 작은 마음. 멀어서 가보지 못하는 경조사에 미안함을 대신해 마음을 전하고 입원한 친구나 가족들. 생일 맞은 조카들에게 전하는 크고 작은 선물들을 할 때면 기쁘다. 받을 때보다 줄 때의 행복이 크다는 걸 실감한다.


솜씨가 좋은 이웃 지인은 쿠키나 빵을 구우면 꼭 맛보라고 갖다주고 공무원으로 정년 퇴직하신 지인 부부에게 식사 대접을 해드리자 시골에서 농사 지은 배가 올라왔다며 그것을 또 나눈다.


미안할 정도로 서로 챙기는 정이 오고 가다 보면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물질이 아니어도 마음으로 충분하고 그 맘이 느껴지는데도 서로 나누려는 따뜻한 정은 훈훈하게 하고 힘들 때면 달려가게 만든다. 뭐라도 위로하고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고 동사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아닌 실천이고 행동이란 뜻이다.

그런 작은 마음들이 모아지면 '빨래'에서 나온 가사처럼 슬픔이 날아가게 된다. 슬픔을 말리고 눈물이 나온 눈가에선 어느덧 기쁨의 눈물이 흐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며 사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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