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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Oct 07. 2024

맏이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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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맏이는 책임감이 늘면서 조숙한 아이로 자란다. 맏이의 무게가 그만큼 커서 받는 영향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철없는 막내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처음 경험한 생명체와의 만남. 그 만남에 온 정성과 사랑을 쏟는다. 서툴지만 그 사랑은 처음 겪는 사랑이기에 깊고 뜨겁다. 오롯이 혼자 그 사랑을 다 받다가 동생이 태어나면서 그 사랑을 뺏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안 하던 행동들이 나온다. 엄마의 관심을 끌려고 애쓰면서 상실감도  경험하며 서서히 성숙한다.


부모는 맏이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정성과 헌신을 다한 만큼 기대에 부응하기를 바란다. 그런 기대는 맏이를 무겁고 부담스럽게 만든다.


나는 셋째 딸이다. 큰언니의 고충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오남매의 맏딸에게 주어진 짐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우린 해보지 않은 일을 언니는 맏이라는 이유로 감당하고 있었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어린 나이에 기차를 타고 큰집을 오고 가는 일을 도맡았다. 큰집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농사를 크게 짓고 있어 엄마가 바쁠 땐 언니가 큰집에 드나들며 할머니가 주시는 것들을 받아오기도 했다.


철도 공무원이던 아버지가 갑작스런 일로 출근을 못하실 때면 전화가 없던 시절에 출근 못하신다고 역전으로 전하러 간 것도 언니였다. 그 나이가 초등학교 때였다. 나와 4살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큰언니는 늘 엄마의 심부름을 대신 해야 했다. 두살 터울인 둘째 언니와 나는 한 번도 해본 일이 없는 일을 혼자서도 감내했다. 엄마가 늦을 땐 동생들 밥을 차려주고 치우는 일도 큰언니 몫이었다.


어머님도 보이지 않지만 큰아들을 많이 의지하신다. 남편이 아무리 딸같이 잘해도 집안의 큰 대소사를 의논하거나 크게 마음을 기대는 건 큰아들이다.


맏이인 친구가 둘이나 있다. 한 친구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서 집안 일을 돕고 동생들을 돌보고 엄마 일을 거들었다고 한다. 난 집에 와선 가끔 설거지나 주말에 내방 청소 외엔 집안 일을 해본 일이 거의 없다.


한 친구는 양계장을 하는 부모님 대신 거의 집안 일을 도맡아했다. 두 명의 남동생 챙기는 건 기본이고 친구집에만 가면 계란 요리는 기본이고 친구가 삶아준 국수를 먹을 때도 많았다. 맏이들은 조숙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나도 아들 둘을 키우면서 첫째에게 기대치가 컸다. 사랑을 주고 헌신을 다한 만큼 원하는 대로 크길 바라고 세 살 터울인 동생에 대한 책임까지 얹어주었다.


4살 때 동생이 태어나자 시기 질투보단 많이 신기해 하고 예뻐했다. 목욕시킬 때 손도 잡아주며 같이 목욕시키고 잠잘 때도 침대를 흔들어주기도 했다.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큰아들의 눈빛이 흐뭇해서 그 마음을 계속 갖길 바랐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안방에서 난 작은아들과 침대에서 자고 남편은 큰아들과 이불을 깔고 잤다. 가끔 큰아들을 데리고 침대에서 잘 때면 동생이 깼나 힐끔거리며 쳐다봐서 왜 그런가 했다. 일어나면 동생이 엄마 차지가 되니 계속 신경쓴단 걸 알았을 때 마음이 아팠다. 큰아들도 아직 어리고 둘을 동일하게 대해야 하는데 세 살 더 많다는 이유도 마음을 덜 쓰면서도 너그럽게 이해할 거라고 믿었다.


그때부터 큰아들과 보내는 시간을 더 늘리고 사랑을 더 많이 표현하고, 동생이 형에게 대들면 바로 야단을 쳤다. 형은 부모 대신이라면서 큰아들 편을 많이 들어주고 감싸줬다. 둘째들은 야무지게 큰다. 크게 손이 가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한다. 형이 혼나는 걸 보면 눈치껏 배우고 욕심도 많다.


우리 아이들도 그랬다. 첫째는 욕심도 없고 온순한데 둘째는 고집스럽고 뭐든 야무지게 잘 해냈다. 기대는 첫째에게 큰데 만족을 주는 건 둘째였다.


큰아들이 중학교 때 일이다. 영화 시사회 표를 친구가 주어서 남펀과 둘이 저녁 8시 영화를 보러가야 했다. 아직 초등학생인 작은아들 혼자 있게 되어서 큰아들에게 일찍 오라고 미리 얘기했는데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출발시간 직전에 온 아들을 크게 야단을 쳤다. 미리 부탁하고 약속한 일인데 그것도 못 지키냐며 화를 냈다. 영화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집에 와서 바로 미안하다고 다독였다. 그 후로도 알게 모르게 더 엄격하고, 동생에 대한 책임감을 강요하고 더 의젓해지기를 바랐다.


자기들이 태어나고 싶어 먼저 태어난 것도 아닌데 바라는 게 너무 많아 미안하다. 유독 책임감이 강한 맏이들은 스스로에게 주는 마음의 짐도 없지 않은 듯하다. 맏이에게 주어진 무거운 무게를 헤아리고 첫사랑의 그 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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