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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런 Dec 16. 2023

싫습니다, 아닙니다, 못합니다

[내향인의 고군분투 직장 생존기 EP⑪] 그래도 되는 사람은 없다

저 멀리 팀장님이 밝은 표정으로 내게 다가온다. 평소와 다른, 팀장님의 친절한 모습은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내게 어깨동무까지 하며 친한 척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곧 속내를 알아차린다. 그렇다. 일상적이지 않은 친절은 내게 부탁을 하기 위한 '빌드업' 과정이었다.


나는 거절을 잘하지 못한다. 특히 웃는 얼굴로 부탁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싫어요, 아니오, 못해요'는 내가 일생을 살면서 몇 번 내뱉지 못한 문장들이다. 여느 직장인이 그렇듯, 업무 시간 중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네', '알겠습니다'이다.


결국 팀장님의 이번 부탁도 거절하지 못했다. 본인의 업무 일부를 맡아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는데, 내가 비슷한 영역의 일을 하고 있으니 좀 도와달라는 것이다. 다른 업무 일정이 많다며 일장연설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업무 일정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속에서 화가 끓어오르고 '저도 너무 벅차요'라는 말이 입술 끝까지 치달았지만 결국 내뱉지 못했다. 자신의 부탁을 성공시켰다는 기쁨으로 돌아가는 팀장님의 모습과 얼떨결에 다른 업무를 떠맡아 착잡함에 휩싸인 나의 모습이 교차했다. 무엇보다 여전히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안타까웠다.

출처: 픽사베이(pixabay)

돌이켜보면 나는 흔히 말하는 '평화주의자'를 지향했던 듯하다. 아무 의견 대립도 없는 잔잔하고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나의 이상이었다. 하지만 거절은 이러한 평화를 깰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부탁을 거절함으로써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금이 가게 되고 불안정한 상태로 이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동시에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면 다른 사람들도 내게 긍정적인 인상을 가질 것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좋은 인상을 가질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모든 부탁을 수긍하기만 하다가는 결국 '그래도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렸다.


특히 회사에서 착한 아이를 추구하다 보면 괜히 나의 마음만 다치는 일이 많았다. 마음고생을 거듭하며 마음의 굳은살이 생기자, 이제는 '나도 힘들다'는 의사를 표시하며 조금씩 거절을 해보려 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자꾸 하다 보니 더 일찍 시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거절을 하는 것이 마냥 나쁜 것이 아니다. 무리한 부탁까지 받아들이기에는 우리의 마음이 너무 고단하다. 내 자신이 없으면 우리의 인생도 없다. 적어도 정말 힘들고 벅찬 상황에서는 적당히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내 자신을 지키는 또 다른 방법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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