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상담
‘선생님, 직업 특성상 정신과 환자들을 참 많이 봐요. 조현병환자는 하루에 5명 이상은 기본적으로 보는 것 같아요.‘
현재 일하는 곳이 빅파이브 대학병원 앞의 문전약국이기에 정말 다양한 환자가 온다. 이곳에 오는 젊은 연령대의 사람들 중에 정신과 환자들은 꽤 큰 비율을 차지한다.
오랜 기간 병을 앓다가 오는 분들이 많다 보니 환자 본인도 그렇겠지만 보호자분들도 많은 답답함을 안고 약국에 들어오신다.
‘하루는 조현병환자의 보호자분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약사님, 우리 아들 정말 어떡해. 결혼도 못할것 같아. 직장 그만둔지도 벌써 2년이야. 예전에는 좀 나아져서 다시 다니다가 이게 뭐야…이 약 계속 이렇게 많이 먹어야해?]‘
‘예전 같았으면 말문이 막혔을 것 같아요. 어떻게 이 상황을 견디셔야할까, 얼마나 막막하실까, 이 상황에 대한 답이 있을까, 가 제가 할 수 있는 생각의 전부였을 것 같아요. 근데 제 입에서 의외의 답이 나오더라고요.
[어머님, 얼마나 힘드시고 답답하시겠어요. 기약이 없고 끝없는 기다림같고… 근데 어머님, 이 문제를 해결해내야만 하는 문제가 아니라 관리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괜찮아지셨을 때가 있었다는 것은 언젠가 그 순간이 다시 온다는 뜻 아닐까요? 지금처럼 당장의 결과만을 바라기엔 너무 본인도 그렇고, 아드님도 너무 힘드실 것 같아요. 본인을 위해서라도 이 시간들이 병을 조금씩 더 잘 다루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면 조금 더 나을 것 같아요.]‘
언제나 그랬듯이 뒤에 환자들이 밀려있었다. 차분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상무님 눈치보며 속사포처럼 말하느라 나의 진심이 모두 전달이 되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2달동안 울고 또 울며 나의 연약함을 수용해갈 때 들었던 이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었다. 정말로 진심이었다. 또한 어머님과 아드님께서 이 병을 수용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지만은 않길 바라는 나의 간절한 기도가 담긴 답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왔음에도, 정말 힘든것은요. 제가 교회를 이제껏 다녔지만 평안함은 정말 저 멀리 있는 별 같다는 것이에요. 보이는 것 같은데 절대 닿지 않는. 아주 가끔 찾아오지만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결국 뿌리내리 못하고 바람에 날려버리는. 그런 것이요. 설교가 엉터리인 걸까요. 제가 성경이해를 제대로 못한 걸까요.‘
‘썸머씨, 그거 아세요? 완전한 평안함이 허상이라는게?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문학작품 아실까요? 고도가 누군지도 모른채 기다리는 거죠. 사실은 허상일텐데 말이죠. 만약 수지씨의 고도가 완전한 평안함이라면 그것은 정말 허상이에요.
완전한 평안, 그것이 올까요? 사실 인생은 끝없는 고통이에요. 고난 후에 고난이 오죠. 근데 그게 인생이에요. 그걸 수용할 때 참 평안이 온다고 할 수는 있겠네요.
스스로의 힘듦을 보듬고 자기를 수용하고 토닥여주는 것 좋아요. 그러나 결국 우리는 그럼에도 걸어나가는 형태가 되어야해요. 그러니까, 인생의 문제없음은 없음을 인정하고 뚜벅뚜벅 가는 것. 그것이 될 때 상담의 여정이 완성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성경은 엉터리가 아니에요. 설교는 잘못되지 않았어요.‘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기도했던 평안은 사실 이 상황을 넉넉히 이겨낼 힘이었다. 그 힘이라는 것은 이 고난을 수용하고 뚜벅뚜벅 걸어나갈 힘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기도는 그렇게 하면서도 상황의 역전만을 바래왔던 그런 모순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모두에게는 하나님이 미션을 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수용할지,말지 결정한다.
오래 지속될 것 같다면 더 나아가 이 미션과 어떻게 함께 갈지, 궁극적으로 어떻게 풀어낼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나의 이 혼란스러운 기질을 내가 잘 관리할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나에게 미션으로 주신 것이라면,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알아볼 가치로 느껴진다.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한 마음으로,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주신 것이라면 나는 재밌게 잘 다루어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