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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런 Dec 20. 2023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만

[내향인의 고군분투 직장 생존기 EP⑫] '관계의 결벽증'을 벗어나자

하루 중 업무를 하며 마음이 불편한 순간 중 하나가 바로 부탁을 해야 할 때다. 부탁을 할 때면 상대방에게 마음의 짐을 얹어주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편치 않다. 나의 부탁으로, 철옹성 같던 평화의 벽을 깨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온라인이 됐든, 오프라인이 됐든 부탁을 하러 가는 과정도 무척이나 부담스럽다. 부드럽게 흘러가던 관계의 흐름이 '부탁'이라는 장애물을 만나 껄끄러운 사이가 될까 봐 지레 걱정스럽다. 그렇기에 피치 못하게 부탁을 해야 할 때면,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만',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쿠션어로 문장들을 포장하기 바빴다.


부탁을 어려워하는 성격 탓에 도움이 절실했던 업무를 혼자 처리했던 경험도 더러 있다. 기록물 폐기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다. 당시 300권에 달하는 폐기 대상 기록물을 노끈으로 묶어야 했다.


300권의 기록물을 서고에서 찾아 명단 순서대로 배치하는 것은 어찌어찌했는데 노끈으로 묶는 것이 관건이었다. 문서 한 권 한 권의 무게가 꽤 무거워 깔끔하게 노끈으로 묶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다른 업무도 있었기 때문에 마냥 노끈과 씨름을 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결국 급한 불만 빠르게 끄고 자리로 돌아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주말 출근을 계획했다. 도움을 부탁했다는 동기의 조언을 듣고 살짝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당 업무는 주말 출근으로 슬픈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출처: 픽사베이(pixabay)


이렇게까지 부탁하는 행위가 어려운 이유는 내가 가진 '관계의 결벽증' 탓이 크다. 내게는 모두와 잘 지내야 하고 그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는 관계의 결벽증이 있다. 부탁하는 행위는 어찌 되었든 상대방에게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자칫 불편해질 수 있는 문장들로 관계를 훼손하는 것 같아 부탁이 꺼려졌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만 보아도 크게 개의치 않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동료들도 종종 내게 도움을 요청하고 나도 흔쾌히 도움을 준다. 모든 업무를 혼자서만 머리를 싸매고 해결하기보다는 협업을 하며 새로운 해결방안을 찾아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탁을 두고 괜히 죄송하고 무거운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다.


이제부터라도 협업이 필요한 업무에 대해서만큼은 혼자서 끙끙 앓기보다는 도움을 요청해 보려 노력한다. 부탁은 관계에 대한 훼방꾼이 아니라 오히려 윤활유가 될 수도 있다. 관계의 결벽증에서 벗어나 부탁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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