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역설

네번째 상담-1

by 썸머트리

고등학생 때 일이다. 감기몸살에 심하게 걸려 조퇴를 해야만 했다.

‘선생님, 저 조퇴해도 될까요. 너무 아픕니다.’

‘그렇게 웃으면서 말하면 어떻게 아픈줄 아니?’


‘난 어딜가든 밝다고 하더라고. 속이 썩어들어가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나에게 밝다고 해주었어.’


‘왜 그런가 생각해보았어. 마음이 바닥을 치고 있는데, 그걸 사람들에게 보이면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봐 우울을 숨기려 기쁨이, 떨림이, 설렘이 작더라도 감정을 과하게 표현했던 것 같아.’


세 번째 상담 이후로 곰곰히 생각하고 난 결론이었다. 유기불안이 오히려 나를 밝아보이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더 잘 정리되었다.


집에서는 억눌렸던 마음이 눌리고 눌리다가 표현되었는데, 그게 너무 극단적이고 힘들어서 심리상담을 받아볼까라고 가족들에게 종종 물어보았다. 그때 부모님도,친언니도 상황이 괜찮아지면 너도 괜찮아질 거라했다. 특히 엄마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해결방법이라 하셨다.


아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언이었는지. 여전히 나의 세계에서는 정답인 문장이긴 하다. 내년에는 스위스 DTS를 갈 생각이다. 항상 그래왔지만 나는 절대자와의 연결을 갈구한다. 내가 읽었던 말씀의 하나님을 나는 신뢰하지 못하는 동시에 너무도 그리워하고 있다. 다만 지금 너무 힘이 없어서, 더불어 사회적 시선이 여전히 두려워서 한국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무언갈 하는게 어렵다. 그래서 나를 아예 낯선 곳에 두고 싶었다.


그럼에도 위험한 발언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감정이 사람의 도움을 받을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오로지 기도와 말씀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나는 수학을 평균은 했지만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재수할 때 등급을 올려야만 했는데 그때 나는 어떻게 기도했을까. ‘하나님, 저 수학 잘할 수 있게 좋은 선생님 붙여주세요.’였다. ‘하나님 어느날 갑자기 수학머리가 좋아지게 해주세요.’가 아니었다.


감정의 영역도 그런 부분인 것이다. 그래서 감정을 다스릴 방법을 알려줄 선생님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에는 기도할 힘도 없어 터덜터덜 찾아간 곳이지만, 나를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 좋은 선생님을 붙여주셨다고 믿을 수밖에.


그렇게 또 무언갈 배울 생각을 하며 네번째 상담을 갔다.


‘썸머씨, 지난번에 성장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맞아요. 선생님 전 성장욕구가 굉장히 크더라고요. 과거를 돌아보면 고칠 수 있는 건 고치자고 생각하고 그걸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어요.’


‘근데 약간 삐뚤어진 성장욕구더라고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걸 잘하려고 한적이 별로 없어요. 못하는 걸 평균 이상으로 하려고 했어요. 학창시절에 수학을 못했는데 이과를 가서 재수까지 했고, 그렇게 꾸역꾸역 서울 중상위권 화학과에 들어갔어요. 근데 저는 화학을 못하거든요. 약대 편입을 준비하는데 또 화학시험이 있는거에요. 그래서 3년을 걸쳐 어떻게든 또 화학을 평균 이상으로 만들어 약대에 갔어요.’


‘두려움이 원동력이기도 했어요. 저는 두려움이 많잖아요. 왠지 결혼을 제가 못할 것 같은거에요. 그게 엄청 취약해보였구요. 그래서 사회에서 아무도 나를 건들이지 않게 보호막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게 약사 자격증이었어요.’


‘그러면서 점점 더 우울해졌어요. 약대에 가서도 우울했고요. 원해서 했다기 보다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증명하기 위해 살았던 세월이었거든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칭찬해주길 원했어요.’


‘이것이 인간관계에 영향을 끼친적도 있나요?’


‘2년 전에 친구와 10일 동안 이탈리아,스페인을 여행을 갔어요. 그때 나눈 대화가 기억나요.‘


-사람은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거야. 고칠점을 찾는게 아니라.

-관계를 위해서는 고칠부분은 고쳐야지. 상대방이 힘들어하면 고쳐야지.

-사람은 달라질 수 없어. 그냥 받아들여야돼. 그게 사랑이야.


‘그때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친구와 싸우다가 나눈 대화인데, 그 친구의 어떤 부분과 제 어떤 부분이 충돌하여 싸웠거든요. 저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항상 저를 고치려 노력했던 사람인지라 상대방이 그렇게 말할 때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저는 그게 서로의 가치관 차이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저희는 그 여행이후로 다시 만나지 않았구요.’


‘…근데 이번에 정말로 좋아하던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 사람이 떠나니까 내가 나에게 완벽함을 요구한 것처럼 그 사람에게 요구했던게 관계단절의 원인이라는 것이 깨달아졌어요. 나한테 원하는 거 없어? 라고 물어보면 그는 항상 ‘나는 그냥 [아 이 사람은 그렇구나] 라고 생각해.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라고 대답해줬거든요. 솔직히 그때는 이해가 안됐어요. 그후에 관계가 끝나고 나서 어떤면에선 정말 성숙한 사람이었구나. 라고 생각됐어요.’


‘자, 썸머씨. 이제 저는 상담사로써 해줄 말이 있어요.’


‘네 뭐에요 쌤,,,?’


‘성장하고 싶은 마음을 이제 내려놓아요. 성장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아야 그때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뭐에 기쁨을 느끼는지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그래야 사랑할 수 있어요. 나도, 남도요.’


까먹을 만하면 아빠가 하던 말이 있다. ‘너는 이것만 하면 완벽해. 이것만 고치면 말할게 없어.’

훈육의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셨겠지만, 그 말은 나를 옥죄고 옥죄었다. 그래서 발작적으로 화낸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사회생활할 때는 내 단점이 보이는게 너무 싫어서 사람들 반응을 살피며 나를 고치고 또 고쳤다.


‘물론 지금까지 썸머씨가 살아온 인생을 정말 존중하고 잘해왔다고 말하고 싶어요. 약사가 된다는게 어디 쉬워요? 못한다고 생각했던 걸 노력하여 극복해낸 것은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고 힘이에요. 그렇지만 썸머씨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성장하고 싶다는 그 강박적인 생각을 내려놓는 거에요.’


‘맞아요. 저는 결국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으니까 성장하고 싶은거였어요… 근데 그게 관계를 망칠 줄은 몰랐어요…’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힘은 그때부터 생길거에요. 그리고 그때서야 관계를 해치지 않고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잘 요구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어요.’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을거란 말에 조금 기뻤다. 지금의 직업은 허둥대고 잘까먹는 내 단점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약국이라는 곳은 유능감을 보여주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칭찬을 먹고 사는 나란 사람에겐 더욱 힘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쓰기. 내가 좋아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지금 살아있다고 느껴진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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