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하게 끝난 관계와 도돌이표 같은 약국생활, 그리고 유년기 시절부터 이어지는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무력감에 대한 답답함이 한계치를 넘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두려웠다.
‘더 이상의 변화는 불가능하겠다.’
마침 부모님은 이탈리아에 한달간 여행을 간 상태였다. 부모님 눈치를 보지않을 수 있는 기회. 나는 내 나름의 마지막 보루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왕 하는거 박사님한테 심리상담을 받아볼까… 한번 하고 말 수도 있으니.’
박사님들은 퇴근 후 가기엔 예약이 모두 꽉 차 있었다. 더 이상 고민하기도 지쳐버린 나는 센터에서 추천해주신 석사 심리상담사 선생님께 받기로 했다.
할일도 없으니 교회나 가보라는 언니의 말에 재수가 끝난 21살에 교회 청년부에 처음 갔다. 그리고 그 따뜻함에 푹 빠졌다. 하나님은 둘째치고 언니, 오빠들의 그 상냥함과 너그러움에 너무 행복하게 교회를 갔다. 그에 비해 맞지 않는 전공으로 대학에 대한 마음이 식어갔고, 나는 그냥 사랑이 고픈 사람이었단 걸 깨닫게 되었다.
자연스레 마음이 넓은 그들과 같아지고 싶었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아갔다. 항상 혼란스러웠던 나는 오히려 가이드라인이 생긴게 기뻤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연속되는 무력감이 신앙적으로 해결되지 않음에 오히려 더 무력해졌다. 상담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 손으로 연 나의 첫번째 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