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고군분투 직장 생존기 EP⑬] 만만한 사람은 싫습니다
'말 잘 듣고 맡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
어떻게 보면 회사에서 나의 모습이다. 일이 쌓이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새로운 일이 주어지면 빨리 처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처음 맡는 일을 할 때에도 내 자신을 옭아매며 마감 기한을 맞추려 노력한다. 회사에서는 최대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 잘 듣고 주어진 일을 착실히 해내면 회사 생활을 하면서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게 웬걸. 인간관계라는 변수가 나를 괴롭게 하기 시작했다. 직장인으로 살며 인간관계로 참 많은 고통을 받았다. 업무도 업무지만, 인간관계는 내 노력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전 회사에서 후배를 받은 적이 있다. 붙임성이 좋았던 후배는 내가 연차 등으로 부재할 때 업무를 백업하는 부담당자가 되었고, 업무 팁을 나누며 빠르게 친해졌다. 후배가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맡은 주요 업무를 양보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 됐을까. 후배가 내 업무 영역을 침범해 오기 시작했다. 내가 참석할 예정이었던 포럼이 있었다. 팀에 공유하는 업무 계획서에도 포럼 일정을 적어 두고 참석 준비를 시작할 때쯤, 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포럼 oo 씨(후배)가 가게 됐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거야'라는 내용이었다.
당황한 나는 후배에게 연락했고 돌아온 대답은 할 말을 잃게 했다. 후배는 내게 '저도 부담당자이기 때문에 포럼에 참석할 권리가 있다. 먼저 계획서를 보낸 사람이 가는 것이 맞지 않냐'며 오히려 내게 화를 냈다.
관심이 있는 포럼이었다면 나와 사전에 이야기를 하고 참석하면 끝날 문제다. 점심도 거의 매일 같이 먹었는데 그때는 한마디도 없다가 뒤에서 일방적인 행동을 했다는 것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참 잘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보이자 문득 사람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타인에게 친절하게만 대하면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그런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회사에서 만난 동료들은 잘해주기만 하면 나를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고 치부하며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종종 있었다.
만만하게 보이고 있다는 느낌은 나를 참 괴롭게 했다. 일이 곧잘 넘어왔고 은연중으로 나를 막 대하는 사람을 몇 차례 경험하기도 했다. 이제 더 이상 만만한 이미지로 보이지 않겠다며 흔히 말하는 '센캐'를 목표로 해본 적도 있지만 실제로 성공한 적은 아직 없다.
본인의 부정적 감정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말끝을 흐리지 말라, 주변인의 제안에 너무 '네네'거리지 말라 등의 조언을 얻고 꾸준히 노력해보고 있지만 천성을 완전하게 바꾸긴 힘든 것일까. 조금 바뀌는 듯하면서도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또다시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오히려 나의 성격과 반대로 행동하며 기싸움을 하려다 보니 기운을 금방 소진하기도 했다. 아직까지 회사 내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는 속 시원한 방법은 찾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면, 너무 애쓰지 말자는 것이다. 상처를 준 다른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나만 애쓰다 보면 내 자신만 고달파진다. 나의 성격을 너무 바꾸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사랑하면서 파생되는 문제에 대해 제대로 돌파하는 것이 또 다른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