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고군분투 직장 생존기 EP⑩] 거절당할 용기를 마주하는 마음
'다 좋아.'
내가 꽤 자주 하는 말이자 주변에서 자주 듣기도 하는 말이다. 결정의 순간은 언제나 어렵다. 업무를 하며 최적의 대안을 고민할 때도, 점심 메뉴를 정할 때도 내게 주어진 선택지들은 비슷하게 좋아 보인다.
얼마 전, 연말이 다가오면서 동기 송년회 날짜가 잡혔다. 신기하게도 나와 친한 동기들도 내향적 성향이 강하다. 그들과는 모임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 순탄치 않다. 사내 메신저 대화방에서 한 명이 '뭐 먹을래'라고 묻자, '뭐 먹을까', '뭐 먹는 게 좋지'라는 문장들이 쏟아진다. 나도 동기들에게 '뭐 먹고 싶어?'라고 물으며 결정권으로부터 도피해 본다. 정작 ‘뭐 먹자!’는 분명한 제안은 찾기 힘들다.
대화방은 애매한 문장들로 가득 차고 도무지 오늘 안에 모임 장소를 정하기 힘들어 보였다. 비슷하게 선택을 어려워하는 내가 총대를 메고 모임 장소 근처 식당 몇 개를 제안해 본다. 이쯤에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식당을 골라 적당히 모임 장소를 결정하면 모든 것이 끝날 터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다 좋아', '나도 다 좋아. 언니가 골라주는 대로 갈게'. 그렇게 모임 장소 정하기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된다.
나도 그들과 성향이 비슷하기에 명료한 결정을 어려워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내린 결정이 다수의 취향을 충족할지부터 시작해 버려진 선택지가 오히려 더 나은 대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할 것이다.
반강제적으로 결정권을 받은 나 역시 모임 장소를 고르느라 머리를 싸맬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내린 결정을 두고 마음도 온전히 편하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모든 결정을 어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온전히 나와 관련된 선택, 예를 들어 어떤 책을 살지, 어떤 간식을 먹을지, 어떤 여행지를 선택할지 등을 생각할 때는 복잡한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
반면, 다른 사람이 얽힌 결정들을 할 때면 심히 부담스러워진다. 타인과 함께할 때,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은 '상대방이 싫어하면 어쩌지?',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억측이 될 수 있거나, 현실이 될 수 있기도 한 걱정 탓이 크다.
동시에 선택의 순간에서 내가 내린 결정으로 아쉬운 결과를 맛보았던 몇몇 경험들이 내게는 참 크게 다가오기도 했다. 당시 내게는 타인의 날카로운 평가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어 버린 셈이다. 그렇게 나는 명확한 의견을 내는 것을 두려워해 왔다. 나의 제안이 뜻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불확실성이 달갑지 않았다.
분명 결정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이유만으로 결정을 힘들어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드는 생각은 과거 환경적 요인 등으로 상실된 나의 의견을 되찾는 것이 남은 인생을 위해서라도,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거절당하면 어떤가. 상대방이 온전히 좋아하지 않으면 어떤가. 일주일에 한 번쯤은 마음의 짐을 덜어 버리고 나만의 결정을 내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